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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조, 황제헌원, 우리가 업어길렀다...석주 이상룡이 중심이 되어 세운 신흥무관학교 교가에 숨겨진 비밀...
오종홍 | 승인 2017.01.06 16:54

 

우리문화의 원형질, 굿과 무당(2)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섬중 어린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기른이 뉘뇨
우리우리 배달나라의
우리우리 조상들이라.
그네가슴 끓는피가 우리핏줄에
좔좔좔 결치며 돈다"

 

위 신흥무관학교 교가다. 동구 이준형(서기1875~1942)이 작사한 것이다. 주권재민의 한국형 민주국가를 꿈꾼 독립투쟁가 석주 이상룡의 아들이다. 석주 이상룡은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교가에 "여러만만 헌원자손을 업어 기르고..." 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문화의 원형질, 굿과 무당' 제1부에서 언급했듯이 헌원은 황제헌원으로서 중국인들의 원 시조로 알려져 있다. 소중화 조선시대와 일제침략기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국사책은 모든 것을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 역사가 발전해 왔다고 가르치고 있다. 중화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

우리가 역사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해...

그런데 위 교가에 중화족의 원시조를 우리가 업어 길렀다고 나온다. 당시 신흥무관학교를 주축으로 하는 독립운동세력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원 김교헌,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룡 등 당시 일제와 역사전쟁을 벌인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역사를 지금의 국사책과는 전혀 다르게 가르쳤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학자들이었던 사람들이 중국의 원시조가 우리에게서 배워갔다고 할 때는 그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본기사 제1부에서도 밝혔듯이 중국 측의 원문헌에 그렇게 나오고 있다. 황제헌원이 무당이었다는 것이고 그가 우리의 선인, 자부선생에게서 내림굿을 사실상 받아간 존재라는 것이다.

 

▲ 만주 요녕성 평강지구에서 발굴된 금제장식. 독수리가 범과 곰 그리고 이리를 감싸고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기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웅천왕의 신시 배달국을 독수리라는 새로 그리고 있고, 신시와 함께 하겠다고 찾아온 곰족과 범족을 새의 품안에 새겨놓고 있다. 이리는 북방 초원의 유목민족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새가 상징하는 바는 하늘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족이 지손족인 곰과 범 그리고 이리족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결국 선도仙道, 풍류도風流道에서 말하는 음양일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지간난 만신이 주도하는 개성 대동굿에서, 여대감신과 남대감신을 놀리고 이 두신을 합방시키는 굿거리와 일치한다. 음양합일을 통해서 궁극의 이화세계, 홍익인간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사진: 박선희, <복식문화의 발견>).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선진문물 전해 주다...그 원천은 굿과 무당...

이는 우리가 중국의 선진문물을 통해서 역사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에서도 확인되듯이 '수두교'로 상징되는 선도, 풍류도라는 사상체계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굿과 무당의 다른 말이었음이 본 기사 제1부에서 밝혀졌다. 소중화 조선말에 등장한 동학(천도교)과 증산교 그리고 김일부선생의 '영가무도' 등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선도, 풍류도다. 증산교를 세운 강증산의 경우 그의 어록이라고 하는 '대순전경'을 보면 무당을 중시하라는 말을 여러번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와 고유의 사상과 문화의 원형을 찾아 가보면 굿과 무당을 만나게 된다. 2부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지간난 만신의 파란만장의 무업인생길을 소개한다. 그의 삶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서구화 되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을 죽은 만신의 영혼에게서 배웠다는 지간난 만신...

(제1부에서 이어짐) 지간난 만신에게는 신이 네 번 내렸다. 첫 번째 신은 박순이 할머니의 영혼이다. 두 번째 신은 구월산 산신할아버지다. 어느 날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으려고 하는데 마당에서 하늘에서 회오리바람이 불어 내려오더니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나는 구월산 산신 할아버지다. 38천을 받으라.”라고 했다. 지간난 만신은 38천이 신물神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가 단군할아버지라고 했다. 세 번째는 친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내렸다. 옷을 해 놓으라고 하며 그렇게 해야 아프지 않다고 했다. 네 번째 내린 신은 파주에 있는 봉서산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말씀이 봉서산은 천지개벽을 할 때에 물에 떠내려 온 산이라고 했다.

