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심해지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바른역사교육이 답이다.

 

 

민족공동체에 역사란 무엇인가,

‘2002월드컵’ 4강에 우리는 왜 열광하는가.

김연아가 우승할 때 왜 우리는 내일처럼 여기는가.

박정학 한배달(사) 이사장,

"국사는 민족이 살아온 길"

현행 국사교과서는 민족공동체를 해체하자고 주장해...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다르게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개미나 벌, 원숭이 등 집단생활을 하는 생명체도 있다. 그러나 인간만큼 고도의 생각이 개입된 공동체를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을 갖고 살아가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공동체를 지키는 비결은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가지고 있는 어떤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어떤 가치는 무엇일까? 함께 살아온 경험일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해쳐온 삶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역사라고 한다. 이 역사를 통해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긍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간다. 또한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역사를 통해서 집단적, 개인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

우리가 세계축구대회(월드컵)나 올림픽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둘 때 감동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연아로 대표되는 한국인이 빙상춤 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세계정상에 오른 것을 내일처럼 여기고 열광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특히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 가서 큰일을 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것도 그와 내가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인간이라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다. 이처럼 인간은 공동체의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공동체는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고, 단일적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단일민족이냐 다민족이냐를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피(血)일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면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전자 등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서양과학의 기준일 수밖에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계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의 역사적 계보는 비록 신화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만 <부도지>라는 문헌을 통해서 확인된다. 마고에서 시작하여 궁희,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 한웅씨, 임검씨로 이어진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는 한국桓國의 한인桓因, 신시神市의 한웅桓雄, 조선의 단군왕검으로 이어진다. 한인, 한웅, 단군의 계보는 이성계 조선왕조실록이나 문집에서도 수 없이 등장한다. 이성계 조선왕조 초기에도 등장하는데 황해도 구월산에 한인, 한웅, 단군의 삼성조를 모시는 사당을 지어놓고 매년 제사를 지낸 사실도 확인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조선의 유민들로 개국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만주평강지역에서 발굴된 금동제 유물에는 독수리와 곰과 범 그리고 이리가 새겨져 있다. 독수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시 배달국의 한웅천왕을 상징하고, 곰과 범은 신시 배달국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을 나타낸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화하고자 하는 과정을 이 금동 제품이 그리고 있다. 이 금동 제품에 이리까지 새겨져 있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더 자세하게 그려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각저총의 벽화. 그림 왼쪽의 신단수로 표상되는 나무아래, 왼쪽과 오른쪽에 범과 곰이 등지고 앉아 있다. 곰과 범이 나오는 그림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고구려 장천1분의 벽화에도 비슷한 그림이 있다. 고구려인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웅천왕의 신시배달국까지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단군이전의 역사까지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곰과 호랑이만 나오지만 실제는 이리까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리(늑대)는 북방 초원의 몽골, 돌궐계통의 민족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신라는 <삼국사기>라는 문헌으로 조선의 후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고구려 각저총 벽화를 통해서 조선단군의 후손임이 밝혀지고 있다. 신단수 아래에 곰과 범이 함께 있는 장면이 이를 말해준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자연스럽게 조선의 후손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삼국이 신라와 대진국 발해로 이어지고 다시 고려로 이어지며 이성계의 조선으로 왕조시대를 마감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지고 오늘날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역사를 잇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계보를 통해서 우리가 단일민족이냐 다민족이냐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본 봐와 같이 우리는 단일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장구한 역사가 진행되면서 이 줄기에서 가지 쳐 나간 역사공동체도 수없이 있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열도의 일본민족이다. 때를 달리하여 끊임없이 이 땅에서 열도로 이주하여 지금과 같은 역사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이족이라는 기준을 놓고 볼 때 현재의 중국도 우리의 방계 역사임이 확인된다. 중국을 세운 중요 핵심 인물들이 모두 동이족이라고 중국의 수많은 1차사료와 문헌들이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이족을 우리민족으로 지칭하면서도 자기들의 조상이 결국 동이족이었다고 쓰고 있다.

만주와 몽골 초원지역에서 발흥한 북방민족도 마찬가지다. 수나라와 당나라를 세운 선비족의 조상이 동호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호족은 중국의 해당 1차 사료를 분석해 보면 결국 조선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북방의 흉노족이나 돌궐족, 몽골족, 만주족, 거란족도 모두 조선단군이나 부여, 고구려에서 나간 민족으로 확인된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역사의 뿌리는 우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의 사료는 물론 중국의 사료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극단적 민족우월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져,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이 이렇다는 것이다. 지금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독립해서 역사를 잇고 있지만 이들의 뿌리는 조선단군에서 나갔고 더 올라가면 한인의 한국에서 나왔으며 더 올라가면 마고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장손민족으로 계보를 가지고 있고, 동아시아의 다른 민족은 이후 분가해 나간 뒤의 독립된 자신들의 계보를 가지고 있다.

