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란, "맺힌 것을 풀어주는 것"...

우리문화의 원형질, 굿과 무당(3)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지간난 만신...

삼신신앙으로 가득한 지간난 만신의 개성굿...

고려태조 왕건이 훈시한 팔관회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지간난 만신의 신당굿...

 

 

동학, 증산교, 영가무도는 선맥의 부활이자 무당의 부활...

소중화 조선말에 등장한 민족종교로 최수운의 동학(천도교)과 강증산의 증산교가 있다. 이 두 종교처럼 크게 조직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정역正易을 만든 김일부(金一夫서기1826~1898)의 영가무도詠歌舞蹈가 있다. 동학은 경상도에서 증산교는 전라도에서 김일부의 영가무도는 충청도에서 일어났다. 세 명의 성인이 거의 같은 시기에 삼도에서 하나씩 나왔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선사仙史에서 한 획을 긋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세개의 신흥민족종교에는 주문呪文이 있다. 동학의 천도교에는 시천주侍天呪가 있고 증산교에는 태을주太乙呪가 있다. 그리고 김일부의 영가무도에도 ‘음아어이우’라는 노래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주문이다.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히 되풀이 하면 정신이 하나가 되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문은 거대조직종교에서도 보인다. 불교에는 반야바라밀다주가 있고 기독교에서는 주기도문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알라후’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선사仙史에도 선인이 되는 수행법 속에 주문이 보인다.

 

태백선인 한웅천왕은 무당의 원조...

<규원사화>에 호국백두악 태백선인으로 나오는 한웅천왕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건설하기에 앞서 먼저 선인되는 수행을 한다. 마지막 수행으로써 기도를 하며 공력이 있게 해달라고 한다(呪願有功). 이러한 기도는 곰녀가 한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할 때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할 때도 한다. 한웅천왕은 공력이 가지게 해달라고 빌고 이어서 약을 먹고 선인이 된다(服藥成仙). 그리고 그 결과 괘를 그려 미래를 알고 상을 잡고 신명을 부릴 수 있는 존재로 탈바꿈한다(劃卦知來執象運神命). 이러한 한웅천왕의 수행과 성선 기사는 <안함로 삼성기>에 나온다. 본 기사 ‘우리의 원형질, 굿과 무당’ 1부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원시조로 알려진 황제헌원이 만신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존재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오늘날 무당의 굿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도 굿과 무당은 종교의 원형이고 선도, 풍류도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무당의 별칭으로 화랭이, 사니가 쓰이고 있다. 화랭이는 신라의 화랑이고 사니는 선인의 발음상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 버린 경기도 개성의 덕물산의 굿. 무당이 사방으로 활을 쏘아 액을 쫓는 행위를 하고 있다. 덕물산은 우리나라 무당의 성지로 알려져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무당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최영장군이 모셔져 있는 신당이 있었다. 일제침략기 일인이 우리 무속을 채집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지간난 만신도 개성굿에서 서낭굿을 할 때 활을 쏘았다고 한다.

접신을 하는 또 하나의 소재, 신령스런 약물...

한웅천왕이 수행을 하는 과정을 보면 약을 먹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무당(샤만)에서도 거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도의 힌두교 신화에는 신령한 음료로 '소마(soma)'가 나온다. 유럽 쪽에는 버섯이 등장한다. 북방시베리아의 무당들에게도 버섯이 접신할 때 쓰이는 보조 재료다. 현재 우리나라의 강신 무당들은 굿을 할 때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 담배를 피우던 조상신이 내려서 피운다고 한다. 또는 술도 마신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조상신이든 그 어떤 신이든 접신할 때 쓰인다는 점이다. 한웅천왕이 신명을 부릴 수 있는 선인이 되는 과정에서 약을 먹었다고 했는데 오늘날 무당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그러한 흔적이 아닌가 한다.

 

개성굿 보유자인 지간난 만신의 신당굿에는 많은 무가巫歌가 나온다. 신당굿에는 굿거리가 여러 개 등장한다. 각 굿거리마다 무가가 따로 있다. 거의 복을 비는 것이고 액을 물리쳐 달라는 것이다. 소원 빌고 이것을 신을 불러 들어주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기도문이고 주문이다. 신당굿에서의 수비굿에서는 술을 담은 복잔과 명잔이 등장한다. 신령이 내린 술을 마심으로써 복을 받고 명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아득한 한웅천왕의 신시배달국 시대의 역사가 무당의 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외형은 다소 바뀌었지만 핵심 요소들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그렇다면 굿은 무엇인가?

