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요)와의 전쟁터는 요서지역이었다...

 

 

일제식민주의 사관이 71년 적폐라면,

소중화 조선의 중화사대주의 사관은 6백년이 넘는 적폐...

이제, 고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어야 할 때...

소중화 조선의 고지도에서 말하는 강동6주 위치와 식민사관이 같다.

 

국제연합(UN) 평화유지군이 세계 주요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제연합소속의 일원으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다. 주로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의 공수특전여단들이 맡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여전히 미군의 손아귀에 있는 일반부대와는 달리 공수특전여단들은 전시작전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평화유지군 파견부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대 중에서는 ‘서희’부대도 있다.

서희는 고려초기인 서기993년, 거란의 1차 침공 때 거란과 담판을 하여 이른바 강동6주를 거란으로부터 획득한 고려의 문신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 침략군에게서 오히려 땅을 빼앗고 적군을 돌려보내는 것은 전쟁에서 가장 좋은 상책으로 통한다. 서희의 이러한 지혜로운 상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1천년이 훨씬 넘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서 부대를 창설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거란으로부터 빼앗은 이른바 강동6주는 오늘날 어디일까? 우리는 국사시간에 현재 압록강 근처 의주를 시발점으로 해서 그 오른쪽 지역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역사의 진실은 이것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 땅, 요하 지역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중화 조선 고지도 일관되게 반도사관에 입각...

서기2017.5.15. 유라시안넷(회장 이민화)이 광화문 케이티 건물에서 주최한 역사인문학특강에서 남주성 강사가 이 같이 밝혔다. 남 강사는 먼저 기존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현행 국사교과서가 말하는 강동6주 위치와 고려의 국경을 국사교과서의 지도를 통해서 보여 주었다. 고려의 국경은 현재의 압록강 신의주에서 동쪽으로 원산만까지 잇는 선이다. 강동6주는 압록강 의주와 그 동쪽의 평안북도로 비정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는 서양의 근대역사학이 도입된 후 조선총독부소속 조선사편수회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그대로 이어받아 국사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남주성 강사에 의하면 강동6주의 경우, 일본인들에 앞서 이미 소중화 조선에서 이와 같이 그리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청구도, 대동여지도, 대동방여전도 등의 고지도의 지명을 보면 강동6주에 나오는 지명과 거란의 고려 침공로 상에 있던 지명이 모두 현재의 평안북도 일대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 고려는 남만주 일대를 장악한 제국이었다. 공민왕(서기1370)은 지용수와 함께 기병 5천을 이끌고 요동의 요성에 진격하여 점령하고 고려 땅이었음을 선포했다. 남주성 강사는 이날 강의에서 고려는 요동까지 차지한 제국으로 그렸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이 말하는 고려의 강역은...

그러나 남주성 강사는 이에 대하여 지리적 상황과 거란의 요나라 군대가 기병 중심으로 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더구나 중국 측의 요사 지리지, 무경총요, 성경강역고, 원사, 대원일통지 등의 문헌사료에서 강동6주의 지명들은 요녕성 서쪽에 위치해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료도 제시되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이 대표적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왔을 때 편찬한 고려의 인문지리서다. 여기에 고려의 강역이 묘사되어 있다.

이 문헌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 땅은 현재의 압록강 의주선에서 동해안 원산만 선 이하다. 평안도 일부와 강원도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초라한 나라다. 그런데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남쪽은 요해로 막히고 서쪽경계선은 현재의 요수와 맞닿아 있고 북으로는 옛 거란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동으로는 금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고 나온다(高麗南隔遼海 西距遼水 北接契丹舊地 東距大金).

한반도의 고려가 아니라는 소리다. 한반도를 포함한 남만주일대를 차지한 고려가 그려지고 있다. 이 고려의 강역을 통해서 볼 때, 거란이 고려에게 내준 강동6주는 현재의 압록강 일대의 평안북도가 될 수 없다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른다. 또한 만주원류고에 따르면 신라는 개원과 철령, 길림까지를 경계로 하는 남만주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 신라를 고려가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고려의 강역은 남만주일대까지 된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다.

서희가 뺏은 땅은 강동8개지역...

