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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사학은 국사농단 중단하라!"그렇지 않으면 국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세우겠다...
오종홍 | 승인 2016.12.13 15:02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지금 국정농단에서 대해서 청문회를 하고 있습니다.

농담입니다만,

사실은 이게 농담반 진담반입니다.

앞으로 국사농단 청문회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인석에 서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새로운 패권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나라의 부가 쌓이자 강병정책으로 돌아서 동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며 중화패권주의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색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중국 땅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역사공정을 완료한 상태이다. 우리에게는 동북공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편승하여 과거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미국을 등에 업고 재무장에 들어갔고 한국을 재침략할 목적으로 독도를 일본영토로 기정사실화 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친일매국정권과 결탁하여 군사정보협정까지 맺어 일본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단초를 열어 놨다. 이들 나라가 중화패권주의와 일본 제국주의로 나갈 수 있도록 정당화 시켜주는 것이 역사다. 물론 이들이 제시하는 역사라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를 왜곡, 날조한 침략주의 사관에 터 잡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중화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을 이어받은 세력이 국내 사학계를 모두 장악하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살아있는 천황제에 봉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완강히 부정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이병도와 신석호 등의 후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이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4세초까지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것과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임나일본부의 핵심인 임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화패권주의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주의 황국사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인식이다.

▲ 동북아역사재단이 서기2016년도 마지막 고대사 학술토론회를 지난 12월 9일,  서울 시청 옆, '프레스센터' 에서 개최했다. 이 날 토론사회자로 나선 강남대학교, 박경철 교수는 방청석에게도 20분 가량 질문토론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방청석에서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교수는 강단식민사학에 유리한 사회를 보았다는 지적과 함께 20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주제발표자의 답변을 자신이 대신해 주기도 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왼쪽 부터 한밭대 공석구 교수, 유창종 유금박물관장, 강남대 박경철 교수, 심백강 민족문화원장, 인학대 복기대 교수.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만든 동북아역사재단, 오히려 옹호하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략에 대응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그런데 동북아역사재단을 중화사대와 일제식민사관을 이어받은 제도권 사학계가 모두 장악해 버림으로써, 역사침략에 대응하기는커녕 우리가 낸 세금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략을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동북아역사지도집을 발행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식민사관에 따라 서기4세기까지 북한과 심지어 경기도 일대 까지 중국 땅이라고 그려놓고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 아니라고 빼버렸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동북아역사재단의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는 국회에서 동북역사특위기 설치되어 이들의 역사매국행위를 질타했다.

동북아역사재단 해체위기 모면하고자 민족사학에 발언기회 마련...

결국 동북아역사재단을 해체하라는 등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해체 위기에 놓인 동북아역사재단은 위기를 모면하려고 역사매국행위를 고발하여 국회로 까지 가게 만든 민족사학계의 목소리도 들어 준다며 민족사학계의 학자들을 참여 시킨 가운데 고대사 쟁점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횟수를 늘려 전반기 2회, 후반기 2회 총 4회로 편성하여 식민사학계와 민족사학계간의 첨예한 쟁점사항을 토론케 했다. 지난 서기2016.12.9. 에는 올해 마지막 토론회가 있었다. 서울시청옆 ‘프레스센타’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이날 학술토론회에는 식민사학계를 대표하여 한밭대의 공석구 교수와 검사 출신 변호사인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이 나왔다. 민족사학계를 대표해서는 심백강 민족문화원장과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가 나섰다.

일제가 갖고 나온 와당을 믿어 의심치 않는 유창종 관장....

이날 학술대회 주제는 ‘한국상고사의 쟁점, 낙랑군의 위치’였다. 첫 발제자로 나선 유창종 관장은 자신이 30여 년 동안 모으고 연구한 와당을 통해서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식민기관, 낙랑군의 위치를 찾고자 했다. 유관장은 일제의 한국침략 초기 평양일대에서 일본인이 수집했다는 와당을 일본인 자손들로부터 기증받아 수십 년 동안 연구, 분석해 본 결과 진품이라고 했다. 일제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점제현신사비, 봉니, 효문묘동종,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의 이른바 ‘낙랑목간’등 기타 유물들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유물들이 모두 날조, 위조된 것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유관장은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발굴된 것으로 밝혀진 와당은 진품이라고 했다. 여기에 기초하여 낙랑군에 관련된 사료들을 꿰어 맞춰갔다.