지간난 만신은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한글을 원래 몰랐다. 그런데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자씩 알려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신의 인상은 돌아가진 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쓰기는 잘 못하지만 한글을 읽는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상식으로는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되는 일들이 무당의 세계에서는 흔한가 보다. 그런데 영적인 신엄마인 박순이 할머니는 분명하게 모습이 보이는데 이 할아버지신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들도 질투하는지 먼저 들어온 박순이 할머니 신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옘병만신에게서 굿을 배우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럴 때 마다 원 신엄마인 박순이 할머니가 나타나서 위로를 해주었다. 옘병만신인 조 씨에게서 개성 굿을 다 배울 때까지 참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잠잘 때가 되면 나타나서 도와주었다. 다른 사람은 다 자는데 지간만만신은 박순이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잠잘 때는 박순이 할머니가 지간난 만신을 꼭 불러냈다. 박순이 할머니는 옘병만신에게 자신이 지간난 만신에게 내려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박순이 할머니는 “나는 죽은 신엄마야, 나는 죽었어, 죽은 신어머니가 내려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냐, 죽은 지 2년이나 됐어, 너만 알고 있어.”라고 했다. 박순이 할머니는 잘 때쯤에 불러내서 굿을 가르쳐 주었다. 굿상도 박순이 할머니가 다 차려놓고 굿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배운 덕분에 엠병만신과 굿을 하면서도 옘병만신이 가르쳐 주지 않은 굿을 잘 했다. 이것을 안 옘병만신은 자신이 가르쳐 주지도 않은 것을 곧 잘하자, 어디서 배운 것이냐며 지간난 만신을 쥐어박았다. 지간난 만신은 옘병만신으로부터 맞으면서 굿을 배웠다. 어떤 때는 공수를 주다가 날짜를 잊어먹었다. “모시키니”라는 소리로 공수를 주었는데 그날 굿이 끝나고 옘병만신이 놋으로 된 요강을 들고 지간난 만신을 정신없이 팼다.

 

박순이 신엄마의 무구를 팔아먹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

이 당시부터 지간난 만신이 어떻게 무당수업을 어렵게 고생하면서 받았는지 지켜본 신도할머니들이 있다. 지간난 만신에게서 내림굿을 받고 개성 굿을 전수하는 지간난 만신의 신딸들에게 신도할머니들이 신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며 무업을 이어왔는지 얘기를 들려줄 정도다. 박순이 할머니는 지간난 만신이 20대까지 함께하며 무업을 불리게 도와주었다. 어려울 때는 꼭 나타나서 도와주었다. 굿을 어떻게 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면 반드시 나타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박순이 할머니가 묻어놓은 무구들을 관리하기가 어려워 27세 되던 해에 팔아먹은 뒤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애타게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엄마 나 어떻게 하면 좋아, 얼굴이라도 보여줘,” 라고 외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그동안 박순이 할머니가 가르쳐 준 것을 토대로 직감으로 하면 큰 문제없이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지금 지간난 만신의 신딸들이 내림굿을 받는데 원래는 신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지간난 만신은 박순이 할머니의 신이 떠나서 그런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지간난 만신이 죽은 뒤에나 보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 지간난 만신의 신당이다. 흰 수염의 신선이 범을 타고 앉아 있다. 지간난 만신은 이 할아버지를 단군할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다. 다른 무당들의 신당과는 달리 지간난 만신의 신당에서는 하얀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옥이 가지는 상징성은 영원함, 신성, 제사장 등이다.

야순경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지간난 만신...

