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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객귀客鬼가 지배하는 세상...나라 굿을 살릴 때, 이 나라가 바로 선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5.03 03:14

나라 굿,

하늘 굿 잔치는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용광로...

대종교 따라 강화도 마리산 어천절 다녀오다.

천지인 삼신사상에 터 잡은 대종교 어천절 행사...

 

 

산에 꽃이 피네,

산에 꽃이 피네,

지난 해 만 그루 심고,

올 해도 만 그루 심어,

봄이 온 불함산 꽃이 붉게 물들고,

하날님을 모시니 가락으로 태평하다.

山有花

山有花

去年種萬樹

今年種萬樹

春來不咸花萬紅

有事天神樂太平

 

 

위 노래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날님(天神)을 모시고 음악으로 태평하다는 가사를 보면 일반 시가에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봄이 오면 불함산이 꽃으로 붉게 물든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만 그루씩 심었다는 것을 보면 이 꽃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심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하날님, 천신天神과 풍악을 울리며 태평세상을 노래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꽃은 예사로운 꽃이 아닐 것이다.

▲ 단군이 쌓은 참성단이다. <고려사>나 이조선 <왕조실록> 등에 참성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보통 하늘에 굿을 올리는 제단은 둥그렇다. 그런데 이 제단은 네모꼴이다. 둥근 원형이 하늘을 뜻하고, 네모난 방형이 땅을 말한다고 할때, 땅의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 사상을 일부러 담은 것은 아닐까.

 

국민 통합의 원동력, 나라굿 잔치...

이 노래는 위나 단군 무술28년, 서기전 1583년경에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단군세기> 위나단군조에 나오는 기사다. 위나단군조의 기사는 지금 뿌리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때 조선 제16세 위나단군이 조선의 아홉 개 한(桓) 지역을 다스리는 모든 한汗(Khan)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하날님께 굿을 올렸다. 동시에 한인, 한웅, 치우와 단군왕검을 기렸다. 이어 닷새동안 큰 잔치를 열었는데 밤에 불을 밝히고 경전을 장단에 맞춰 부르고 발을 구르며 마당을 밟았다. 횃불을 크게 두르고 둥그렇게 모여 춤을 추며 노래했다. 이 노래는 애한가愛桓歌라고 하는데 신의 노래라고 한다. 산유화로 시작하는 위 노래가 이 애환가다. 애한愛桓이라는 노래 이름에서 역사성이 엿보인다. 아득하게 오래 된 한인桓因의 한국桓國과 한웅桓雄의 신시神市 시대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 들어 있다.

한인과 한웅의 시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원한 쾌락을 누리는 시대다. 안함로 <삼성기>는 이 시대를 항득쾌락恒得快樂이라고 일컫는다. 또한 삼일신고三一神誥에는 영득쾌락永得快樂이라고 나온다. 이 때를 신들이 다스리는 시대라고도 한다.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의 서양식 세계관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들어낸 망상의 역사라고 할 것이다. 지금의 일반상식으로 보면 너무나 동떨어진 환상 같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서양식 물질중심의 기계문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석학들이 등장하고 있다. 눈.귀.코.혀.몸 그리고 이로부터 만들어진 나(의식=마음)의 감각기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 너머의 어떤 것을 찾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은 아니지만 인류역사는 수렵.채집생활에서 농사를 짓는 정착생활로 이어져 왔는데 수렵채집생활 시기가 훨씬 행복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불교계는 서기2017년 '부처님 오신 날' 을 맞이하여, 서기2017.4.29. 밤에 연등회를 개최했다. 불교행사라고 간판을 내 걸었지만, 실상은 우리의 나라 굿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에 다가 간 모습을 띠었다.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뛰어넘어 모두가 손에 손잡고 하나되는 평등세상, 홍익인간, 대동세상 판을 연출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지나가다 대거 참여하여 국제적인 성격까지 띄었다.

