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마행사에 일본 차관급 관리가 참석해 더욱 노골화 되는 독도 침략...

독도가 오늘날과 같이 일본이 노골적으로 침탈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부터다. 김대중 정부는 현재 이명박근혜 정권의 전신인 신한국당 김영삼 정부가 일으킨 환란(97아이엠에프)를 극복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이 때 일본으로 부터 금융지원을 받으면서 독도에 대한 어로수역을 일본에게 대폭 양보한다. 이후 이명박 정권 들어 일본신문이 보도한 것 처럼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겉으로는 대응하는 듯 했으나,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이명박 정권때 일본의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밟아야 한다면서 김포공항까지 들어오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친일로 기울어졌다. 더욱 거세지는 독도침략에 외교부 성명만 발표할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고 위안부 협상하고 자위대 창설기념식을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이는데도 오히려 축하사절을 보냈다. 정부출연기관 간부는 '천왕폐하 만세'를 부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래는 지난 정태만 박사의 독도는 우리땅 11회에 이어 12회가 이어진다(편집부).

 

 

<태정관지령>의 ‘외일도’ 즉 독도는 당시 어떤 모습이며

무엇이 나오는 것으로 적고 있나...

<태정관지령>에서 ‘외일도’가 어떤 섬인지는 부속문서에서 ‘松島’라는 명칭과 함께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고, <기죽도약도>에도 松島가 시각적으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아래 <그림 5>와 같이 <기죽도약도>에서는 부속문서의 설명과 같은 위치에 ‘기죽도磯竹島’, ‘송돟松島’, ‘은기隠岐’가 그려져 있고, 松島 부분은 아주 자세하게 큰 섬 2개와 주변의 작은 바위들까지 그려져 있다. 실제 지도와 비교해 보면 <기죽도약도>의 ‘磯竹島’, ‘松島’, ‘隠岐’는 울릉도와 독도. 일본 오키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松島가 東島와 西島로 구성되어 있는 독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

▲ <그림 5> 위 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파들은 이것 마져도 부인하며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생떼를 쓴다.

독도는 돌로 된 섬이기 때문에 ‘외일도’에 대한 설명에서 “수목이나 대나무는 거의 없다”(樹竹稀ナリ)는 것도 실제 독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독도 주변은 얕은 바다에 수많은 돌섬이 있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지금은 멸종되고 없지만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사자가 많이 잡혔다. 따라서 '외일도' 설명의 끝부분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물고기와 짐승을 잡을 수 있다”(亦魚獸ヲ産ス)는 것도 독도와 일치한다.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측의 억지주장이 기가막혀...

1987년 <태정관지령>을 발견․공개한 호리 가즈오(堀和生)는 그의 논문에서 “당시(1877년) 일본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은 시마네현과 내무성이 상신해온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를 쌍으로 이해하고 양도(兩島)를 일본땅이 아니라고 공적으로 선언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2006년에는 <태정관지령>의 부속지도인 <기죽도약도>가 우루시자키 히데유키(漆崎英之)에 의해 발견․공개되어 보다 분명하게 <태정관지령>의 ‘죽도외일도’가 울릉도와 독도라는 것이 밝혀졌다.

<태정관지령>은 그 후에도 주로 일본계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박병섭과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는 <태정관지령>에 대한 연구결과를 책으로 펴내고, <태정관지령>과 그 부속지도인 <기죽도약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공개했으며, 호사카유지는 <태정관지령>에 나오는 ‘외일도’가 독도라는 것을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여 입증했다.

위의 독도연구자 들은 공통적으로 <태정관지령>의 ‘죽도외일도’가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다케시마문제연구회를 중심으로 일부 일본의 독도연구자는 여전히 <태정관지령>의 ‘외일도’가 독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다케시마문제연구회 좌장 시모조 마사오(下条正男), 연구회 고문 스기하라 다카시(杉原隆)와 쓰카모토 다카시(塚本孝), 오니시 도시테루(大西俊輝) 각각의 ‘외일도’에 대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회의 좌장 시모조 마사오는 <다케시마문제 조사연구 최종보고서>(2007. 3)에서 <태정관지령>의 '외일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太政官指令>의 「竹島他一島 본방지 관계없음」의 가운데는, 현재의 竹島(독도, 필자 주)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략)

