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손병희 탄생 156주년기념 행사를 다녀오다.

 

대한민국의 현주소 그리고 의암 손병희...

의암 손병희를 빼고는 한국 근대사를 말할 수 없다?

대권후보, 누가 의암의 염원을 완수할 것인가...

 

정신부터 붕괴되는 대한민국, 그 원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짜 놓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3.1독립혁명과 4.19민주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친일파 정권 들어서 대한민국을 떠 받쳐온 이런 가치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헌법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대일광복투쟁정신이나 광주민주화투쟁정신이 깎이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친일파가 주도하여 세운 서기1948년의 대한민국정부수립에 초점을 맞추어 ‘1948건국절’을 범정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3.1독립혁명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라 친일파가 주도한 정권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5.18광주 민주항쟁을 북한군이 내려와서 저지른 것이라고 하고, 이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국가보훈처에서는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얼마 전에 책을 내고 부부가 광주민주항쟁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에 친일파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반민주 군사독재세력이 영웅으로 희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부터 추진되어온 이승만 국부 만들기와 함께 박정희를 대한민국을 근대화시킨 영웅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북한 김씨 왕조에서나 어울리는 이승만-박정희 동상세우기 및 생가 복원과 공원 조성 등으로 이들은 우상을 넘어 신이 되어 가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제주 4.3학살과 항쟁을 촉발시킨 친일지주세력의 집합체인 서북청년단까지 등장하여 세상을 경악케 해 하고 있다.

▲ 서기2017.4.8. 충북 청주시 의암 손병희선생의 사당에서는 의암 탄생 156주년 기념 탄신제가 열렸다. 참석한 기관장들과 주민들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친일매국세력, 서북청년단 까지 등장하는 대한민국...

최근에 벌어진 3.1독립선언의 주역, 의암 손병희 선생에 대한 모독과 명예훼손사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확인된다. 대일광복투쟁사에서 중추적 인물을 꼽자면 의암 손병희 선생을 들 수 있다. 의암이 우리나라 근대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크다. 그가 주도한 3.1독립혁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전신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도 없었을 것이다. 3.1독립혁명을 기점으로 대일광복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 중심체로 등장한 것이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다. 3.1독립혁명을 계기로 그 전의 전제군주제의 대한제국에서 국민주권의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굵직한 근대사의 중심에 의암이 있다. 의암의 이 같은 힘은 이미 동학농민혁명과정에서 나타났다. 동학농민혁명당시 북접의 통령으로 동학혁명봉기를 주도한 것이다. 의암의 생애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의암을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사교과서의 근대사 부분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道人으로서의 의암, 손병희...

의암은 동학을 천도교로 바꾸고 제3세교주로 취임한 것에서 그가 종교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애를 보면 종교 수행인으로서도 모범적이었다. 도력이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음이 확인된다. 흔히 말하는 득도의 경지에 올랐음을 그의 언행에서 감지된다. 특히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도를 닦은 적멸 굴에서 수운이 의암을 통해서 부활하는 사건이다. 의암이라는 개인성 또는 아상我相이 사라지지 않고는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의암에게서 수운이 드러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의암이라는 개아個我가 사라진 우주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아무개 무당이라는 개체가 사라져야 신이 들어올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순간만큼은 오관으로 판단하는 육근을 가진 아상은 사라진다.

▲ 의암 손병희 선생이 살았던 집 전경. 초가집의 부엌 서가래를 보면, 검게 그을린 자욱이 남아 있어 세월이 오래된 가옥임을 알 수 있다.

교육자로서의 손병희...