수렵. 채집생활시대가 지금 보다 나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얼마전에 한국에도 소개된 ‘유발 노아 하라리’라는 유대인 학자다. <사피엔스>라는 책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벼농사로 대표되는 신석기 혁명은 고통과 재앙의 시작이라고 꼬집었다. 농작물에 얽매이다 보니 생활반경이 극도로 제한되기 시작했고, 식량 면에서도 궁핍을 면치 못했다고 진단한다. 수렵. 채집시대가 훨씬 풍부하고 여유로웠다고 확신한다. 안함로의 <삼성기>에서 말하는 항득쾌락시대가 이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흔적을 이렇게 말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그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수렵. 채집시대에는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먹을 거리이기 때문에 식량걱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우주를 개척하는 첨단과학시대를 달린다고 하는 이 시대에도 아직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지구상 인구 절대다수가 먹을거리 걱정하며 한 평생 살아간다. 직업과 보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웃고 우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인구가 상당하다.

위나 단군 때 이러한 이상향의 시대를 돌아보고 이 시대를 하늘에 제를 올리며 노래와 춤으로 기렸다고 한다. 횃불로 밤을 밝히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둥그렇게 모여 춤을 추며 신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원형도 엿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문화는 인류원형문화이기도 하다. 중원대륙의 오지, 산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나, 남미대륙의 깊은 산속의 소수민족에게서도 발견되는 풍습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미한 그림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민속놀이로 정해져 인위적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무대공연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 서기2017.4.30.밤 종로길 에서 불교계에서 주최하는 ‘연등회’ 행사에나 등장하는 정도다. 그나마 강강수얼래라는 노래 한 토막속에서 일부만 구현되었을 정도다.

 

나라 굿, 국중대회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 나는 용광로...

위나단군 때의 이 하늘굿 행사를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국중대회’라고 불렀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학자들은 ‘제천행사’라고 이름 붙였다. 중국 측의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이나 <후한서> 동이열전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신명나게 잘 놀 줄 아는 민족이었는지 상세하게 나온다. 위나단군조의 하늘굿 잔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조선에는 무천, 부여에는 영고, 고구려는 동맹, 그리고 마한, 진한 등에서도 하늘에 굿을 올리는 큰 나라 굿이 있었음을 전한다. 요약해 보면, 우선 하늘에 굿을 올린다(祭天). 이어 모여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되 밤과 낮이 따로 없이 계속된다. 쉬지않고 이어진다(群聚歌舞飮酒晝夜無休).

더구나 고구려의 경우 남녀가 저녁과 밤에 모여 서로 취하여 노래 부르고 희롱한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相就歌戱). 이 대목은 고구려의 풍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동맹이라는 국중대회에서도 벌어진 일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늘 굿 잔치를 연일 벌이는 가운데 서로 짝짓기 행사도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젊은’ 남녀라고 하지 않고 그냥 ‘남녀’라고 표현하고 있다. 남녀가 저녁과 밤에 모여 끌리는 사람끼리 서로 취하여 노래로 화답하며 희롱한다고 한다. 남녀노소 모두 이 해방공간에서 인간 최대의 꿈이자 신비인 ‘사랑’ 찾기놀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금도 중국 산악 오지의 소수민족에게 전해오는 풍습이다.

▲ 이날 연등회, 회향한마당에서는 나라 굿에서 등장하는 환무를 추었다. 무대에서 국악인들이 이끄는 데로 강강수월래를 췄다.

지난 서기2017.4.29. 밤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축하 연등회 회향한마당에서 이 흉내를 약간 냈다. 흉내만 냈다는 것은 하다 말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벌어진 아쉬움이었다.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진행 했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개천절 행사를 <단군세기> 위나단군조나 <삼국지>가 알려 주는 대로 나라 굿으로 바꾸거나, 일제가 파괴하고 조선신궁을 세웠던 서울의 남산 국사당 굿을 복원하여 나라 굿 수준으로 바꿔서, 최소한 3일 동안 잔치를 벌이면 브라질의 '삼바축제' 못지 않은 신시의 부활이자 세계적인 축제가 될 것이다.

 

대종교,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하늘굿 잔치를 서기20세기를 전후하여 생긴 민족종교에서는 반 토막만 기리고 있는 정도다. 하늘과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정도에서 멈추고 있다. 이어지는 장단과 함께 춤과 노래, 서로 얼크러 설크러지는 어울림이 없다. 그러나 하늘굿의 근본인 하늘과 조상에 대한 제를 지키고 있다는 것 만해도 다행이라고 본다.