 

▲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은 와당은 고정식이라서, 가지고 이동했다는 설이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일제침략기, 일본인이 북한 평양지역에서 발굴했다는 와당을 그의 후손으로 부터 수집점 넘겨 받아 박물관을 세웠다고 했다. 유관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와당들이 모두 진품으로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을 피력했다.

와당이 절대 진품임을 굳게 확신한 가운데 이날 주제발표에서는 기존의 식민사학계의 낙랑군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이론까지 등장했다. 기존 식민사학계는 처음부터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한나라 왕, 유철이 평양지역에 있던 위만조선의 왕검성을 멸하고 바로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유관장에 따르면 처음 낙랑군이 설치된 지역은 북한 평양이 아니라 중국 요서지역의 초기 왕검성이라는 것이다. 한왕 유철이 멸망시킨 곳은 북한 평양의 왕검성인데 멸망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식민통치기관인 낙랑군은 거기서 수천 킬로 떨어진 이른바 ‘초기 왕검성’ 지역인 요서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약 1년 후 다시 요서지역의 낙랑군을 현재의 북한 평양에다 옮겨서 설치했다고 했다. 이후부터는 기존의 식민사학계의 견해와 같다. 평양에 있던 낙랑군은 서기313년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고 나머지 세력이 중국의 요서지역으로 도주하여 다시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복기대 교수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토론자로 나선 인하대 복기대 교수는 유창종 관장에 대하여 날선 비판적 토론을 최대한 삼갔다. 와당에 관한 유관장의 주장을 믿는다고 했다. 다만 와당은 와당자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지에서는 반드시 관련 기와파편들이 발견되는데, 유관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내용은 없기 때문에 이것을 더 보완하면 유관장이 주장이 설득력이 더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의문에 그쳤다.

공석구 교수의 중국동북공정지도집 옹호방법...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밭대 공석구 교수는 동북공정지도로 유명한 중국역사지도집에 나타난 연나라,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이 북한까지 들어온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내놨다. 여러 가지 사료와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서 중국 장성이 북한 평안도 까지 오도록 그린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심백강 원장은 공교수가 각론에서는 부정하지만 총론에서는 북한까지 들어온 중국역사지도집을 긍정한다고 주장했다. 즉 공교수는 중국역사지도집에 나타난 장성이 북한 평안도까지 온 것으로 그려진 것은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맞지 않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전체를 갈무리 할 때는 결과적으로 중국 장성이 북한 평안도 까지 온 것으로 그린 동북공정용 중국역사지도집이 맞다고 보고 있다. 공교수는 중국과 이민족과의 경계선을 장성으로 보고 있다. 장성 밖은 우리와 같은 이민족 땅이고 장성 안쪽은 중국 땅이라는 인식이다. 중국 <한서> ‘흉노열전’의 기록을 근거로 ‘장성 밖의 나라는 선우의 명령을 받고, 장성안의 땅은 짐이 통제한다’는 구절을 따른 것이다.

▲ 한밭대학교, 공석구 교수는 중국의 역사지도집에서 중국 장성이 북한 평안도 청천강 까지 그려진 것을 비판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을 북한 평양에 위치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앞서 비판한 중국 장성이 청천강까지 왔다고 그린 중국역사지도집을 긍정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북한까지 들어온 중국장성,

평양 낙랑군까지 와야한다는 공석구 교수의 논리...