헌원자손 업어키우고,

동해섬 중 어린 것들 젖먹여 기른 민족...

이 같은 사실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노래가사가 있다. 대일광복투쟁기 신흥무관학교의 노래다. 이 노래 1절에는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헌원자손을 업어 길렀고, 동해 섬중 어린 것(일본)을 젖먹여 기른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는 우리 배달나라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 노래는 석주 이상룡 선생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당시 일제와의 역사전쟁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그가 쓴 것으로 알려진 책이 <대동역사>다. 이 집안이 조선단군의 2096년의 실사를 기록한 <단군세기>를 쓴 고려시대 이암의 고성이씨의 후손이기도 하다. 우리의 바른 역사를 전해 온 집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흥무관학교의 이 노래는 광복투쟁가들의 사기를 단순히 높이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나온 노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원대륙의 헌원자손을 우리가 업어 키웠다는 역사관은 객기도 아니고 만용도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특히 가사에는 흑룡, 태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태원은 현재 중국 산서성의 중심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제5대 모본태왕 2년 서기49년에 중원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정벌한다. 당시 한나라(후한)의 심장부를 휘젓고 돌아다닌 것이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태원과 모본태왕 때 정벌한 태원이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당시 광복투쟁가들은 정확한 실사에 바탕을 두고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시켰다.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헌원도 중국의 1차사료를 찾아보면 동이족에서 나갔음이 확인된다. 우리가 동아시아 역사의 뿌리임을 이러한 노래가사로도 엿볼 수 있다.

▲만주 평강지역에서 발굴된 금동제품. 곰과 독수리가 이어져 있다. 이른바'단군신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밖에 달리 해석이 안된다. 왼쪽의 범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있다. 맨 오른쪽 아래는 이리가 제3자로 구경하고 있다. 곰은 독수리와 눈을 맞추고 있으며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권은 지정학적로도 단일민족일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크게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지형적 환경을 이루고 있다. 물론 북쪽 경계는 근현대사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혈통적으로 외부에서 다른 민족이 들어와 피가 섞이는 현상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에 의한 단일민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일본열도의 일본인이다. 일본열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고립된 환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가 바로 옆에 있다.

때문에 골상학, 유전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이 90%에 육박한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방송(SBS)의 '스페셜'이나 한국방송(KBS)의 '몽골리안루트'에서 밝힌 것 만해도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원대륙이나 초원대륙은 사방이 트여있어 수많은 민족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상이 되풀이되어 혼혈이 자주 일어나는 역사일 수밖에 없다. 송나라나 명나라 등 본래 한족이라고 하는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북방민족이 세운 원나라,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가 중권을 지배하면서 피 섞임이 심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부에서 다른 민족이 들어와 혼혈된 현상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미미하여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거대한 호수에 물감을 몇 방울 떨어뜨린 수준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수백,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기운과 산물을 먹고 살았음을 감안하면 원래 우리민족과 같은 모습으로 동화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중국 절강성지역에 중국인 이슬람교 인들이 살고 있다. 모습을 보면 완전히 현재의 중국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을 추적해 올라가면 중동의 아랍 이슬람교인 들이 이곳에 정착했음이 확인된다. 전형적인 아랍인들이 중국에 정착하여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완전히 현재 중국인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다른 민족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상황이 달라져 국제결혼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전국토의 절반이상을 자치하고 있는 농어촌에서는 농어촌으로 시집오겠다는 여자들이 없어, 외국인 여성들로 대체되고 있다. 혼혈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까지의 역사는 단일민족의 역사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설사 앞으로 다민족 상태로 역사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지정학적인 환경이 외부와 상대적으로 고립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이 땅의 역사는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의 역사로 진행 될 수밖에 없다. 소속감도 그만큼 강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사면이 바다로 된 섬이라 소속감이나 결속이 얼마나 강한지 이들이 저지른 2차 세계대전에서 확인된다. 지금도 ‘천황제’를 중심으로 언제든지 극단적 ‘황국신민’으로 부활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적 역사공동체를 부정하고 민족해체를 국가가 앞장서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서기2017.4.22. 국사광복단 ‘삼태극(http://cafe.daum.net/mookto)’이 개최한 정기역사모임에서 한배달(사) 박정학 이사장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국사교과서를 자세히 분석해서 본 결과 이렇게 드러난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정한 기준과 체계가 없는 누더기 국사교과서라고 했다. 국사책이라는 것이 국민을 상대로 역사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국가라는 공동체 구성원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기본적인 설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는 혈연에 바탕을 둔 민족이 중심을 차지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 이사장은 ‘국사는 민족이 살아온 길’이라고 정의했다(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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