어느 만신에게도 굿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거의 ‘맺힌 것을 풀어 주는 것’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굿은 춤과 노래가 핵심이다. 신을 받아 춤과 노래로 맺힌 것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상고시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현재 남인도의 타밀족의 조상인 드라비다족이 있다. 인더스문명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 드라비다인들의 말에 ‘굿(kuttu)’이 있는데 이는 무당이 하는 일로 풀이되고 극적인 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굿의 핵심은 춤이라는 것이다. 춤을 통해서 맺힌 것을 푼다는 것이다.

지간난 만신이 굿을 할 때도 춤은 빼놓을 수 없다. 부드러운 춤에서부터 격동적인 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춤사위를 넘다든다. 이 때 다양한 무구들을 들고 춤을 춘다. 부채, 방울, 작두, 칼, 제석그릇, 제금, 명다래 등이다. 특히 춤에는 ‘연풍대’라고 하여 고구려에서 호선무胡旋舞라고도 불리는 회오리 춤을 춘다. 한쪽 방향으로 팽이처럼 돌아가는 춤이다. 조선(단군)의 거수국의 하나인 예濊의 나라굿의 이름을 무천舞天이라고 한다. 하늘에 춤으로 굿을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춤을 춘다는 것은 세상에 찌들고 더럽혀진 작은 나(小我)를 털어내고 그 자리에 하늘로부터 내린 신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쌓인 것을 깨끗하게 없애고 초기화(reset)를 시킨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 해혹복본으로 볼 수 있다. 티벳 불교에서 정교하게 몇날 며칠을 정성 드려 만든 만달라를 한순간에 해체해 버리는 것과 같다.

 

▲ 개성의 덕물산 도당굿(마을굿)은 팔관회=제천행사의 축소판이다. 본 굿이 끝나고 예능인들이 본격적인 놀이 판을 벌이고 있다. 무등태우기 등 각종 기예가 펼쳐진다. 풍물굿장단에 맞추어 난장판이 벌어진다.  남사당패라고 불리는 화랑, 조의선인들의 후예들이 소중화 조선시대에 천민계급으로 천시받는 가운데 살아남은 잔영으로 알려져 있다.

 

알고 보니 고려의 나라굿, 팔관회를 재현하는 지간난 만신...

이러한 지간난 만신의 신당굿의 전체 과정을 보면 역사성을 띄고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태조 왕건이 개국공신 박술희에게 교훈10개를 내려 주고 후대의 고려태왕들에게 교훈 삼으라고 한다. 이른바 훈요십조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 여섯 번째의 교훈이 심상치 않다. ‘연등과 팔관이 짐의 지극한 소원인데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고 ‘팔관은 천령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는 행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후세의 간신들이 건백하여 이를 더하거나 줄이자고 해도 절대로 그것을 금지하라’고 한다. 이어 자신도 ‘처음 맹세한 마음이니 팔관회는 국가의 금기사항임으로 범하지 말라’고 한다. ‘임금과 신하가 다 같이 즐거워하며 마땅히 공경하여 행하라’고 한다(其六曰:朕所至願在於燃燈八關燃燈所以事佛八關所以事天靈及五嶽名山大川龍神也. 後世姦臣建白加减者切宜禁止.吾亦當初誓心會日不犯國忌君臣同樂宜當敬依行之(高麗史2卷-世家2-太祖2).

 

고려태조 왕건, 그는 우리문화의 원형질을 알고 있었나...

고려를 개국한 태조가 팔관회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키라고 한다. 천령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라는 것이 팔관회의 핵심이다. 이것은 우리 고유의 문화다. 외래의 사상, 종교가 아닌 굿 무당 문화다. 팔관회는 고려 마지막 태왕인 공양왕 때 까지 지켜졌다. 팔관회는 고구려의 나라굿인 ‘동맹東盟’을 이어 받은 것으로 <고려사>에 나온다. 그런데 지간난 만신이 행하는 신당굿에 이러한 팔관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간난 만신의 신당인 성원사에서 본격적인 신당굿을 하기 전에 ‘물고받기’를 한다. 물고받기는 산과 터 그리고 물에 가서 하는 굿이다. 지간난 만신에게는 산은 경기도 파주의 봉수산으로 알려져 있다. 죽은 박순이 할머니 신엄마의 무구를 묻어놓은 산이다. 박순이 신령의 인도를 받아 무구가 묻혀있는 봉수산에 가서 무구들을 캐냈다. 죽은 만신이 묻어 놓은 무구가 어디 묻혀 있는지 알아내는 것을 무당의 영험함을 증명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지간난 만신은 이것을 해낸 것이다. 이 무구를 캐내는 것을 ‘구업이를 떴다’고 한다. 지간난 만신이 봉수산에 가서 굿을 하며 신 내림을 받는 것은 팔관회에서 천령오악명산을 섬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신시시대를 재현하는 지간난 만신...

