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지 못한 역사, 식민사관은 언제 걷힐 것인가?

 

일제침략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우리의 강토를 약탈하고 우리국민을 학살한 것이 다 일까...

우리의 정신, 역사를 강탈한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김현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은 스에마쓰설을 따랐다.”고 했으며,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사람은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스에마쓰 야스카즈였다.”고도 했다. 허구로 드러난 ‘임나=가야’라는 스에마쓰를 ‘고전적 정의’를 내린 사람으로 극찬하고, 또 스에마쓰의 지명 비정에 따라 임나의 여러 나라들을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까지로 이해하고 있는 김현구는 과연 학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임나가 가야와는 판이한 나라라는 증거는 오히려 너무 많아 학문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하다.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만 간략히 논하겠다.

임나는 결코 우리나라 남부지방 가야가 아니다...

첫째, 임나의 위치에 대해 『일본서기』 스진(崇神) 조에는 “북쪽으로 바다에 막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고 했다. 계림은 신라의 옛 이름이므로 그 서남쪽에 있으며 북쪽이 바다로 막힌 곳은 대마도로 추정할 수 있으므로 한반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스에마쓰를 비롯한 식민사학에서는 임나가 ‘북쪽으로 바다에 막혔다’는 부분은 모른 척하고, ‘계림의 서남쪽’이라는 구절만 가지고 임나를 한반도 신라의 서남쪽에 있던 가야와 동일시하고 있으니 이는 사료를 허위로 해석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김현구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여러 고대사학자들도 스에마쓰의 임나에 관한 위치 비정을 그대로 추종하여 임나가 가야라 하며, 그 영역이 경상도 일대만이 아니라 전라도 전역에 이르렀다는 설을 견지하고 있다.

둘째,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와는 다른 실체라는 것은 『3국사기』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임나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스에마쓰나 김현구의 주장대로 임나가 경상도와 전라도에 걸친 대국이었다면 『3국사기』에 기록되어야 마땅한 것은 설명이 필요 없다. 다만 「신라본기」에 임나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가야는 서기 77년부터 등장하여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고, 562년에 부흥운동을 일으켰다가 이사부와 사다함에게 진압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기까지 모두 15건의 기록이 있다.

한편 『일본서기』에는 신라와 임나와의 관계에 대해 529년에 와서야 처음 기록되었으며 그후 646년까지 집중적으로 15건이 보인다. 『3국사기』의 신라·가야 관계 기사와 『일본서기』의 신라·임나 관계 기사를 비교해 보면 동일한 기사가 단 하나도 없으며, 같은 해에 기록된 경우도 562년 1회를 빼고는 없다. 따라서 『3국사기』의 가야·신라는 『일본서기』의 임나·신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백제와 가야와의 관계를 보면 『3국사기』「백제본기」에는 임나는 물론 가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기록이 없다. 김현구의 논리대로 백제가 369년에 임나를 평정하고 2백 년 동안 경영했다면 임나에 관한 기록이 없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임나의 강역이 전라도 전역에 이르렀다면 백제와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데도 『3국사기』에서는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을까? 학문은 결코 어렵고 난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에서 출발한다. 임나는 한반도에 없었고 가야 또한 경상도 지역에만 있었기에 백제와는 충돌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넷째,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가 아니라는 점은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록 더욱 명백해 진다. 가야와 임나는 각각에 속한 나라들의 숫자와 이름들이 다 다를 뿐아니라 두 나라의 건국시기, 멸망시기, 왕들의 이름, 각각의 국세나 주변국과의 관계 등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세부 사항으로 들어갈 수록 가야와 임나는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논란이 불필요하다. 황국사관에 병든 스에마쓰의 ‘임나일본부설’이나 그 설을 변형해 신봉하고 있는 김현구의 백제지배설이나 학자적 양식과 정확한 논리로 접근하면 파탄으로 끝난다.

