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만 갔다오면 어째서 친일파가 되어 돌아오는가...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비판

 

서기4-6세기동안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야마토 왜가 식민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

국내 식민사학계 사실상 여전히 주장하고 있어...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

 

지난 11월 3일 임나일본부설과 관련된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역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의미심장한 판결이 있었다. 이 재판에 대한 설명이 다소 필요할 것이다.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과 유사한 입장을 견지해 왔는데, 자신을 매국사학자로 비판한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년 가까운 재판 결과 지난 3월 나상훈 판사는 피고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서 매국적 역사관으로 국민을 속여 온 학자가 애국적 역사관을 가진 양심적인 학자를 처벌해 달라는 적반하장격인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문제를 학문적 토론의 장에서 해결할 자신이 없었던 김현구는 검찰에 고발했으나 지방검찰청에서 불기소로 처리되었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고등검찰청의 임무영 검사가 이를 다시 기소했는데, 그는 동북아 역사재단에 파견 근무한 적이 있어 같은 재단의 이사였던 김현구와 친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짙은 의혹이 있었다.

나상훈 판사의 이덕일 소장에 대한 유죄판결은 원고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부당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전문적 분야인 고대 한일관계에 대한 학문적 검토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그릇된 판결이었다. 그러므로 주요 일간지의 저명한 전직 교수의 칼럼에서 서양 중세의 대표적인 잘못된 판결로 유명한 갈릴레오의 재판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진리는 승리한다고 했던가? 사필귀정으로 항소심의 선고공판에서 지영란 주심판사는 명쾌한 논리와 법리로 원심을 파기하고 이덕일 피고의 무죄를 선언했다.

이 판결로 광복 후 70년 동안 식민사학과 매국사학에 경도되어 언론마저 지배해 온 고대사학계는, 재야 민족사학계에 족쇄를 채우려다 오히려 스스로 보호받을 만한 명예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국민들에게 통쾌한 결과를 초래했다. 필자는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를 낱낱이 비판한 『임나일본부는 없었다』를 1심 판결 직후에 냈으며, 항소심 과정에 피고인 측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김현구의 잘못된 학설을 충분히 입증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으며, 현명한 판결을 내린 지영란 판사와 재판부에 국민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고대사학계의 매국사학은 이제 더 이상 이땅에 발붙일 수 없게 퇴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문제는 이번 재판에서 보듯이 법에 호소하기 이전에 학문적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서 김현구의 설이 왜 거짓으로 일관한 매국사학인지를 충분히 밝히려고 한다.

▲ 일본은 현재 그들의 교과서에 위와 같이 고대에 임나가 우리나라 남부에 있었다고 하며, 임나일본부설을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

김현구는 「야마토(大和) 정권의 대외관계」(1985), 「임나일본부의 실체」(1987), 『임나일본부 연구』(1993), 『고대 한일교섭사의 제문제』(2009),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2010) 등의 저술을 통해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任那)’와 ‘임나일본부’에 대해 일관되게 논해 왔다. 김현구의 논지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같은 나라인데, 이 임나를 백제가 평정하여 서기 4~6세기에 2백 년 동안 ‘일본부’를 두어 다스렸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의 핵심은 임나=가야(경상남도)...

김현구씨도 이와 같이 주장해...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지난 150년 동안 역시 임나를 가야로 보고 있는데, 한반도 남부의 이 임나를 야마토(大和) 왜(倭) 정권이 평정하여 다스렸다고 허위로 주장해 왔다. 김현구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임나를 ‘야마토 왜’가 다스렸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대신 ‘백제’가 다스렸다는 논리를 펴 왔으나, 이 역시 일인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허위로 구성된 논리에 불과하다. 김현구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근거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임나 7국을 평정했다는 『일본서기』 진구(神功)왕후 49년(369)의 기사는 일본에서도 허구로 인정되고 있다. 진구왕후가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진구왕후 때까지의 기록은 믿지 않게 되었으며, 따라서 가공의 인물에 의한 임나정벌 역시 가공의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김현구는 진구왕후 때의 일을 토대로 임나 7국 평정을 논한다.

둘째, 임나라는 나라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것으로 『3국사기』나 『3국유사』 등 우리 기록에 나오는 가야와는 다른 나라임을 알 수 있는 허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일본 식민사학자들과 김현구는 임나와 가야가 같은 나라라는 전제하에 모든 논리를 전개한다. 허구를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이 아니다.

셋째, 김현구는 『일본서기』에 보인 임나 관계 기사에서 야마토 왜가 주체로 되어 있는 내용을 전부 백제가 주체였던 것처럼 바꿨는데 여기에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만약에 백제가 임나 즉 가야를 지배한 것이라면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역사이므로 우리의 역사서에 그러한 내용이 있어야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백제와 가야의 관계에 대해 단 한 건의 기록도 없다.

반면 『일본서기』에 임나가 계속 나오는 것은 왜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백제와 임나의 문제라면 일본 역사에 기록할 이유가 없다. 그 둘은 김현구는 『일본서기』의 많은 내용을 자의적으로 허위로 해석했다. 『일본서기』만을 토대로 임나문제를 논하는 자체도 잘못이지만 그 내용들을 허위로 해석한다는 것은 양심적인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김현구씨, 허구의 <일본서기>진구황후조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논리전개...

이제부터 김현구의 잘못된 설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겠다. 일본부설의 기본 근거인『일본서기』의 관련 기록을 먼저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일본서기』 주아이(仲哀)왕 9년(320)에 진구왕후가 바다를 건너 신라를 정벌하니 신라왕이 항복하고 앞으로 조공을 바치기를 맹세했다고 한다. 이에 고구려와 백제의 왕도 스스로 진구왕후의 병영에 와서 야마토 왜의 서번(西藩)으로 칭하며 조공을 약속하니, 신라·고구려·백제의 3국을 야마토 왜의 직할령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49년 뒤(369) 진구왕후가 장군들에게 명해 신라를 격파한 후 임나 7국을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 식민사학자들과 김현구는 위 기록의 신라·백제·고구려의 3국을 당연히 한반도의 3국으로 보고 임나는 가야라고 주장해 오고 있으나, 임나는 가야와 그 이름이 다른데도 명확한 근거를 대지 않고 두 나라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결정적인 잘못이다. 『일본서기』는 이 임나 7국을 비자벌·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라고 한 데 비해, 『3국유사』와 『3국사기』에는 가야 6국을 금관가야·대가야·고령가야·아라가야·성산가야·소가야라고 하여 그 나라의 수와 이름이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합리적 해석은 『일본서기』의 임나는 일본열도에 있었기에 기록된 것이며, 이 임나와 인근한 것으로 나타나는 신라·백제·고구려도 일본열도에 있던 3국의 분국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일본열도 내의 분국설을 주장한 학자로는 북한의 김석형(1963)에 이어 한국의 이병선(1987), 문정창(1989), 김인배·김문배(1995), 윤내현(『한국열국사연구』, 1998), 최재석(『고대한국과 일본열도』, 2000) 등이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김현구는 이들의 설을 반박하지도 못하고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라는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임나와 가야가 전혀 다른 실체라는 점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히 다룰 것이다(2부에서 계속).

글: 황순종(고대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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