여기서 천령은 하늘의 신령으로써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나오는 한웅천왕으로 볼 수 있다. 한웅천왕이 태백산 신단수에 내렸다. 지간난 만신도 자신에게는 태백산으로 상징되는 봉수산에 내리는 천령을 받는 것이다. 굿상을 풍성하게 차려 놓고 신을 받으니 동시에 산을 섬기는 행위다. 제금을 치며 신을 받고 산을 섬기는 것이다. 이어 지간난 만신이 찾는 곳은 ‘곰달래 서낭’이다. 여기에는 큰 나무가 있고 주변을 돌무더기로 감싼다. 이 서낭신에게 신당굿을 개최한다고 알린다고 한다. 이것도 태백산 신단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팔관회의 천령오악명산을 섬기고 다음으로 찾는 곳이 한강이다. 행주대교 인근의 강변북로 쪽의 한강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도 밥 세 그릇을 기본으로 하여 굿상을 차려 놓고 굿을 한다. 제금을 치며 용신을 받는다. 이는 팔관회에서 천령오악명산에 이어 대천용신을 섬기는 것과 같다.

▲ 개성굿 보유자인 지간난 만신. 지간난 만신은 정규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아 무가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삶이 참으로 허망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이 내리면 신의 권위로 굿을 하면서 복을 내리고 액을 물리치는 신권을 행사한다. 우리문화의 수평적 평등성을 엿볼 수 있다(사진: 세계일보 사진 수정).

지간난 만신은 신당굿을 하기 전에 봉수산에서 천령을 받고 ‘곰달래 서낭’에서 서낭신을 받으며 한강에 가서 용신을 받는다. 결국 삼신을 받는다. 이 기운으로 성원사의 신당에 가서 신당굿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곰달래 서낭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곰녀와 마늘(다래)의 변형이 아닌가 한다. 서낭나무는 신단수의 변형이고 곰녀는 지간난 만신 자신을 의미하며, 다래는 차려 놓은 굿상의 제물로 비유된다. 지간난 만신 자신은 이러한 굿 행위가 거의 완벽하리 만큼 신시배달국시대의 상황을 재현하는 역사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성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무당들은 생활 속 굿을 통해 우리문화의 원형질을 끊임없이 구현하고 있다.

 

난장판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청소...

강증산의 무당 사랑...

공동체 굿이나 개인 굿이나 난장판이 등장한다. 지간난 만신의 신당굿에는 ‘무감서기’라는 이름으로 신당굿 중간에 행해진다. 이때는 굿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춤판, 술판을 벌이며 그야말로 혼돈의 난장판을 이룬다. 세속에서 쌓인 모든 짐을 내려놓고 때를 벗는 판이다. 초기화시키는 판이다. 우리는 무당의 굿판을 통해서 원시반본을 끊임없이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무당이 이러한 우리문화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린 강증산姜甑山은 이렇게 강조했다(大巡典經4,6).

 

“무당의 집에 가 빌어야 살리라.”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

“도한屠漢(백정)과 무당巫堂에게 천하게 대우하지 말라.”

 

기독교가 들어온 지 1백여 년 남짓, 신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불교에서는 50세까지 출가상한 연령으로 하고 있다가, 지금은 출가자가 줄어 출가상한 연령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교회가 비고 절간이 비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당은 개략적으로 파악된 것만 하더라도 3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신시복본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당을 ‘미신’이라고 한 것은 일제침략기 일제의 소행이다. 그러면서 백제 무당인 '천조대신(아마테라스오미카미)'은 자신들의 국조로 모시고 있다. 강증산은 말한다.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는 죽으리라.” 소중화 조선이 그래서 망했다. 일본도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모국, 영국을 모시듯이 일본도 자신의 모국, 한국을 받들 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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