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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한제국 일본에 팔아먹다.우리 근현대사의 깊은 상처가 사실은 미국 때문에 생겼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5.21 22:53

기사수정: 서기2017.5.22. 15:44

바른 역사 학술원 제1회 학술대회 ‘한국은 중국 땅이었나...’

현대판 카스라-태프트 조약 가능성 없지 않아...

미국이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는 사실 새롭게 밝혀져...

공정한 재판을 포기한 사법 권력의 적폐 청산해야...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국이 한국의 일부였다...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이 서기2017.5.19.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에 위치한 순국선열유족회 지하 강당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나’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가졌다. 서기2017.4.13.에 발족한 미사협 산하 바른역사학술원이 주관한 이날 학술대회는 최근에 문제가 된 중국국가 주석 시진핑(습근평)의 발언을 역사적으로 비판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시진핑은 지난 4월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수뇌회담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해 국내 의식 있는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시진핑의 이 같은 발언은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것인데, 고대사를 공식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류강단사학계가 맨 먼저 이에 대한 비판과 대응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사이비역사학이니, 역사파시스트니 하며 비난한 민족사학계에서 중국의 1차사료를 가지고 반박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번 학술대회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 허성관 미사협 상임대표가 한국바른역사 학술원 학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허성관 미사협 상임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서 시진핑의 발언이 우발적이거나 일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동북공정과 직결되는 의도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구한말과 같이 아직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구한말 미국과 일본이 맺은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예로 들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밀약을 맺어서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고 일본은 한국을 삼켜버렸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나라를 나누어 가진 것이다.

오늘날에는 북한은 중국이, 남한은 미국이 갖는다는 ‘’현대판‘ 카스라-태프트 밀약이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발언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의 숨은 의도는 휴전선 이북의 북한이 중국 식민지 한사군이었으니 중국 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이 차지하고 남한은 미국이 차지하자는 제안을 이렇게 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합중국 대통령,

"조선은 자치 능력 없다."

지난 서기2007. 사학자 캐럴 카메룬 쇼(Carole Cameron Shaw)라는 미국 여성이 책(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을 내서 미국이 대한제국멸망에 어떻게 결정적인 짓을 했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미국이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도록 전쟁비용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카네기 철강회사와 제이피 모건이라는 대기업을 통해서 무려 14조원(당시 일화로 7억 엔)을 지원했다. 또한 러일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외교권 강탈인 을사늑약(서기1905)과 나라 멸망인 경술국치(서기1910)를 당할 때 시어도스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서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막대한 전쟁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러일전쟁에 참전하면서,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다.” “일본이 통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며 일본의 한국 침략을 부추겼다. 그리고 의도대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태프트를 특사로 보내 일제와 밀약을 맺어 일본은 한국을 먹고, 미국은 필리핀을 먹는데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가지고 제국주의 열강들이 서로 흥정해서 나누어 가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행위는 일본이 필리핀을 공략하지 않는 대가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팔아먹은 것이 된다. 당시 카스라 다로(桂太郞)는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대신이었고, 태프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미국의 전쟁장관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공모하여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에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는 등 가세해서 도왔다.

▲ 구한말부터 해방 때 까지 대일광복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전사들의 위패가 모셔진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에 있는 순국선열사당.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서기19세기 말부터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탄하고 이어지는 일제침략 35년동안 이 땅의 주인들은 일제의 침략에 응전했다. 사상전은 물론 무력전쟁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무력 측면에서는 일제의 전력과 비교자체가 되지 않을 만큼 열세였으나, 능률과 효과면에서는 가늠하기 조차 힘들 만큼 전과가 컸다. 그런데 이것을 무위로 돌리고 근본적으로 파괴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미합중국 당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런 우리에게 "자치능력이 없다"라고 하며 일제의 침략에 동조했다.

당시 고종은 이러한 미일간의 음모를 아무것도 모른 채,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해 달라고 모든 힘을 기울였다. 또한 서기1907.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여 만국평회회의장에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외교권 박탈이 부당하다며 일본을 압박해 외교권을 당시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구세주인줄 만 알았던 미국이 사실은 등에 칼을 꽂은 원수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서구 열강, 특히 미국없이는

일본 대한제국 강점불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미국은 우리에게 구세주인가. 근현대사를 냉정하게 돌아보면 미국만큼 우리에게 철천지원수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동의가 없었다면 일본은 우리나라를 먹을 수 없었다. 이는 청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대련 등 요동반도를 차지한 일본이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다시 토해내는 수모를 겪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막대한 ‘희생’을 치러 얻은 전리품조차도 주변 열강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차지 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국제역학관계였다는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우리에게 절대적 우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국 영국 등 당시 열강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대한제국을 차지할 수 없었다. 미국은 대한제국을 이렇게 일본에게 넘겨주었다.

해방 후에 이 땅의 허리를 두 동강낸 것도 미국이다. 미국의 일개 영관급 군인이 38도선을 그었다. 전범국 일본열도를 분할하여 연합국이 차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피해자인 우리나라를 분할해서 점령해 버렸다.

