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20.5.31 일 20:45
상단여백
HOME 시대별 주제 상고사
조선(단군)의 서쪽 국경선은 어디인가?몸은 해방되었으나, 우리 정신은 아직도 일제의 포로신세...
김봉렬 | 승인 2017.01.13 15:42

낙랑군 재하북성설의 10가지 핵심 근거(일곱 번째)

김봉렬이 보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3)

 

우리의 과거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역사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 역사가 우리 것이 아니라면?

우리역사의 머리, 조선(단군)의 역사가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준

거짓된 것이라면?

이 후의 역사는 모두 어그러진 것...

 

각각의 사료들이 말하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다시 살펴보자.

진나라의 장성 동쪽 끝이 곧, 조선(단군)의 서쪽 국경선...

1) 『태강지리지』(사료 D-1)의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는 기록은 『사기색은』에서 고대의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우공갈석’을 주석하면서 인용한 구절이다. 따라서 ‘낙랑군 수성현’과 ‘갈석산’ 및 ‘만리장성의 동단’은 모두 황하 하류 해변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황하 하류는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일대 보다 동쪽으로 흐른 적은 없었다. 따라서 갈석산은 하북성 천진시 서남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나라 영토로 편입된 낙랑군 수성현을 찾으면 조선의 실체가 드러남...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에는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고, 고대에는 황하하류가 그곳으로 흘렀으며 갈석산(백석산 또는 낭아산)이 있고, 만리장성의 유지도 남아있다. 『태강지리지』(사료 D-1)는 황하 하류의 갈석산을 설명하고 있는데, 황하하류로부터 동쪽으로 무려 3,000여리나 떨어진 한반도 평양에서 갈석산과 만리장성의 동단을 찾는 것은 옳지 않다.

2) 『진서』「지리지」(사료 E-1)의 “낙랑군 수성현은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는 기록에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진서』「지리지」의 평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서진의 ‘낙랑군 수성현’은 평주에 소속된 군현이었기 때문에 서진의 평주 위치를 알면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일제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일대에 있었다고 역사를 날조했다. 평양일대에서 수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하면서 기와 지붕에 쓰이는 중국 '와당'도 제시했다. 와당은 반드시 와당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와조각도 나와야 한다. 또한 건물터도 나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와당만 제시하고 있다. 날조라는 얘기다. 식민사학계는 이러한 일제의 역사날조를 적극 계승하면서 우리역사를 중국에 팔아먹고 있다.

위 사진(http://hssn2710.blog.me/220505491226)은 일제가 평양에서 발굴했다는 와당. 장생무극長生無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중원대륙 깊숙히 하북성 보정시에 현재도 남아 있는 수성현...

『진서』「지리지」에 의하면 서진의 평주는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고 하였다. 이 지역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서진의 평주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므로 평주에 속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도 당연히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북성 지역에서 수성현遂城縣이라는 지명을 찾아보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수성遂城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버젓이 남아있고, 그곳에 만리장성의 동단이 있었음은 위에서 『태강지리지』(사료 D-1)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따라서 『진서』「지리지」(사료 E-1)의 기록 또한 ‘낙랑군 수성현’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임을 나타내는 사료이다. 『진서』「지리지」에 나타난 서진의 평주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므로, 그 평주에 속한 ‘낙랑군 수성현’을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지 한반도 평양 일대에 비정하는 것은 명백한 사료왜곡이다.

3) 『통전』(사료 F-1)의 기록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사료의 해석이 불명확하며, 이 기록을 가지고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전』(사료 E-2)의 또 다른 기록에서 “(역주) 수성현은 옛날의 무수현이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통전』(사료 E-2)에 기록된 역주易州 수성현遂城縣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과 같은 지역이다. 따라서 『통전』의 저자 두우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사료의 해석이 불명확한 『통전』(사료 F-1)의 기록을 근거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해석이 아니다.

 

하북성 보정시의 수성遂城은 수나라때 생긴 것,

그 전에는 무수(遂城舊曰武遂/隋書卷三十 志第二十五, 地理中)...

한나라시기 낙랑군 수성현과는 상관없어(편집자 주)...

그렇더라도 진 장성은 결코 식민사학이 말하는 북한이나 현재의 요동이 될 수 없어...

대륙의 하북성에 존재했다(편집자 주)...

이와 같이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태강지리지』(사료 D-1)와 『진서』지리지(사료 E-1) 및 『통전』(사료 F-1)의 기록들은 모두 낙랑군 수성현과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사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3천 여리나 동쪽으로 왜곡하여 한반도 평양 일대로 그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과연 중국의 학자들이 관련 사료들을 올바로 해석할 줄 몰라서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한반도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평양 일대를 한나라 낙랑군 지역으로 왜곡하여 통설로 확정하였고,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강단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서 낙랑군 수성현이 한반도 평양 일대라고 주장하는데, 중국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까지 왜곡하여 그리는 것이다. 현 강단사학계의 잘못된 통설이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근거가 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아야 한다.

글: 김봉렬, <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김봉렬  mukto@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조선사(주) | 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로7길 17, 네스빌 609호  |  대표전자우편: mukto@naver.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종홍
발행인 : 나한엽  |  편집인 : 오종홍  |   등록번호 : 서울 아03803  |  등록일자 : 서기2015.06.22.
Copyright © 2020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