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축으로 남한이 일본과 함께 가야 한다고?

 

고대판 조선총독부, 임나일본부설은 살아있다(마지막회)

 

김현구씨, "천황가의 피가 백제왕가에 수혈되기 시작했다..."

 

이는 백제가 사실상 야마토왜의 속국임을 말하는 것...

 

 

세 번째로 김현구가 백제가 왜의 속국이었다고 강조하는 사실은 백제에서 왕자와 왕녀들을 왜에 인질로 보내 왜왕을 섬기게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왜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질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직지왕(재위 405~419)이 그 누이동생 신제도원을 일본에 보낸 뒤 백제에서는 적계여랑·지진원 등 왕녀들을 잇달아 일본에 보낸다. 그들의 혼인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건너간 왕녀의 신분이었던 그들의 혼인 상대가 누구였는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천황이 ‘지진원을 취하려 했는데 이시카와노다테와 관계를 맺었으므로 화형에 처했다’(유랴쿠천황 2년(457) 7월 조)는 내용으로도 그들의 혼인 상대가 짐작이 간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천황가에 백제왕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쪽)

김현구는 백제에서 왜로부터 군원을 얻기 위해 왕자와 왕녀들을 인질로 보냈다고 하면서 그 왕녀를 일왕이 불태워 죽였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대등한 나라에서 보낸 왕녀를 다른 나라에서 불태워 죽이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김현구가 백제를 왜의 속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3국사기』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만 있는 이런 내용을 믿지 않을 것이다.

백제에서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 세 왕녀를 왜에 보낸 것은 ‘일왕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같은 책에서 이것이 당시의 관행이라고도 썼다.

“그런데 웅략기 5년(461) 조에는 옛날에는 여(女)를 보냈는데 무례하여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동생인 곤지 즉 남자를 보내서 일왕(김현구는 반드시 천황이라고 쓴다)을 섬기게 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직지왕이 누이동생인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이 그 왕녀들에 해당되는 것이다.”(같은 책, 167~168쪽)

▲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는 야마토왜를 백제와 대등한 나라로 설정한다. 야마토왜가 서기4세기부터 6세기 후반까지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통치한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인정한다. 임나일본부설이 나오는 <일본서기>와 일제가 변조한 광개토태왕비문을 기준으로 위와 같이 야마토왜와 고구려가 공방전을 벌인 것처럼 지도를 그려놓고 있다(그림: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발췌).

 

<삼국사기>보다 허구가 많은 <일본서기>를 더 믿는 김현구씨...

거듭 말하지만 위 내용들은 『3국사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일본서기』에만 나오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서기』를 따라도 김현구가 말한 왕녀 및 관행 등의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는 데 있다. 우선 ‘신제도원은 일본천황을 섬기기 위해’ 보냈다고 한 자체가 허위이다. 『일본서기』 오진(應神) 39년 2월 조에는 “백제의 직지왕이 그 누이 신제도원을 보내 임무를 맡겼다. 신제도원은 7명의 부녀자를 거느리고 왔다(百濟直支王遣其妹新齊都媛以令任. 爰新齊都媛率七婦女而來歸焉.).”고 했는데, 이것이 신제도원에 대한 기록의 전부이다. 여기서 ‘영임(令任)’이란 ‘임무를 맡겼다’는 뜻인데 김현구는 이를 ‘천황을 섬기기 위해’라고 멋대로 왜곡한 것이다.

적계여랑과 지진원의 경우도 김현구는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조작했다. 『일본서기』 유랴쿠(雄略) 5년 조는 “(백제의 가수리군은) 지진원[적계여랑이다.]이 불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飛聞池津媛[適稽女郞也.]之所燔殺)”라고 하여 지진원이 곧 적계여랑이라고 주석했다. 김현구는 천황을 섬기는 ‘관행’이 있었다고 하기 위해 같은 사람인 지진원과 적계여랑을 두 사람으로 늘린 것이다. 더구나 지진원은 왕녀가 아니라 채녀(采女)로써 바쳤는데 즉 궁녀다.

김현구도 앞에서 본 대로 지진원을 채녀라고 썼으므로 왕녀가 아닌 줄 알았고, 적계여랑과 지진원이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백제에서 왕녀들을 정기적으로 왜에 보내 천황을 섬기는 관행으로 조작하기 위해 『일본서기』마저도 허위로 해석했다. 결국 임무를 수행하러 간 왕녀 신제도원을 천황을 섬긴 것으로 조작하고, 채녀 지진원(즉 적계여랑)을 왕녀로 조작하는 것도 모자라 그 숫자까지 늘렸으니 이 어찌 학자의 소행이라 하겠는가?

 

김현구는 왕녀만이 아니라 남자 왕족들도 천황을 섬기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한다.

“한편 웅략기 5년(461) 조에 의하면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 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의다랑이나 마나군·사아군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도일하고 있다.”(『고대한일교섭사의 제문제』, 169쪽)

 

사료조작까지 일삼으며 임나일본부설 사실상 주장...

천황을 섬기기 위해 왕녀들이 파견되다가 지진원이 불타 죽은 후에는 남자 왕족들을 보냈다는 것인데 여기서도 김현구는 대부분의 신분을 조작했다. 곤지는 왕의 동생이므로 왕족이지만 의다랑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부레쓰(武烈) 3년 조에, “백제 의다랑이 죽었다. 다카다 언덕에 장사지냈다.”고만 기록했다. 마나군도 부레쓰 7년 조에 “지난 번에 조공한 사신 마나는 백제 왕족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현구는 두 사람을 왕족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왜? 백제에서 왕족들도 주기적으로 보내 천황을 섬기는 관행이 있었다고 조작하기 위해서다.

김현구가 백제와 왜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료까지 조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원하는 답은 이제 자명해 진다고 하겠다. 즉 백제는 고대 야마토 왜의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한 마디로 임나를 지배한 백제를 야마토 왜가 지배했다는 것이다. 결국 임나를 왜가 지배했다는 식민사학의 논리를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묘기를 부려 중간에 백제를 끼워넣어 부활시키자는 매국사학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임나에 관한 김현구의 모든 주장과 논리체계는 비학문적· 비논리적 방법에 입각한 허위의 산물이다. 임나가 한반도에 없었다는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에 그렇고 진구왕후라는 가공 인물이 임나를 정벌한 일이 없었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의 자세도 달라지고 있으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임나 문제는 한일관계가 아니라 그 본래 모습인 일본 열도 내의 역사로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김현구는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에 찬 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고 일본인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주장을 평생 해오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반도에서의 역사를 『3국사기』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구체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경주했다. 『일본서기』에서도 우리 역사의 일부나마 건져 보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필자가 분석한 바로는 고대 한일 관계에 있어 『일본서기』는 거의 말해주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구는 『일본서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모자라 그 내용마저 많은 부분 조작하거나 임의로 해석하는 비학자적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사료조작의 원칙은 무엇인가? 한국사에 불리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것인가? 『3국사기』나 『3국유사』에서도 한국에 불리한 일부 기사는 모두 외우면서도 일본에 불리한 기사는 모두 부인한다. 『일본서기』마저 조작을 서슴지 않는데 그 방향은 일관되게 한국에 악의적으로 불리하게 조작한다는 점이다(끝).

 

황순종(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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