해방 후 우리는 자주적인 역량으로 일제가 망한 해방공간에 인민위원회라는 안정적인 자치조직을 만들어 미국군대가 들어오기 까지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발적 민주통치를 이어갔다. 당시 미군정이 남겨놓은 기록을 보면,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전국을 장악하고 상향식 민주제도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천년이 넘는 왕조시대와 일제의 폭압 속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자주정신이 압제가 사라지자 보란 듯이 부활하여 민주공화국을 건설해 나갔다. 그런데 미국은 점령군을 보내 인민위원회의 자치권을 부정하고 모두 해체시켜 버렸다(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포고령 제1호). 그리고 그 위에 이승만을 내세워 친일파 정권을 세웠다. 적폐로 대변되는 현대사의 비극의 씨앗을 미국이 뿌려놨다는 얘기다.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끼여들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미국의 악행...

4.19혁명으로 주권재민의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를 폭력으로 뒤엎은 박정희 5.16반역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승인했다. 민주정부를 폭력으로 뒤엎은 군사독재세력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상극인 군사독재 폭력정권을 그 후 18년 동안이나 허용했다. 미국은 또한 5.18민주항쟁을 피로 물들이고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 모범을 실천해 왔다는 미국의 가치와는 상반된 행위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이 오히려 자국의 이익과 관련될 때는 정반대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미국 내에서만 통한 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색인종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는 것을 보면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미국 내에서도 백인들만의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우리에게 악마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우리 근현대사에 무수한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미국이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의 모범이고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의지 처이며 구세주라고 주입받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미일동맹에 우리를 들러리로 참여시켜 ‘사드’를 배치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종용하는 등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강대국들의 패권전쟁의 제물로 삼고 있다. 이날 허성관 상임대표는 이러한 미국의 실체를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카스라-태프트 밀약의 실체를 밝히고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 것에서 묻어났다. 허 상임대표는 역사를 바로 잡을 때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날 발표되는 학술논문이 과거 열강들에게 당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덕일 한국바른역사 학술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패한 사법권력,

역사학 독점한 식민사학계와 닮아 있어...

이어 한국바른역사 학술원 이덕일원장이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식민사학 청산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래서 인지 이 원장은 자신이 겪은 형사재판의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적폐청산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고려대 전 교수 김현구씨의 고소와 함께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었다. 김현구씨는 이 원장이 자신을 식민사학라고 했다고 명예훼손혐으로 고소했다. 경찰은 불기소의견으로 지검에 송치했고 지검도 불기소 처분했다 그런데 김현구씨는 여기에 불복하여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했고 고검에서 기소했다. 그리고 1심 재판에서의 유죄판결 및 2심재판과 대법원에서의 무죄확정판결로 이어졌다.

통상 지검에서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 그것으로 확정되는데 이번 사건은 이례적으로 고검에서 기소를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원장은 이것을 청탁기소라고 불렀다. 김현구씨와 기소처분을 한 고검의 임무영 검사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고, 고검에서 보인 김현구씨와 태도와 임무영 검사의 이 원장에 대한 고압적인 모습에서 청탁기소라는 것을 읽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날 고검에서 조사를 받기 전에 이미 기소를 해놓은 상태였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청탁기소라는 것이다. 또한 1심 재판에서는 판사가 검사에게 비공식적으로 연락하여 추가 증거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는 형사소송법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또한 검사에게 공소장을 변경하라고 했는데 이는 이 원장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했다.

식민사학 부패고리는 언론 일간지에도 뿌리내려...

이 원장은 이번 재판을 겪으면서 사법기관이 이렇게까지 부패했는지 몰랐다고 했다. 유무죄의 결정을 검사가 좌우하는 이런 사법구조는 근본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1심 재판과정이 보여주듯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할 사법부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위기로 치닫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하면서 사법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식민사학계의 매국행위도 이러한 구조선상에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이 1심재 판에서 패하자, 조선, 경향, 한국, 한겨레신문들까지 식민사학자들을 내세워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퍼뜨렸는데 이것은 식민사학의 부패 고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라고 했다. 이 원장을 공격하고 식민사관이 정당하다는 것이 저들의 확고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식민사학계도 해방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견제 받지 않고 역사학을 독점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부패 고리를 끊어 해체할 때가 되었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 했다.

정부지원 없이 사비로 운영되는 순국선열유족회...

이어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장이 축사를 했다. 김 회장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지하 강당의 시설이 열악하다며 사과한다는 말로 시작했다. 사실 학술주제발표 시간 내내 음향시설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맨 뒤에서 듣는 사람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비를 들여 운영하는 처지라 음향시설을 개선할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 김신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순국선열유족회를 맡은 이후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순국선열분양소가 폐쇄되어 있었는데 개방하자 찾는 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국선열 알리기 과정을 꾸준히 해 온 결과 참여 학교가 줄을 설 정도로 많아졌다고 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면서 앞으로 오늘을 있게 한 순국선열 알리기에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잊혀진 간도,

원래 우리 땅이다...

김 회장은 이날 축사에서 잊혀진 간도역사를 증언해 관심을 끌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만주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이때 독립투쟁세력은 여기에 나라를 세우고자 기획했다고 했다. 만주의 간도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당연히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조선 사람들이라 간도를 중심으로 국가 건설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다. 독립투쟁사에서 아직 연구되지 않는 부분이 이것이라고 하면서 학술원 같은 데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청나라와 일본 간의 조약에서도 드러난다고 했다. 일제가 간도를 청나라에 팔아먹었는데 청나라가 이를 수용하고 거래를 했다는 것은 간도가 중국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만약에 중국 땅이었다면 대가를 치루고 간도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는데, 반대로 중국이 한국의 일부였다는 말로 축사를 마쳤다(학술 주제 발표 내용은 2부 기사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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