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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이 보는 조선(단군)의 서쪽경계는?강단식민사학계는 일제와 중공의 역사관에 따라 조선을 축소하기 바쁘다...
김봉렬 | 승인 2017.01.12 16:30

 

   낙랑군 재하북성설의 10가지 핵심 근거(일곱 번째)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2번째 이야기

역사는 사료 해석이라고도 볼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원사료를 해석해 보면,

얼마든지 조선(단군)의 서쪽 경계가 중원대륙 깊숙히 들어가 있음이 확인된다.

 

이번 글에서는 진나라의 장성

즉, 서기2세기경 조선의 서쪽경계를 다르게 보는 주장들을 비판한다.

 

5. 기타 학설에서 보는 만리장성 동단의 위치와 문제점

(1)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설’의 문제점

윤내현을 비롯한 다수의 재야사학자들은 만리장성의 동단을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일대로 보고 있다. 그 핵심 근거는 갈석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려현의 갈석산은 ① 수‧당의 고구려 침략을 위한 역사왜곡, ② 요나라 시기의 대대적인 지명 이동, ③ 송나라 주자학파들의 ‘구하윤해설九河淪海說’ 등 3단계의 왜곡 과정을 거쳐서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이 지명 이동된 ‘가짜 갈석산’이다.(‘5. 고조선의 갈석산은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이다.’ 참조) 그러므로 이곳은 낙랑군 수성현이나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다.

각종 사서들의 기록을 통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사기정의』(사료 B-2)에 의하면 만리장성은 동쪽으로 이어져 요수에 닿고, 그리고 서남쪽으로 바다로 이어졌다. 윤내현 등은 요수를 난하로 보고 있는데, 현재 난하 부근의 장성은 난하를 넘어 동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기정의』(사료 B-2)의 요수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과는 방향이 맞지 않다.(<그림 1> 참조) 더구나 난하 방면의 장성은 진장성이 아니라 명나라 시대에 축조된 명장성으로, 학계의 이견이 없다.

2) 『후한서』(사료 C-1)에 의하면 진나라 만리장성은 중산(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정주시)으로부터 왕복 5일 이내에 행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임조에서 진황도시 창려현(갈석산 2)까지 이어진 장성은 가장 가까운 곳도 중산으로부터 왕복 1,000리가 넘으며, 왕복하려면 20여일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이므로 『후한서』(사료 C-1)의 기록과 맞지 않다.(<그림 1> 참조)

3) 『태강지리지』‧『진서』‧『통전』‧『무경총요』등 수많은 사서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수성현遂城縣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서에서 수성현遂城縣 설치 기록이 나타나는 곳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이 유일하다. 진황도시 창려현 일대에는 수성현이 설치되었다는 역사기록이 없으므로 이곳을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윤내현 등이 진황도시 창려현 일대를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비정한 것은 갈석산의 지명이 이동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지명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 갈석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진황도시 창려현 일대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2,000여 년 전의 사서에서 기록된 갈석산과 동일하게 보고 역사를 해석하면 올바른 해석이 될 수 없다. 갈석산을 통하여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알려면 갈석산에 대한 보다 철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각 학설에서 주장하는 조선의 서쪽경계(진장성) 위치도. 식민사학계에서는 조선을 아주 초라하게 그린다. 따라서 진장성이 현재의 요하 동쪽까지 왔다고 한다. 심지어 북한 평안도까지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복속공작인 동북공정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 ‘요령성 요하 유역설’의 문제점

노태돈을 비롯한 현 강단주류사학계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현 중국 요령성 요하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노태돈의 주장을 살펴보자.

