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교수, 발해가 우리역사 아니라는 전제하에 우리역사로 만들자고 하다...

 

“발해는 중국, 러시아, 북한에 걸려 있어서,

삼국 공동의 역사로 해야...“

“북한이 연구한 발해역사는 믿을 없어...”

 

예전에 인기가수 서태지가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를 유행시킨 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 우리역사의 자존심으로 고구려를 든다. 진취성과 역동성으로 대륙을 호령한 고구려가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서태지는 왜 고구려가 아닌 발해를 노래했을까?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발해는 원래 정식 이름이 진국震國이다. 그리고 발해를 세운 주인공이 대씨인 대조영이어서 그런지 大震國으로도 불린다. 발해는 개국시조, 대조영이 방송사극으로도 방영이 되어 우리에게는 낯이 익다.

이러한 발해가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역사임을 의심치 않는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대조영의 후손인 대씨 또는 태씨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또한 발해가 거란의 요나라에게 망하자 왕족과 발해주민들이 대거 고려에 귀순해 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이는 발해가 고려와 동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히 우리의 역사인 발해가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 발해전문 역사학자의 입에서 우리역사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우리역사로 보지 않는 듯한 인식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기2016.11.30.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고대사시민강좌 하반기 마지막 강사로 나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가 이러한 주장을 했다. 송교수는 발해의 강역에 현재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들어와 있는데 이들 삼국이 서로 자기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발해사를 삼국이 공유하는 것이 낫다는 태도를 보였다.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동북공정으로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발해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함께 보자는 주장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나라의 역사인가를 짚어가는 과정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몰아가는 것은 반대했다. 특히 중국은 동북공정 차원에서 발해를 당시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는데 이는 억측이라고 했다. 발해가 황제국을 표방했고 중국 스스로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고 외국학생임을 의미하는 빈공과에 발해 사람들이 당나라에 가서 과거시험을 치룬 것 등이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교수는 러시아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더구나 북한이 발해를 우리의 역사라고 하는 것을 비판했다. 북한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는 것을 ‘강변’ 했다고 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북한이 발해사에서 당나라나 말갈적 요소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을 ‘극단적’이라고 비판했다. 송교수는 ‘고대사가 북한정권의 정통성 입증에 희생양이 되었다’고 까지 했다. 송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이 정치적 목적하에서 발해사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송교수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는 북한의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뒤에 가서는 북한의 주장과 같은 말을 해 빈축을 샀다. 먼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출신이 순수한 말갈족이 아니라고 했다. 고구려에 귀화한 말갈계 고구려인이라는 것이다. 발해의 초창기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만주 길림성 돈화시에서 발굴된 무덤이 돌방무덤인데 이는 고구려 양식이라고 했다. 특히 대조영의 증손녀로 알려진 정혜공주 무덤이 고구려 지배층무덤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말갈족은 흙무덤을 썼다고 했다. 또한 발해 궁궐지에서 왕이 침식하던 건물지 두 곳에서 온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온돌은 고구려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며 우리고유문화의 하나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금제가지장식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조우관과 닮은 것으로써 고구려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 송교수는 발해역사에 관한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하다며 발해역사를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한 발해 강역에 현재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들어가 있어 대한민국입장에서는 연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한 중국이나 러시아는 발해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어려움이 더 많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발해사를 삼국이 공유하도록 하면 중국, 러시아가 자료를 공개할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송교수는 이처럼 출토된 유물뿐만 아니라 문헌사료에서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기록을 제시했다. <송사> 정안국전에 나오는 정안국 오현명의 말을 인용했다. 정안국 왕이 이르길 ‘본래 고구려 옛 땅에서 살던 발해 유민인데 한 쪽 귀퉁이를 차지하여 여러 해를 지내왔다’ 는 구절이다. 또한 <속일본기>에는 무예왕이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했다. <일본일사>에도 고구려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송교수는 이와 같은 자료를 볼 때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고 했다. 이는 앞서 송교수가 북한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했는데 결국 송 교수 자신도 다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여 모순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송교수는 이렇게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해놓고 다시 뒤에 가서는 발해를 우리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우기는 것에 대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서 일어났다면 당연히 우리역사일 수 밖에 없는데 송교수는 다시 우리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송교수의 진짜 생각이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이와 같이 송교수는 한쪽에서는 발해사가 우리역사라는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어느 나라역사인지 알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 발해사는 과연 한국사인지 중국사인지 논란이 많을 정도로 수수께끼 속에 파묻혀 있다고 했다. 또한 발해가 고구려계와 말갈계로 구성된 나라라고 하면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중국사도 될 수 있고 러시아사도 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렇게 서로 자국의 역사라고 다투기 때문에 정작 발해사의 실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도 방청객에게는 아리송하게 들린다. 이미 송교수 자신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수많은 증거를 제시해놓고 다시 발해사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하니 송교수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교수의 진짜 속내는 마지막에서 드러났다. 누구의 독점적인 역사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발해사 관련 당사국의 공동의 역사로 하자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남북한의 공동 역사로 보자는 것이다.

▲ 송교수는 만주를 3가지 민족이 차지한 역사로 설명했다. 중앙에는 예맥들 우리민족이, 그 오른쪽은 말갈의 선조로 알려진 숙신족이, 그 왼쪽은 동호족이 차지한 것으로 면서 유목민족이라고 했다. 이날 고대사시민강좌  마지막회가 열렸다. 경희대학교 조인성 교수가 나와 한국고대사학회장을 대신해서 그동안의 시민강좌개최 취지와 내력을 소개했다. 그리고 실무진들의 노고를 수고했다는 말로 위로 했다. 서기2016년 고대사시민강좌 자료를 묶어 내년 봄에 책자로 펴내겠다고도 했다. 서기2017년도에 다시 시민강좌를 개최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이에 대하여 질문시간에, ‘지금 우리나라에 발해건국시조인 대조영의 후예들인 대씨, 태씨 문중이 있고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데 송교수의 발해사 공유주장을 이 대씨 문중에서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냐’는 질타가 있었다. 자기 조상을 갑자기 중국인으로 바꾸고 러시아인의 조상으로 삼자는 주장과 같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송교수는 ‘대씨 문중과 대조영의 영정제작에 참여하면서는 공유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날이 고대사시민강좌 마지막이라, 송교수의 강좌에 대한 비평문을 미리 준비해서 지난 주 것과 함께 배포했다. 방청객들의 반응은 따듯하고 정겨웠다. ‘이제 비평문을 못 받아서 어떻게 하냐, 지금까지 이 비평문 읽는 재미로 왔는데 이제 심심해서 어떻게 하냐, 그동안 수고많았다. 그동안 못 받은 비평문은 어디서 받을 수 있느냐,’는 등 아쉬워하면서 진심어린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이날로써 한국고대사학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주최한 고대사시민강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강좌 실무자들은 기자를 보면서 수고했다는 인사말로 그동안의 취재과정에서생긴 유무형의 갈등을 갈무리했다. 주최측은 내년 봄에 올해 강의한 자료를 모아서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취재기자는 강좌비평문을 중심으로 식민사학을 결산하는 책을 올해 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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