그런데 공교수는 결론에 가서는 중국 행정기관인 낙랑군과 현도군이 지도집에는 장석 밖에 표기되어 있음으로 결과적으로 낙랑군과 현도군인 중국 땅이 아닌 것 되었다고 아쉬워한다. 그런데 공교수와 같은 식민사학계는 낙랑군이 현재 북한 평양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따라서 공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장성이 중국역사지도집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북한 평양까지 그려져야 맞다. 그런데 현재 중국역사지도집은 만리장성을 낙랑군을 둘러싸지 못하고 훨씬 위인 청천강까지 밖에 안 오게 그려놓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 만리장성이 북한 평안북도 청천강까지 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고 더 내려와 낙랑군이 위치한 평양을 포위하여 그려져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역사지도집의 장성의 동단이 틀렸다고 한 것이라는 것이다. 심백강 원장은 장황하고 어지럽게 쓰인 공교수의 주장 이면에 이러한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을 꿰뚫어 보고 각론에서는 중국 장성이 북한 평안도까지 온 것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총론에서는 긍정한다고 한 것이다.

중국동북공정지도를 설명하는 부분이 더 많은 공교수의 발표문...

공교수는 이에 대하여 연구서로 보고 비판적 검토를 했을 뿐이라고 하며 총론에서 중국역사지도집을 긍정했다고 하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역사지도집은 중국 각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권위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권위 있는 역사지도집’ 이라는 표현도 결국 중국역사지도집을 긍정하는 간접주장으로 오해하기 좋은 말이다. 또한 심백강 원장은 공교수가 장성의 동쪽 끝을 해성시 영구시일대로 보았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공교수는 심원장이 자신의 글의 논지를 전혀 잘못 이해했다고 했다. 그러나 공교수의 주제발표 논문을 보면 웬만한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쓰였다. 웬만한 인내심을 가지지 않고는 조금 보다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어렵다.

공교수의 역사논문, 웬만한 사람은 알아듣기 힘들어...

공교수의 이러한 경향은 그의 다른 논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독자에게 읽힐 목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토론회의 논문인데 자신만이 아니고는 웬만한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썼다면 이것이 문제이지 마치 암호문을 읽은 것처럼 어려운 글을 읽고 평가한 사람에게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이다. 한편 이날 공교수는 갈석산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모택동 주석께서 갈석산이라고 하는 큰 비석까지 써주셨다.’고 하여 빈축을 샀다. 공석구 교수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발주한 동북아역사지도집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이 역사지도집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고대사학회는 서기4세기 까지 북한이 중국 땅이라고 그렸고 고의로 독도를 한국 땅에서 제거했다. 국회청문회까지 불려 가서 독도를 다시 그려오라고 했지만 거부했다.

▲ 이날 낙랑군 위치에 관한 토론에서 심백강 원장은 우리에게 유리한 사료는 마치 없는 것 처럼 하고 식민사관에 유리한 사료만 언급하는 공석구 교수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만약 계속하여 강단사학이 국사를 농단하면 장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서는 일도 있을 것'이 라고 경고했다.

또 다시 반복되는 토론 사회자의 일방적 편들기...

종합토론은 강남대학교 박경철 교수가 이끄는 가운데 발표자와 논평자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특히 심원장과 공교수간의 한 치도 양보 없는 공방전이 토론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심원장은 중국장성의 동단을 연장성의 동단인 양평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양평은 현재 하북성 진황도시 서쪽의 노룡현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공교수는 심원장이 인용한 사료가 주석임을 상기시키면서 주석에서 말하는 것은 원래의 양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서 결국 양평은 오늘날 요녕성의 요양이라고 못 박았다. 결국 연나라 장성의 동쪽 끝이 현재 요녕성 요양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는 공손씨가 지배한 지역을 현재의 요동의 요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요동이 과연 현재의 요동을 말하는 것이냐 관해서는 아니라는 사료가 쏟아져 나온다는 점에서 공교수의 반론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비판이다. 더구나 식민사학계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삼국지>에 나오는 연나라 진개가 조선의 땅을 2천리 빼앗고 그 동쪽 끝이 만번한이라는 기록은 송나라 시대의 배송지라는 인물이 주석으로 갖다 붙인 것이다. 이것도 주석인데 심원장이 주석을 인용한 것은 맞지 않다고 보면서 식민사학은 다른 한편에서 주석을 가장 중요한 사료적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순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강단식민사학이 중국 장성을 북한까지 끌어 들였다...