의암은 3.1독립혁명을 주도함으로써 광복투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의암의 노력을 보면 선각자 적인 모습이다. 64명의 유학생을 선발하여 침략자의 본거지인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일본을 알고 신문물을 배우게 하여 대일해방투쟁은 물론 해방 후 국가재건의 인재로까지 키우고 있다. 또한 교육자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여러 학교에 의연금을 지원하여 교육을 통한 독립투쟁을 모색한다. 서기1907년부터는 학원을 만들거나 인수하여 교육 사업에 뛰어 든다. 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원, 현 동덕여자대학교의 전신인 동덕여학원을 비롯한 문창, 보창, 명신, 양영 등 수십 개의 남녀학교를 운영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경세가로서의 손병희...

의암은 또한 정치가와 사업가로도 활약을 한다. 국제적으로는 신해혁명을 주도한 중국의 손문과 교류하며 향후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나라의 기초를 어떻게 다질 것인지 의기투합한다. 출판사와 인쇄소등 사업체를 운영함으로써 부를 축적하여 독립투쟁자금으로 활용한다. 3.1독립혁명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과 독립투쟁의 아버지 격인 백범 김구가 모두 의암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암은 이처럼 우리 근대사에서 다방면에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의암은 서기1920년에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러나 일제의 고문으로 병이 들어 옥고를 치르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된 지 2년만인 서기1922.5.19. 순국한다. 선생의 유해는 서울 삼각산 동쪽 우이동 언덕에 안장되었다. 우이동에는 봉황각이 있어 해마다 3.1절이 되면 만세를 부르며 기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서기21세기 지금 대한민국은 이 위대한 인물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일개 학원 강사에게 웃음거리로 전락되도록 방치하고 있다.

▲ 이 지역의 태권도 단체가 대학생들과 함께 3.1독립혁명을 기리는 공연으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지역사회에서 손병희의 업적과 정신 이어가...

의암 손병희 선생은 서기1861.4.8. 충북 청원에서 태어났다. 의암이 태어난 지역사회에서는 손병희 선생의 생가을 보전하고 사당을 세워 업적을 기리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를 통해서 지역사회에서 나마 선생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서기2017.4.8. 선생의 생가와 사당이 세워진 유허지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 탄생 15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청주 시장과 시 의장 및 충청일보 회장 등 지역의 유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에서 이승훈 청주시장은 시 차원에서 매년 이 행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황영호 청주시의회 의장과 김이주 충북남부보훈지청장도 의암탄생기념행사를 지역사회의 큰 행사로 확대하여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겠다고 다짐했다.

 

손윤, 의암기념사업회 이사장의 희생 돋보여...

이 행사를 기획하고 이끈 손윤 의암손병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격려사를 통해서 청주가 의암 손병희 선생을 통해서 독립투쟁의 본거지가 되었음을 상기키며 의암을 기리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나 그가 속한 천도교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의암을 기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했다. 혁명가요, 사상가요, 민족 지도자로서의 의암을 기리는 것이라며 의암의 이런 모습을 계승해서 혼돈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고 역설했다. 이 밖에 이종성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청주지회장, 손윤섭 밀양손시종친회 충북지부장, 전규식 청주시의원, 석성초등학교 김순남 교장, 배길 초등학교 이경재 교장 등이 참석했다.

▲ 이 지역 마을 사람들이 부녀회를 중심으로 소박한 식사와 과일, 술과 떡 등을 참석자들에게 대접했다. 자발적이고 자원봉사라는 점에서 의암 탄신제가 더욱 뜻 깊었다.

이날 식전 식후 행사에는 의암선생을 기리는 공연과 합창 그리고 태권도 시범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등장하여 참석한 주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육군37사단 군악대가 행사를 더욱 경건하게 했다. 행사를 마치고 의암 유허지 입구에서 지역의 부녀회가 마련한 점심식사가 있었다. 단체에서 경비를 지원해서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소박한 점심잔치였다. 국수와 돼지머리고기 과일 그리고 떡으로 행사에 참석한 손님들을 대접했다. 물론 소주와 지역의 특산물인 막걸리도 나왔다. 자발적이고 자원 봉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날 의암손병희선생탄생 기념행사는 의미하는 바가 컸다. 내년에는 더 알차게 열린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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