▲ 위 지도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발간하려다가 매국지도로 판명되어 잠정 보류된 상태의 우리나라 역사지도집의 한 부분이다. 서기 3세기가 넘어서는데도 아직 백제와 신라가 개국되지 않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황국사관 역사에 우리역사를 날조하여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이다. 저것은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다. 일본사의 하부구조의 한 부속물임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우리 제도권 사학계는 황국사관=식민사관의 후예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다(사진: 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끝으로 임나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에마쓰의 임나에 대한 잘못된 위치 비정을 통해 알아보겠다. 『일본서기』에는 임나에 속한 나라 이름이나 그에 속한 읍 등 20개가 넘는 지명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가라·안라·다라·탁순·사이기·졸마·고차·걸찬·임례 등 10여 개 나라 이름과 침미다례·포미지·반고·상차리·하차리·사타·모루 등의 현읍 이름이 그것이다.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이런 지명들의 위치를 비정하려면 먼저 일본열도에서 찾아보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만약 그 중 일부가 한반도에서 찾아질 경우 신중한 방법으로 인정 여부를 논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이웃 나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일본 극우파학자들의 역사학은 역사가 아닌,

침략의 망상속에 사는 황국사관 추종자에 불과해...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손발과 입을 꽁꽁 묶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우기던 호시절이 그리워, 패전 후에도 다시 우리를 점령하려는 야욕에 눈먼 스에마쓰같은 침략주의자의 안중에 그런 합리적 자세가 있을 리 없다. 스에마쓰는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가정 아래 그 숱한 지명들을 무조건 한반도에서 찾으려고 『3국사기』「지리지」를 이 잡듯이 구석구석 뒤졌지만 단 하나도 같은 지명을 찾지 못했다. 오사카를 한반도에서 찾으니 찾아질 리가 있겠는가? 그가 조금이라도 양심적인 학자였다면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에마쓰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을 한반도에서 찾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발음이 하나 쯤 유사한 지명을 한반도에서 찾아 그곳이 『일본서기』에서 말한 임나의 지명들이라고 억지 비정을 한 것이다. 설사 똑같은 지명이 나왔더라도 그것이 『일본서기』에서 말한 곳인지 여부를 다른 사료와 비교하면서 교차검증해야 정상이지만, 미리 전제를 세워놓고 찾는 것이니 교차검증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문헌고증’이 허울 뿐인 허위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테면 스에마쓰는 ‘탁순’이나 ‘탁국’이 모두 『삼국사기』의 ‘달구화’(지금의 경북 대구)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둘 다 대구로 할 수 없으니까, ‘탁순’은 대구 지역으로 보내는 대신 ‘탁국’은 그 남쪽 3리에 있었다는 ‘압독’군(지금의 경북 경산)으로 보냈다. 참으로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비록 발음이라고 해도 ‘탁국’과 ‘압독’이 유사성이 인정되겠는가? 그리고 탁국을 대구 남쪽 3리의 경산으로 비정하려면 『일본서기』에 탁순 남쪽 3리에 탁국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스에마쓰의 비정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을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러한 기록은 없다.

또 말도 안 되는 지명 비정에 ‘침미다례’가 있다. 침미다례는 일본어로 ‘도무다레’로 읽는다면서 일본어 발음으로 위치 비정을 시도한다. 스에마쓰는 이를 ‘도무’군(지금의 전남 강진)이라 했다. 한자로 위치를 찾기가 불가능하니까 일본어 발음으로 비슷한 곳을 찾는 것이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유치한 위치 비정이며, 대한민국을 다시 지배하겠다는 야욕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뻔뻔한 발상이다. ‘침미다례’에서 뒤의 두 글자는 어디 가고 앞의 두 글자만 가지고 논한 것도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3국사기』「지리지」에서 ‘침미다례’를 찾으려면 ‘침미(沈彌)’군을 찾아야지 일본식 발음으로 ‘도무(道武)’군을 찾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침미’를 일본어로 바꾸면 ‘시즈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무시하고 침미다례를 강진이라고 우기는 것인데, 김현구 역시 앞에서 본 대로 지명 비정은 스에마쓰를 따랐다고 했다. 악랄한 식민사학자의 헛된 정치적 주장을 비판하기는 고사하고 그를 임나에 관한 ‘고전적 정의’를 내린 대학자로 평가하는 김현구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 없던 임나를 한반도에 신라와 백제보다 큰 나라로 설정하고 이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것을 ‘고전적 정의’ 운운하니 무어라 할 말이 없다(5부에서 계속).

글: 황순종(역사연구가)

저작권자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