그런데 태정관이 <관계없음>이라고 한 <竹島他一島>를 󰡔공문록󰡕이나 󰡔태정류전󰡕에 수록된 관련문서에서 보면 울릉도에 해당하는 竹島와 <鳥取藩米子의 大谷家가 표착한> 松島에 관한 기재가 있을 뿐, 현재의 竹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정관이 ‘관계없음’이라고 한 「竹島他一島>는 두 개의 울릉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현재의 竹島와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용되고 있던 지도에 기인된다. 그 지도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竹島(알고노트 섬)와 松島(다쥬레 섬)의 두 섬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시볼트가 서구에 전한 <일본도>에 있다. (중략)

<太政官指令>으로부터 3년 후, 태정관이「他一島」라고 한 松島(다쥬레도)는, 울릉도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1880년, 외무성이 天城艦을 松島에 파견하여, 측량조사를 명했기 때문이다. 측량을 마친 天城艦은 「松島, 韓人 이를 울릉도라 칭한다」라고 보고하여, 松島는 한국의 울릉도인 것이 확인되었다. (중략)

1877년의 <太政官指令>은, 2개의 울릉도를 「본방 이와 관계없음」이라 했는데, 天城艦의 보고로 松島는, 울릉도인 것이 확인되어 있었다. 당시, 리양코도라고 불리던 竹島는, <太政官指令>과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밑줄은 필자 주)

 

독도가 일본과 상관없다고 한 <태정관지령>을 생 무시하고

엉뚱한 자료 끌어다가 <태정관지령>부정하는 일본의 막가파들...

<태정관지령>에서는 '외일도'는 松島라고 밝히고 松島의 위치, 형상, 산물 등에 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한 부속지도인 <기죽도약도>에 의하여도 '외일도', 즉 松島가 어떤 섬인지 자세히 표기되어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모조 마사오(下条正男)는 <태정관지령>에는 “현재의 竹島(=독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고 단정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논리를 펴고 있다. 시모조 마사오는 ‘죽도외일도’는 현재의 竹島(=독도)와는 관계가 없으며, 두 개의 울릉도를 가리키고 있고, <태정관지령>의 ‘외일도’ 즉 松島가 울릉도라는 것은 일본 군함 아마기(天城)에 의해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1880년 군함 아마기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제24호 수로보고 제33호

이 기록은 아마기함 승무원 해군소위 三浦重鄕의 간략도 및 보고 관련 기록이다.

日本海

松島[한인은 이를 울릉도라고 칭한다]에서 정박지 발견

松島는 아국 오키도에서 북서쪽으로 140里 떨어진 곳에 있다. 그 섬은 종래에는 바닷사람의 정밀한 검사를 거치지 않아서 그 가박지(假泊地) 유무 등을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금번 우리 아마기함(天城艦)이 조선에 갔을 때 그 섬에 들러서 그 섬의 동쪽 해안에 정박지를 발견하였다. 즉 다음의 그림과 같다. 위와 같이 보고합니다.

1880년(明治十三年) 9월 13일 수로국장 해군소장 柳楢悅

 

이와 같이 <태정관지령> 3년 후의 군함아마기 보고서는 <태정관지령>의 ‘松島’가 어떤 섬인지를 조사한 보고서가 아니다. 단순히 울릉도를 조사하고 울릉도를 ‘송도[한인 이를 울릉도라고 칭한다]'라고 표기한 울릉도에 대한 보고서일 뿐이다. 군함아마기 보고서 어디에도 <태정관지령>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울릉도를 松島로 표기한 보고서나 기록은 군함아마기 뿐만 아니다. 메이지(明治)초기에는 정부기관내에서도 외무성과 해군수로부를 중심으로, 독도를 리앙쿠르암으로 부르거나 울릉도를 松島라고 부르는 등 몇 가지 명칭이 혼용되고 있어서, 1883년 해군수로부 발행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 1883년 외무성 내부통달도 울릉도가 ‘竹島 또는 松島’로 불리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기록 어디에도 <태정관지령>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울릉도가 松島라는 명칭으로 불린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시모조 마사오는 많은 명칭 혼동 사례 중 군함아마기 보고서만을 골라서 군함아마기 보고서에 의해 <태정관지령>의 松島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라는 것이 판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정태만(인하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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