한번은 처녀 때에 동네 굿을 크게 했다. 신이 내려 영험하게 굿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박순이 할머니신이 내려서 굿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당시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불순세력으로 모는 풍토였다. 파출소에서 순경이 와서 굿을 하는 지간난 만신을 잡아갔다. 풍기를 문란케 했다는 이유에서다. 지간난 만신을 잡아간 사람은 ‘야순경’이라고 했다. 파출소에서 지간난 만신이 야순경에게 “이놈, 너 딸만 낳고 아들도 못 낳은 것이 어디다 대고 까부냐! 내가 너의 할아버지다. 너희 할아버지 보고 왔어! 이 놈 나를 빨리 내놔야 아들 낳지 그렇지 않으면 못 낳아!” 라고 호통을 쳤다. 야순경이 그 말을 듣고 지간간 만신을 내보냈다. 그 뒤에 거짓말 같이 아들을 낳게 되었다. 야순경은 그 뒤에 지간난 만신의 독실한 신도가 되어 성원사에 다니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야순경의 처도 같이 다녔다. 야순경이 당시 지간난 만신의 신엄마인 옘병만신이 하는 굿과 지간난 만신이 하는 굿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몇 가지 점에서 분명하게 다르다고 했다. 공수를 내리는 법과 춤추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는 것이다.

 

굿에서 나무는 신이면서 매개체 그리고 인간 삶의 젖줄기...

굿은 나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간난 만신이 하는 굿중에서 나무가 등장하는 굿은 성주굿과 죽은 넋을 위로는 산가지 굿 그리고 서낭나무가 등장하는 동네 굿인 대동굿이 있다. 성주굿은 집을 짓고 축원을 할 때 한다. 성주신이 등장하는데 그 집안의 성주 받을 때 모셔 들인다. 대들보에 천을 둘러 두기도 하는데 성주신은 대들보의 나무 끝에 내린다. 산가지 굿의 경우 도토리나무인데 도토리나무 가랑잎에는 죽은 넋이 내린다. 도토리나무 산가지로 한다. 북방시베리아 무당굿에서도 나무가 등장하는데 나무에서 8개의 여자 젖무덤이 나와 이 젖을 먹고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나뭇가지에 죽은 자의 혼령이 깃든다는 사상은 북유럽의 신화에서도 보인다. 떡갈나무가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의 도토리나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무당굿은 인간의 태곳적 역사를 담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우리의 굿은 신을 모셔와서 놀리고 다시 보내...일본의 굿 '마쯔리'도 같아...

대동 굿에서는 천신령 만신령 찾아서 맞아들인다고 한다. 여기서 일본의 무당 굿인 ‘마쯔리’와 닮아있다. ‘마쯔리’라는 말 자체가 신을 맞이한다는 우리말에서 나온 것임은 이미 관련학계에서 증명한 바 있다. 이 굿은 동네라는 공동체를 위한 굿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는 구성원으로부터 돈을 추렴해서 굿 비용을 마련한다. 쌀도 걷어서 떡을 해서 제단에 올린다. 대동 굿에 등장하는 신은 개인 굿에서의 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높은 신이 와서 가르쳐 준다. 지간난 만신은 동네 굿을 대동 굿이라고 표현했다. 파주에는 붉은 밭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는데 지간난 만신은 얼마 전까지 이 대동굿을 했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3년 간격으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선 후 부터는 안한다고 했다.

대동 굿을 서낭굿이라고도 하는데 도당의 신을 모시는 것이다. 지간난 만신이 주관한 서낭굿에는 물을 지켜주는 물신과 도당이 있다. 도당에는 소나무가 있고 물신에는 참나무가 있다. 물가에 가서 신을 받아서 도당에 모셔다 놓고 굿을 한다. 농기를 들고 동네를 다 돈다. ‘각인 각성 열에 열명’의 마을 구성원 모두를 위한 축원 굿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단합하고 농사도 잘되고 청년들도 이웃집도 내 집같이 한 어머니의 자손같이 잘 살라고 축원한다.

 

▲ 지간난 만신이 대동굿을 할 때 썼다는 활과 화살. 마을의 액을 물리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굿에서 활을 사용하는 사례는 동남아시아 나라에서도 보이며, 일본의 경우는 여무당인, 미코가 신사에서 활을 쏜다. 지난간 만신은 자신이 활을 잘 쏜다고 한다. 활의 종주국이라고 알려질 만큼 우리역사에서 활은 중요한 요소다. 동양의 활에 심취된 독일 한 사업가가 활의 원조를 찾다가 결국 한국임을 확인했다는 기사가 여러번 보일 정도로 우리는 활의 종주국이다.

