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사료보다 일본사료를 맹신하는 김현구씨의 사상적 국적은?

 

고대판 조선총독부, 임나일본부설은 살아있다(7)

백제에 일본 천황가의 피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김현구씨...

악질 일제황국사관론자, 쓰에마쓰보다 더 악한 왜곡을 하다...

 

이제부터는 마지막으로 김현구가 ‘왜’가 아닌 ‘백제’가 임나(가야)를 지배한 것으로 무리하게 설정하는 의도를 파헤칠 차례가 되었다. 일본의 식민사학이나 이 땅의 매국사학에서나 백제의 임나지배를 주장하는 자는 김현구 밖에 없는데, 그의 의도가 외세의 지배를 부정하는 애국적 입장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주장의 진정한 핵심은 임나를 지배한 백제가 자주국이 아니라 왜의 속국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 식민사학자들도 주장하지 않는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는 노예적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그야말로 극우파보다 더한 매국적 사관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백제를 왜의 속국으로 보는 김현구의 관점 중 첫째는 『일본서기』의 긴메이(欽明) 천황이 백제의 성왕을 꾸짖는 내용이다.

“너[爾]는 누차 표를 올려 마땅히 임나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말은 그렇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하였다. 임나는 네 나라의 동량이다. 만일 동량이 부러지면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가? 짐이 생각하는 바 바로 여기에 있다. 너는 빨리 세우라.”

김현구는 『일본서기』에만 있는 이 기록을 믿고 백제의 대왕을 일왕의 신하로 간주한다. 일왕이 백제의 대왕에게 ‘너’라고 부르며 꾸짖는 『일본서기』기사를 김현구는 “야마토(왜) 정권은 임나에 대한 의사를 전부 백제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김현구는 왜가 백제를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백제가 지배했다는 임나에 대해 일왕이 왈가왈부한다는 자체가 실제로는 그가 백제는 왜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의 논리대로 임나를 예전에 백제가 지배했다면 왜 일왕이 임나의 재건에 그토록 신경을 쓰고 꾸짖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백제가 신라에 빼앗긴 임나를 되찾으면 되는 것이고 필요하면 일본은 백제를 도우면 끝날 일이다. 『일본서기』에서 일관되게 임나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것이 당초부터 왜가 차지했던 땅이라는 전제하에 재건을 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현구는 애초부터 임나를 차지한 것이 백제라고 무리한 가정을 하니까 이런 앞뒤가 맞지않는 상황이 된다.

▲ 일제는 광개토태왕비문까지 변조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갔다. 위 문건은 일본육군참모본부가 사카와 중위를 만주에 몰래 보내서 광개토태왕비를 변조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문제의 광개토태왕비의 신묘년조를 이와 같이 변조했다는 것이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 海破 百殘□□(新)羅以爲臣民." 재일사학자 이진희씨에 의해서 처음 주장되었고 지금은 변조가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다. 이진희씨는 "내가 보기에는 없는 글자를 사카와라는 놈이 변조해서 떠왔고, (일본참모본부가) 그 위에 석회를 발랐는데, 석회가 떨어지고 그 글자가 없으니, 이건 일본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변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그러니 남북의 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디에 점을 찍어 해석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이 비문 자체가 변조된 것이라는 것이 나의 설" 이라고 증언한다.

김현구가 두 번째로 백제가 왜의 속국임을 보여주고자 지적하는 사실은 백제 전지대왕·동성대왕·무령대왕의 왕후가 일본 왕실의 여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8년만에 귀국한 직지왕의 부인 이름이 팔수부인으로 씌어 있다. 고대 일본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이라는 글자가 흔히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자를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직지왕의 부인은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일본은 661년 백제 왕자 풍의 귀국에 즈음하여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한 예가 있다. 이런 면에서도 야마토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일본에서 성장하여 혼기가 지나 귀국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백제의 왕자들을 정책적으로 혼인시켜 돌려보냈다면 그 상대는 황가의 여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의 왕자들이 혼인한 상대가 천황가의 여자들이었다면 백제왕가에도 일본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7쪽)

전지대왕(김현구는 『일본서기』에 따라 늘 직지왕이라 한다)·동성대왕·무령대왕의 부인(김현구는 왕후·왕비라고 하지 않는다)이 일본 여인일 것이라 추측하며, 왜에서 정책적으로 혼인시켜 돌려보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백제 왕실의 의중이나 역할같은 것은 일체 고려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의 혼인은 전적으로 왜측의 의사에 달려 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러한 표현에서 김현구가 백제는 왜의 속국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하려는 것이라 본다면 필자만의 그릇된 생각일까? 겉으로는 백제와 왜가 대등하다고 말하면서도 김현구는 속으로는 주종관계임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 문제는 위 세 대왕들의 왕후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김현구의 억측일 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위 문장에서도 그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가능성이 높다’는 비학문적인 표현을 4번이나 반복했다. ‘가능성이 높다’고 한 번 말하면 25%씩 진실이 되어 네 번 말했으니 100% 확실한 진실이 된다고 믿은 것일까? 이런 치졸한 사람이 과연 학자의 범주에 들기는 하는 것인지 단순 무식한 주술사인지 필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선 전지대왕의 왕후 팔수부인이라는 이름은 『3국사기』에 나오는데, 김현구는 그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고 ‘팔’자 하나만을 근거로 일본인으로 추정했다. 『3국사기』를 외면하는 김현구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3국사기』 전지왕 조에는 김현구의 추정이 헛소리임을 증거하는 이런 내용이 있다.

“왕은 서제(庶弟) 여신, 그리고 해수 및 해구를 좌평으로 삼았는데 모두 왕의 친척이다.”

전지대왕이 세 명을 좌평으로 삼았는데 왕의 동생 여신은 왕성인 (부)여씨이며, 친척의 척(戚)은 왕후의 집안을 말하므로 해수·해구에서 보듯 왕후의 성 역시 해(解)씨로 백제인임을 알 수 있다. 왕후가 백제 8성 중 하나인 해씨임을 모르고 일본 여인으로 억측한 것이다. 만약 왕후가 일본인이었으면 『3국사기』에서 밝히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또 동성대왕과 무령대왕이 왕자 시절 일본에 있었다는 것도 『일본서기』에만 있지 『3국사기』에는 그런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전지대왕이 태자 때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은 『3국사기』에도 나오는, 『일본서기』와 일치하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그러므로 『3국사기』에 없는 동성대왕·무령대왕의 일본 체재 사실을 『일본서기』의 기록만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설사 『일본서기』의 기록대로 두 대왕의 일본 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전지태자의 경우에서 보듯 두 대왕이 일본 여인과 혼인했을 가능성은 김현구의 표현대로 ‘높은’ 것이 아니라 ‘낮은’ 것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역대 백제 대왕들 중에 단 한명도 일본인 왕후를 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에마쓰같은 악질 식민사학자도 이런 발상을 하지 못했다(8부에서 계속).

글: 황순종(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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