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 민족분열과 대립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 때문...

 

바른역사 아카데미12회

박정신(전 숭실대 부총장) '6.25전쟁의 상흔을 넘어서'

 

분단의 근본원인은 누구에게 있는가?

미국? 소련? 일본?

해방공간 3년 동안 권력욕에 사로잡힌 세력들,

단 한 번의 합작, 원탁회의 안 해...

 

“아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산천도 빛이 나고

해까지도 새 빛이 난 듯

유난히 명랑하다.”

 

서기1945.8.15. 갑자기 해방이 찾아 왔다. 일왕의 전쟁 종식선언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날에 광복된 것이다. <임꺽정> 소설로 유명한 벽초 홍명희는 뜻밖의 해방에 위와 같이 열광했다. 이에 앞서 해방을 앞두고 윤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가면서 <별 헤는 밤>의 시로 조국광복을 간절하게 노래했다. 더 앞에서는 심훈이 서기1930.3.1.에 삼일만세운동을 기념하여 ‘그날이 오면’으로 조국광복을 애절하게 노래한 바 있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 자신은 까마귀가 되어서라도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서라도 울리겠다고 했다.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도 오히려 기뻐하며 죽겠다고 했다.

이렇게 간절하게 바라던 해방이 찾아왔다. 그러나 또 한 부류의 선각자들은 일왕 히로히또의 항복, 전쟁종식선언이 기쁘지 않았다.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는 점심을 먹다가 이 소식을 듣고 ‘큰일 났다’고 했다. 일제가 항복을 했다는데 첫 소리가 ‘큰일 났다’였다. 씨알 사상가이자 민주투사인 함석헌은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고 했다. 시인 오소백은 “아, 우울한 해방”이라고 했다. 이러한 반응들은 준비 없이 갑자기 해방을 맞아 앞으로 나라가 어디로 치달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후 이들의 예상대로 나라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결국 남북분단과 이념대립 그리고 살상과 파괴로 얼룩진 6.25동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 연장선상에 있다.

▲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바른역사 강좌에 참여했다.  어떤 시민들은 필요한 내용을 열심히 적기도 했다. 사진은 강좌에 앞서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을 하는 모습.

서기2016.12.14.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진행된 바른 역사 아카데미12회 강좌에서 전 숭실대 부총장, 박정신 전 교수가 이 같은 주장을 했다. 이날 강연에서 박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지금 우리의 반목과 분열된 모습은 해방공간을 전후하여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보는 눈은 그동안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고 했다. 이어 양쪽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다고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이 양쪽으로 보는 눈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박 전교수가 말하는 왼쪽은 좌파를 뜻하고 오른쪽은 우파를 말한다. 그런데 박 전 교수는 이 두 가지 시각을 보는 것도 극복해야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해방공간에서의 대립과 분열 그리고 충돌을 박 전 교수는 좌우세력간의 이념대립 뿐 아니라 권력을 잡아보고자 하는 세력들 간의 세력다툼으로 보았다. 일제침략기에 독립광복전쟁을 하면서도 서로 파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지들 끼리 죽이고 죽인 사례를 들었다. 세력 간의 질투와 시기가 서로 죽이는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민족운동 ‘3만’으로 알려진 정순만, 이승만, 박용만 중에 이승만을 제외하고 모두 같은 독립운동세력에게 암살되었다고 했다. 우당 이회영도 반대파 독립운동세력이 일제경찰에게 정보를 알려 주어, 독립 운동하러 만주로 들어오는 이회영을 체포하게 했다는 것이다. 김좌진 장군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세력에게 희생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실정이라서 해방이 찾아왔을 때 서로 대립과 분열은 예견 되었다는 것이다.

▲ 이날 강사로 나선 박정신 전 숭실대 부총장은 남북분단을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초래했다거나 일본이 근본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관점을 바꾸자고 했다. 해방공간 3년동안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리가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바람에 분단이 굳어졌다고 보았다.

서기1948년 남북한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 까지 해방공간은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박 전 교수는 이 3년 동안 서로 싸우기만 했지 한 번도 각 세력 간에 합작이나 원탁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가 국토를 분단시키려고 했어도, 우리 내부에서 일치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이들에게 냈다면 결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국공합작을 2번이나 성사시켜 공동의 적인 일제에 대항해 싸운 중국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해방 전 일제와 싸우면서도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찢어져서 대립하며 단합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상재선생이 살아 있을 때는 신간회를 중심으로 좌우합작을 시도했으나 이상재 선생이 죽자 흐지부지 되었다고 했다.

해방공간의 3년을 우리는 서로 싸우느라 분단을 막지 못했고 결국 6.25라는 동족상잔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 때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가 6백만 명이라고 했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사람만을 말한다. 이러한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면서 전쟁은 ‘악’ 그 자체라고 소리를 높혔다. 박 전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선언을 이끌어 낸 것은 남북분단과 민족분열과 갈등 그리고 반목을 치유하는 첫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 박 전 교수는 강의 첫 부분에서 인도신화에 나오는 산양속에서 자란 범(호랑이)과, 본래의 범이야기를 했다. 산양들 속에서 자란 범은 성장해서도 자기가 산양인 듯이 착각하고 살았지만, 어느 날 숲속에서 범무리가 산양 범이 원래 범임을 깨우쳐 주자 혼돈에 빠져 앞으로 어떻게 살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고 했다.  한편, 지금까지 산양인줄 알았는데 본래 범임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시공을 초월한 자신의 본래 진 면목을 인도신화가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좌우의 색안경을 벗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의식으로 세상을 바꾸어가자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의제를 향한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민의 광장정치로 상징되는 새로운 변화에 발맞추어 가자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강연은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미사협) 허성관 상임회장이 인도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이 참석하여 관심을 가졌다. 다음 강좌는 12월21일 같은 장소에서 미사협 상임회장인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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