국사교과서에서 말하는 강동6주는 흥화진(의주), 곽주(곽산), 귀주(귀성), 통주(선주), 용주(용천), 철주(철산)다. 이러한 설정은 송사와 속자치통감에서 나왔다. 그러나 고려사와 동사강목에서는 흥화진, 곽주, 귀주, 선주, 장흥진, 귀화진, 안의진, 맹주라고 하여 8개의 지역으로 나온다. 강동6주 보다 더 넓은 지역을 거란으로부터 얻어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8개 지역의 땅 이름을 찾을 수 있다면 서희가 빼앗은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대표지명으로 흥화진을 보자. 흥화진은 현재 의주라고 국사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무경총요에서는 보주라는 행정구역을 말하면서 북쪽으로 2십리지점에 대릉하가 있다고 한다. 대릉하는 중국역사상 단 한곳밖에 없다. 현재 중국의 요서지방이다. 그런데 이 보주 안에 내원성이 있다. 이 내원성의 동쪽으로 신라의 흥화진이 4십리에 있다고 한다. 결국 대릉하 부근에 서희가 거란으로부터 빼앗은 강동6주의 하나인 흥화진이 있었다는 얘기다.

거란의 2차 침공 로를 보면 나머지 지명도 가늠이 된다. 거란 성종은 고려의 장군 강조가 자기 임금을 살해했다는 명분을 들어 침공한다. 이때 강조는 고려군 30만을 이끌고 통주에 주둔한다. 거란 성종은 40만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거쳐서 20만은 통주로 진격한다. 여기서 압록강이 어디냐를 알면 자연스럽게 다시 흥화진 그리고 통주의 위치가 파악된다.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압록강은 익주강이라고 하는데 요나라의 황룡부에 있었고 발해의 황룡부라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요수를 일명 압록이라고 나온다.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미 요사 지리지나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서 보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현재의 요녕성 요양일대로 나온다. 그 서쪽이나 서북쪽에 있는 강이 압록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현재의 요하나 더 서쪽의 대릉하가 당시의 압록강으로 비정된다. 따라서 이른바 강동6주는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 현행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고려시대의 서희가 거란으로 부터 받았다는 강동6주 표기도. 강동6주는 요나라의 동경지역에 있었다. 고려와 거란(요)과 조약에서 고려가 강동6주를 얻는 대신 거란에 조빙할 것이라고 했다. 강동6주가 있는 거란의 동경도 원래 고려 땅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맺어진 고려와 거란의 강화조약이다. 그런데 위 지도에 따르면 압록강 아래 평안북도가 거란의 동경이라는 것인데, 요사지리지등 모든 사료는 거란의 동경은 오늘날 요하 이서 지역으로 나온다. 위 지도는 반도사관에 따른 날조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소중화 조선의 중화사대주의사관, 망국의 지름길...

그렇다면 소중화 조선은 어째서 강동6주와 거란의 침공 지역을 모두 다 평안도 일대로 그려 놓았을까? 이미 민족사학계에서 밝혀나가고 있듯이 이성계와 정도전 등 소중화 개국세력의 우리역사 말살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상국으로 섬기고 개국의 정당성을 중국의 공자유교에서 찾다보니 제국의 역사를 축소, 말살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것이다. 대륙에서 발생한 고려의 역사를 반도 안으로 끌어들인 혐의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중화 조선의 세종대에 국력을 쏟아 부어 만든 세종실록 지리지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중화사대주의 반도사관에 입각해서 편찬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제가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을 북한일대로 날조해서 박아 놓았다고 하지만, 이미 세종 때에 이러한 날조 작업을 완성해 놓은 상태다. 일제는 이것을 갖다가 봉니, 와당, 전돌 등 유물조작을 통해서 식민지배에 맞게 더 정교하게 완성해 놓은 것이다. 세종실록지리를 보면 현재 평양을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으로 새겨놓고 있다. 강원도 강릉 일대를 임둔군이라고 하고 있다. 기타 나머지 군도 모두 북한 일대에 그려놓고 있다.

남주성 강사,

역사한문학에 조예가 깊어...

남주성 강사는 이날 강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고 계속 미진한 부분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인하대학교와 연계해서 바른 역사를 찾는데 더욱 힘써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인하대학교의 복기대 교수 일행이 함께 했다. 남주성 강사는 감사원의 국장을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한국수력원자력(주)에 상임감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남주성 강사는 우리역사연구를 한지 상당한 세월이 지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만주원류고를 번역해서 내놓은 바 있을 정도로 역사한문에 정통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강좌를 개최한 유라시아넷은 다음 서기2017.6.12.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을 초청하여 ‘동북아 역사지도 바로보기’라는 주제로 강좌를 연다(070-7728-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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