이날 방청석에서도 질문이 있었다. 공교수는 중국이 진장성을 북한 평안도 청천강까지 왔다고 그린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고고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조선으로 가는 길>의 저자, 김봉렬씨는 그렇게 그리도록 한 것은 공교수와 같은 강단사학계가 원인제공을 했다고 지적했다. 강단사학계가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진장성과 낙랑군은 중국 사료에 의하면 거의 붙어 다닌다. 진장성 동단에 낙랑군이 있다는 식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수는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은 평양에 있다고 하면서 진장성은 요동지역에 있다고 하니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공교수는 낙랑군이 한나라 식민기관이 아니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중국의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고 갔다. 중국 측에서나 영토관념에 따라 낙랑군을 자기네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침략기, 식민지근대화론 주장과 상통하는 공교수의 위험한 발언...

그러면서 ‘일제시대도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하느냐’면서 우리는 일제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말로 답변했다. 공교수에 의하면 북한 평양에 한나라 무제가 식민통치기관, 낙랑군을 설치하였지만 그것은 중국의 식민통치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착민인 조선인이 더 많았고 토착민들도 낙랑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일제시대도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인이 일제의 관리도 되고 친일파로 많이 식민통치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제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논리다. 이는 결국 식민지근대화론과도 무관치 않아 심각한 역사인식이라는 지적이다.

▲ 인하대학교, 복기대 교수는 이날 강단사학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분으로 토론회에 나왔다. 복 교수는 대척점에 있는 유창종관장의 와당에 대하여 인정한다고 전제하면서, 와당이 출토되면 기본적으로 따라와야 하는 것이 기왓장 조각들인데 그런 것이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고 하면서 앞으로 이것을 보충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사군을 더이상 다루지 말자는 복기대 교수...

복기대 교수는 종합토론시간에 토론을 하는 것을 대신하여 한사군에 대한 제안을 하였다. 강단사학과 민족사학계가 이제 더 이상 한사군 문제로 싸우지 말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막혀 고대사 연구가 더 이상 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사군 문제를 종식하고 다음 역사를 함께 연구해 나가자는 것이다. 또한 국사국정교과서와 검정국가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한사군 문제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도 있었다. 한사군 특히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강단사학계의 주장을 덮자는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것이다. 설사 이 문제를 덮고 다음 역사를 연구하자고 해도 강단사학은 민족사학계가 바라는 데로 결코 연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식민사관에 의해 확고하게 우리역사를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또한 국사교과서에 한사군 문제가 거의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국사책을 어떻게 보았기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한사군은 직접적인 표현만 쓰지 않고 있지 고스란히 다 들어가 있음이 확인된다.

한사군이 현행 국사책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복기대 교수의 역사인식...

고구려가 낙랑군을 서기313년에 멸망시켰다는 표현이 국사책에 깔려 있는 대표적인 식민사관 사례다. 이는 한사군인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북한 평양에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4백여 년 동안 존속하다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사라졌다는 논리다. 이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 조에 나오는 기록에 터 잡아 쓴 것이다. 그러나 미천왕조 어디에도 낙랑군이 미천왕의 공격을 받고 소멸했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에 미천왕이 낙랑군을 습격하여 포로 2천을 포획했다고 나온다. 북한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기록은 중국과 우리나라 사료를 통 털어서 단 한 개도 없다. 오히려 낙랑군은 대륙에 있었다는 기록만 넘쳐 난다.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전 학술회의와 마찬가지로 경비원들을 고용했다. 방청객에서 학술토론회의 불공정성에 대하여 거칠게 따지고 나오면 즉시 제압하려고 하였다. 또한 종합토론의 사회자도 지난번에 이어 계속하여 강단사학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편파적인 인물로 채웠다. 이전부터 중립적인 토론 사회자를 세우라고 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서 1년간 일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형식적인 행사라는 것이 중론이다.

오종홍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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