우리 정신세계의 원형질, 굿 속의 女대감, 男대감신의 합방...

이 대동 굿에서는 대감도 성주도 둘이 논다. 할아버지성주 할머니성주, 여대감 남대감이 등장한다. 대동 굿 마지막에 가서는 할아버지 대감과 할머니 대감을 동침시킨다. 실컷 놀고 같이 합방시키는 것이다. 이 대동 굿에서는 무당이 동네를 돌고 뛰어 다니기 때문에 활동량이 많아 젊었을 때나 쉽지 나이가 들면 힘이 부친다. 지간난 만신이 연행하는 대동 굿에서는 도당에 좌정한 할아버지 신이 활을 쏜다. 이때 액을 상징하는 ‘막둥이’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도당 할아버지와 대결한다. 도당의 제일 큰 산신할아버지가 막둥이에게 활을 쏜다. 막둥이는 마을에 해를 끼치는 말썽을 부리는 존재다. 결국 활을 쏴서 막둥이를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지간난 만신이 도당 할아버지 역할을 하여 활을 쏜다고 한다. 지간난 만신은 이 대동 굿도 죽은 혼령으로 나타나는 박순이 할머니한테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1시간 반이 넘게 부르는 무가를

죽은 만신에게서 배웠다는 지간난 만신...

보통 신이내린 강신무들은 살아있는 신어머니에게서 무업을 쌓아간다. 굿도 산 신어머니에게서 배운다. 그런데 지간난 만신의 경우는 굿의 핵심요소를 대부분 산 신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박순이 할머니의 혼령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대동 굿은 물론이고 죽은 자의 혼령을 보내는 ‘지노기’ 굿을 할 때 부르는 ‘바리공주’ 가사도 박순이 할머니의 혼령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바리공주가사를 보면 지금까지 채록된 바리공주가사와는 사뭇 다르다. 보통 바리공주무가에서는 이씨왕조의 임금과 부인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지간난 만신이 부르는 바리공주 무가는 그 이전 이야기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바리공주무가를 모두 부르는데 는 약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한다. 가사분량이 상상 이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산 사람이 아닌, 죽은 만신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현대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것도 그 많은 분량을 10분도 안되어서 다 배웠다고 한다. 기자가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서 전해오는 동네 굿 무가인 ‘미륵의 노래’를 암송하여 부르는데 걸린 시간과 비교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당만신들의 세계에는 서구화된 우리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 불가사의한 일들이 사실은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았던 우리 고유의 문화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든 것이 서구의 사상과 정신이 삶의 기준으로 의식화되어 있어 이러한 문화현상을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끼고 미신으로 몰아가는 풍토가 지배하고 있다.

한편 우리의 굿 속에서는 시간이 사라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제는 죽고 없는 사람이 무당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한번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꿈에 나타나는 죽은 자는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당을 통해서 나타나는 죽은 자는 정확하게 살아생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산자를 향해 ‘내가 너와 그때 그 장소에서 함께 했던 그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죽은 자와 함께 했던 산자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시간은 사라진 것이 된다. 3차원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그런데 무당은 이 차원을 뛰어 넘고 있다. 미신이라고 하기에는 신비 그 자체다.

지간난 만신의 신당인 성원사에서는 음력으로 10월 13일에 제일 큰 굿을 한다. 성원사 신당에서 하는 굿이다. 신도들의 복을 빌고 액을 막아주며 성원사와 지간난 신딸들이 잘 불리라고 하는 굿이다. 올해 72세가 되는 지간난 만신은 이제 막 무당의 길에 들어선 신딸들이 개성 굿을 더 빨리 배우기를 바란다. 나이가 많아 건강을 장담할 수 없어 굿을 전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3부에서 계속).

오종홍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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