그래서 서기2017.4.11. 이러한 뿌리를 이어오고 있는 대종교의 마리산 참성단 어천절 행사를 따라가 봤다. 이 날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대종교 대절 버스를 타고 마리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걸어서 마리산 급경사의 수백계단을 1시간가량 올라 마리산 참성단에 이르렀다. 어천절행사는 예상과는 다르게 참성단에서 조금 떨어진 헬기장에서 진행되었다. 강화도 군청이 어천절 제사를 참성단 제단에서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12시경부터 시작된 어천제는 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대종교인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를 올렸다.

대종교는 단군을 모신다. 대종교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던 서기1910년대 나라가 망한 것이 자기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가져와 남의 정신으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각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불교의 석가나 유교의 공자가 아닌, 조선의 단군을 모시고 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종교의 기반은 공간적으로는 단군의 백악산 아사달로 비정되는 백두산이고 시간적으로는 단군이다. 대종교 역사를 보면 백두산의 선인으로 보이는 백봉신사라는 인물의 선맥仙脈을 이은 것으로 나타난다. 백봉신사의 제자로 보이는 백전이라는 노인이 대종교의 경전의 핵심인 ‘삼일신고’를 전해 주었다고 한다. 삼일신고는 대진국 발해의 개창자 대조영의 후손인 대야발이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서기2017.4.11. 음력 3.15. 이 날은 단군왕검이 조선을 열고 첫 임금으로 나라를 다스린 뒤, 하늘로 올라 간 날이다. 이를 기리는 날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자손들은 신화니 미신이니 하며 조상을 부정하고 있다. 대신에 밖에서 들어온 객귀를 따르며 그게 자기 조상이라며 신앙하고 있다.

 

삼일신고, 대종교 경전을 넘어서다...

삼일신고는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탐할 만큼 신비에 싸여 있는 글이다. 총 366자로 되어 있는데 이 안에 세상 모든 종교의 가르침과 진리가 다 들어가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여 있다. 그리고 아주 체계적이고 논리적라서 서양식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현대인들에게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날 어천절 제사에는 이 삼일신고의 원리가 잘 녹아 있었다. 삼일신고의 주인공은 하늘과 땅 사람이다. 그 중에서 사람이 으뜸이다.

본래 하늘인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은 다시 하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진리’로 짜서 신이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구체적이고도 자세하게 수행, 수련 방법까지 몇 글자 안 되는 말로 풀어주고 있다. 이것을 상징화한 것을 대종교 어천절 행사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하늘과 땅, 사람의 삼재, 또는 삼신의 원리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였다. 제사상을 흰 종이로 깔았는데 천지인을 나타내는 원방각을 새겨 놓고 거기에 맞춘 모양의 제기에 음식을 담아 올렸다.

 

세상 모든 종교에 성수聖水로써 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천수天水다. 제사상의 가장 높고 중요한 곳에 천수를 놓았다. 천수는 곧 물인데 물은 동양에서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시작과 끝을 뜻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죽음과 삶의 뿌리로 상징된다. 사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나서 물 같은 존재로 돌아간다. 어머니의 양수가 곧 물이다. 이 양수 속에서 태어난다. 물은 개념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무형적이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원형질로 비유된다. 인간도 죽으면 무형의 존재로 돌아간다. 우주의 대양大洋속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물은 삶과 죽음의 종착역이다.

물론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물이 갖는 의미는 크다. 죄를 씻어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 갠지스 강을 이룬다. 이 물속에 몸을 담금으로써 나의 죄를 씻어내고 신성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우리민족에게 물이 갖는 의미는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번 천도교에서도 살펴 본 것처럼 물 한 그릇만 있어도 어떠한 종교행사도 치룰 수 있다. 화려하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물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본향, 북두칠성과 이어진다. 북두칠성님이 청수에 드리워지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청수기도는 할머니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줄기차게 이어져 오던 신앙이다. 지금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와 같이 굳이 대종교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고유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에서 물 없이는 존립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 천도교, 증산 강일순의 증산교 등 우리 뿌리에 바탕을 둔 종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종교는 천도교나 증산교처럼 어느 개인이 창도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로는 단군에 터 잡은 기성의 신교를 다시 펼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물이 있다. 물이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종교의 보편적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대종교의 세계화 가능성도 내다 볼 수 있다.