“갈석은 현존하는 만리장성의 동단인 산해관과 근접한 지역에 있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현존하는 장성은 후대의 것이다. 연‧진대의 장성은 그보다 훨씬 북쪽에 설치되었음이 그 유적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요령성 지역의 장성 유지는 두 개의 줄기를 이루며 동서로 길게 뻗쳐 있다. 북쪽 성벽의 유지는 화덕현 동쪽에서 영금하 북안을 거쳐 적봉, 오한기, 고륜의 남쪽 등을 거쳐 부신현 동쪽에 이르며, 남쪽 성벽은 객라심기와 적봉 남부를 거쳐 노합하를 넘어 건평현 북부와 오한기 남부를 지나 북표현에 이른다. 능선을 따라 전개되어 있는 긴 성지의 자취는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그리고 장성의 자취가 이어지는 군데군데 요새가 존재하였고 그곳에서 연‧진‧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일찍이 40년대에 동주신에 의해 일부분이 조사 보고된 바 있다. 60년 초 북한에서의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 사실이 지적된 바 있었으나, 외면하고 재요령설이 정설화되었다. 근대에도 이 유적에 대해 그것은 기껏해야 한나라 때 변경에 설치된 간단한 장새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의해 원거리에 걸쳐서 축조된 장성의 유지로 보아야만 한다. 『사기』에서 전하는 연‧진 장성의 동단이 오늘날의 요하선에 이르렀음은 실물 유적을 통해 확인되는 바이다. 따라서 연‧진대의 장성이 요서의 갈석산에 이른다는 설과. 그것을 전제로 한 위에서 제기된 낙랑군 및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에 대한 비정은 부정된다.”(노태돈 저 <고조선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11-13쪽 참조)

노태돈이 연‧진 장성의 동단을 요령성 요하 일대로 보는 주요 근거는 요령성 지역에 위치한다는 장성의 유지이다. 중국학계에 따르면 요하 서쪽의 요령성 지역에 동서로 길게 뻗은 두 줄기의 장성유지가 존재하는데, 그곳에서 연․진․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장성유지를 연․진 장성 유지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동북공정에 따라 만주일대에 성터 유지가 있으면 무조건 연‧진시대의 장성유지로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학계가 요령성의 연‧진 장성유지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냥 돌무더기가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것으로 장성 유지라고 보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그리고 유물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한 것으로 연․진․한대의 유물이 나왔다고 그것을 연․진 장성 유지라고 보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각종사서에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일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 요령성 요하일대는 각종사서에 등장하는 만리장성의 동단에 대한 기록들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강단사학계가 중국측이 일방적으로 발굴‧조사하여 발표하는 유물들을 근거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요령성 요하 일대로 비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역사연구 방향이 아니다.

 

(3) ‘한반도 평양설’의 문제점

1982년 중국에서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은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까지 그리고 있다. 그 근거로는 아래의 사료 D-1, 사료 E-1, 사료 F-1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들 사료에 기록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이며, 한반도 평양일대가 아니다.

D-1

『사기색은』 :『태강지리지』는 말하기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고 하였다.索隱太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史記』卷二, 夏本紀第二

 

E-1

낙랑군은 한나라가 설치했다. 6개현을 다스리며, 3,700호이다. 조선현: 주나라가 기자를 봉한 땅이다. 둔유현. 혼미현. 수성현: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누방현. 사망현. 樂浪郡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朝鮮周封箕子地. 屯有 渾彌 遂城秦築長城之所起. 鏤方 駟望. 『晉書』卷十四, 志第四, 地理上, 平州, 樂浪郡

 

F-1

노룡은 한나라 비여현으로 갈석산이 있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이름을 얻었다. 진晉 『태강지지』에 말하기를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일어났다”고 하는데, 지금 고구려의 옛 지경에 있으며 이 (노룡현의) 갈석이 아니다. 盧龍漢肥如縣. 有碣石山, 碣然而立在海旁, 故名之. 晉太康地志云 :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 非此碣石也. 『通典』卷一百七十八, 州郡八, 古冀州 上(3부에서 계속)

글 : 김 봉 렬『고조선으로 가는 길』저자

 

김봉렬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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