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영조와 사도>

미치광이 왕자의 당연한 최후일까, 피워보지도 못하고 꺾인 성군의 싹이었을까.

300년 전에 아버지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조선의 세자,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최고의 비극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책이 출간되었다. ‘위대한 군주와 잔혹한 아버지 사이, 탕평의 역설을 말한다’ 라는 부제와 ‘300년 전 죽은 세자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헤드카피가 직설적으로 전하듯, 『영조와 사도』는 영조가 아닌, 사도세자를 적극 옹호하기 위해 쓴 책이다.

지은이는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역사 변호인’을 자임한다. 『영조와 사도』는 탕평과 균역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개혁 군주의 이미지가 강한 영조의 그런 이미지가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하나하나 검증하며 영조 개인과 왕으로서 추진했다는 개혁정책의 허상을 하나하나 깨뜨린다.

실체를 들여다보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독점해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영조와 사도』는 이 과정을 통해 왕이 왕자를, 또는 아비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복잡한 정치적 환경과 치밀한 정략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영조와 사도』는 영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 조선 후기 정치사, 정쟁사 이야기다. 왕이라는 공인으로서, 한 아들의 아비라는 개인으로서, 영조의 두 가지 면모를 세밀하게 파헤치다보면 권력을 둘러싼 왕과 신료들 간의 피 말리는 ‘밀당’, 즉 조선 후기 노론-소론의 당쟁사가 읽히는 것이다.

신간 <영조와 사도> 김수지 저/ 인문서원 간/ 360쪽/ 17,000원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정치적 배경에는 “소론 포용 탕평책이 차츰 무너져간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단언한다. 영조가 추구한 탕평책은 결국 자신의 즉위에 반대했던 소론을 포용한 정책이었으며, 소론이 무너지고 정세가 바뀜에 따라 “친소론의 홍보물로 이용되었던 사도세자는 영조 이후 차기 권력을 노론 일당 독재로 만들고 싶어 하던 정치세력들에게 자연스럽게 타도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소론이 힘이 빠진 이후로는 강화된 왕권을 마음껏 누리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고, 친소론 성향의 세자 역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알아챈 정치세력들, 이른바 노론 벽파(辟派)가 부자지간을 더욱 이간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증언하듯, 그들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은이는 영조를 평생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권력중독에 빠져 아들을 죽이고 마는 ‘못난(?) 남자’로 바라본다. ‘콤플렉스 덩어리’로서의 영조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두 개의 ‘아킬레스 건’, 즉 ‘출생의 비밀’과 ‘경종 독살설’에 시달린 군주였다.

숙종 때 서인이 분열하여 탄생한 노론과 소론은 경종시대를 거쳐 영조 즉위 과정에서 대립하면서 정쟁은 점점 격화된다. 『영조와 사도』는 이인좌의 난, 신임옥사, 을해옥사 등 수많은 피로 물든 사건을 거치면서 영조라는 군주가 어떤 식으로 왕권을 강화해가며, 혹심한 정세와 종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구박’ 속에서 사도세자가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지은이는 사도세자가 아버지 손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모순을 지적한다.

즉 탕평의 아이콘으로서 아들 사도세자에게 탄생과 동시에 친(親)소론 환경을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면서 아들을 노론의 공격에 대한 ‘총알받이’로 활용했다는 점, 더 나아가 ‘자수성가한 왕’인 영조가 나이가 차츰 들면서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젊고 분방한 아들의 거침없는 면모를 ‘질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오늘날에도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에게 학대 수준으로 가혹한 훈육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그리고 왕의 그런 감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부자지간을 이간질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세력들이 모사를 꾸밈으로써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 최대의 비극이 발생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였으며, 필요가 없어지자 ‘팽’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도세자에게 씌워진 혐의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차기 권력인 세자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왕좌는 자신의 것일 세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탈취할 모반을 꾸민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임기상(<숨어있는 한국현대사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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