▲ 이날 대종교 어천절 행사에 참여하면서, 교인들과 마리산 참성단을 함께 올랐다. 내려 올 때도 함께했다. 행사를 마치고 마리산 입구 식당에서 채식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같이 온 할머니 교인에게 어떻게 대종교를 믿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머니 때 부터 신앙했다고 했다.

대종교 어천절에 쓰는 모자의 역사성...

이날 대종교 어천절에서 제관들이 쓰고 있는 모자에도 눈길이 멈췄다. 특히 남성 제관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검은색에 곡선으로 된 모자였다. 대종교에서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모양의 모자를 쓰게 되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히 역사성이 있어 보였다. 특히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남부에서 발굴되는 금동관과 모양이 닮아 있다. 대종교 제관이 쓴 모자는 길쭉한 반달모양의 모자인데 금동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다만 천으로된 모자냐 금동으로 된 모자냐의 차이일 뿐이다.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은 분명히 무당이 굿을 할 때 쓴 것이다.

그 흔적이 아직도 전해져 오고 있다. 전라남도 주로 섬지방에서 전해오는 싯김굿에서 무당이 쓰는 흰종이로 된 모자다. 금동관을 간소하게 만든 모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종교 제관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이보다 더 간소화시키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시대의 관리가 쓰는 모자라고 하면 비교자체가 안 된다. 그러나 단군이 이 세상의 일을 끝내고 하늘로 올라갔다거나, 산신이 되었다는 것을 기리는 어천절이라는 제를 올리는 장에서 쓰는 모자라면 분명히 종교적 연원에서 나온 것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사장이 쓰던 금동관과 대종교 어천절 제의 모자의 상관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아직도 외래 종교가 대세인 이 시대에 소박하면서도 알곡의 어천절을 기리는 대종교 관계자들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다가왔다.

 

강한 신심으로 움직이는 대종교...

대종교는 아주 작은 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어천절 행사에 참석한 교인들 몇 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어떻게 대종교를 믿게 되었나요?” 돌아온 답은 어머니에게서 이어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이 그랬다. 집안이 대종교라서 후세들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뜻이 있어 입교한 사람, 소개로 입교한 사람 등 이었다. 우리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대종교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 할머니 교인은 어렸을 적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그 친정어머니는 그 마을에서 영험한 한 할머니가 단군을 믿어야 한다고 해서 대종교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 할머니 교인은 시집간 딸이 그렇게 열심히 대종교를 믿는다고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대종교를 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기뿐만 아니라 애들한테도 대종교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다고 한다.

▲ 마리산을 뒤 덮은 진달래. <단군세기>에 의하면 위나단군 때를 전후해서 수만 그루씩 심어서, 불함산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진달래 꽃 한잎을 입에 물고 참성단을 올랐다.

"지금 인간들이 3, 4월이 당진하면 꽃전놀이 화전놀이..."

이날은 4월 11일 초순임에도 햇볕이 따가웠다. 그렇잖아도 시커멓게 삭은 얼굴인데 더 까맣게 되어버렸다. 아직은 도력道力이 높지 않아 아무래도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된다. “저 사람, 왜 저렇게 이마가 시커멓지?” 라고 속으로 수군거리는 것 만 같다. 그나마 참성단에 올라가며, 내려오며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가 있어 위안이 되었다. 위나단군조에 나오는 불함산을 붉게 물들인 꽃이 이 진달래일까. 진달래는 무궁화보다 여러 면에서 좋다. 꽃을 즉석에서 따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입에 도는 향이 오묘하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미륵님의 노래(창세가) 말미에도 나오듯이 3,4월이 되면 인간들이 들과 산으로 꽃전놀이 화전놀이 하러 다닐 정도로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또한 뿌리는 한약재로도 쓰이고 깊은 떫은맛을 주는 차로도 끓여 마신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 앉아 봄 계곡 물소리에 시름을 흘려 보냈다. 그리고 진달래 한잎 입에 물고 상큼한 맛에 취해 본다. 산을 넘어 학교 다니던 어릴시절, 배고픔이 일상일 때 진달래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먹을 거리였다면 믿을까. 이제는 삶에 철이든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지나고 있으니 진달래 따다가 술이나 담궈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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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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