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일본 땅이라는 담론조차도 못하도록 하는 환경은 옳지 않아...”

 

일제식민사학자, 하야시다이스께의 관점으로

신라의 삼한일통 바라보는 윤선태 교수...

 

"단재 신채호의 말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말과 같다,

일제의 식민사관인 정체성론과 타율성론과 같아진다."

 

우리나라 역사 체계가 제대로 잡힌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학자의 탈을 쓰고 유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말은 우리민족의 역사가 사실상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시작되었다는 말과 같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우리는 민족이라고 하는 단일체의 모습이 없었다는 말이다. 삼국은 개국신화가 다 다르니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거대담론’ 속에서는 일방적인 공격적 성향만 나타낸다는 모호한 말을 전제한 후, ‘독도가 일본 땅이 라고 한다’ 면, ‘죽일 듯이 달려 들것’이라며 독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대학교에서 교수라는 탈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신과 같은 사고를 가진 후예를 길러내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염려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서기2016.11.16.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에서 개최하고 있는 한국고대사시민강좌에서 동국대학교 역사학과 윤선태 교수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섰다. 윤교수는 ‘삼한일통의식과 삼국통일론’을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일본제국주주의 황국사관론자, 햐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조선사>에 나오는 식민주의 사관을 끌어와서 신라의 삼국통일론을 주장하였다. 햐야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가는 과정에서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시점을 삼국통일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을 하여 당나라를 이긴 뒤의 시점이 삼국통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햐야시가 나약한 신라가 대국, 당나라와 싸워서 이긴 것을 자주성의 발현이라고 했다며 이것을 높이 샀다. 윤 교수는 이것이 향후 우리나라 학계에 계승되어 국사교과서에서도 나당전쟁 이후에 삼국통일이 완수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했다. 다음은 윤교수가 주장한 내용이다.

 

▲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윤선태 교수는 자신은 단재 신채호와 대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단재 신채호는 100년전의 사관인데, 지금과 맞는 것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단재 신채호의 사관이 구태의 뒤떨어진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랑케의 객관적인 실증주의 사학은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은 필연이다. 주관적 사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사건은 사실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불완전한 기억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역사라는 것은 이렇게 기억이 불완전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 주관적인 현재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다. 따라서 있었던 그대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독일의 랑케의 말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가 없다. 더구나 역사는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만들어졌다. 단군신화도 만들어졌다는 말을 쓰는데 이것이 한 예다.

근대역사학은 진실 밝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입장과 해석을 둘러싸고 담론이 이루어진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와 관련된 주관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신라의 김유신얘기다. 김유신이 있었다고 하면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김유신은 애국자라고 하면 새로운 가치판단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역사가가 김유신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주관적인 평가다. 역사학은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들을 모아서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속에서 역사가의 주관과 현실성이 개입한다.

역사학자, ‘이애치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분명히 존재했던 불변의 실체지만 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인간들의 과거는 매우 현재적이며 주관적이다. 역사에서 현실의 필요성에 의해 항상 과거는 재해석된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고 현실로 불려온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의미부여를 하고 정치적으로 바꿀 수 있다. 역사를 진실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으면 안 된다.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비판적으로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면 히틀러다. 그가 쓴 책 <나의 투쟁>을 보면 히틀러는 학생시절 역사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독일의 역사를 너무나 나약하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이 나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히틀러 집권이후 유태인학살과 게르만족에 대한 우월적 사관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이것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진실로 포장해 간다. 역사는 이처럼 일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어떤 의지실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역사가가 얘기할 때 항상 두 눈 부릅뜨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내가 거기에 현혹된 것은 아닌가, 어떤 정치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모든 시선들을 열어놔야 한다. 여러 가지 시선들이 존재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시선으로 몰아간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머리를 통제하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난후에 한반도에는 다른 국가체가 없었다. 완벽하게 하나의 중앙집권국가체제하에 놓이게 된다. 이 나당전쟁을 역사가 중에서는 삼국통일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때에 삼국통일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내는 나당전쟁을 겪은 후에야 삼국통일이 완수되었다고 나온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아직 통일이 안 된 것처럼 불완전한 통일로 기술하고 있다. 학교 때 스승(노태돈 전 서울대 교수)은 이것을 2단계 통일로 가르쳤다. 당나라와의 전쟁을 통해서 마침내 삼국의 통일이 완성된다. 나당전쟁을 통일의 마지막 귀결로써 설명한다. 나당전쟁을 이러한 인과관계로 보는 것은 역사가의 새로운 시각이다.”

▲ 윤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일제의 황국사관학자인 하야시 다이스케의 <조선사>에 나오는 사관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나라의 근대역사학이 이 하야시의 덕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윤 교수는 이와 같이 주장하면서 근대역사학은 크게 민족, 실증, 발전을 구성요소로 갖고 있다고 했다. 단재 신채호 사관은 민족과 실증은 있으나 발전론이 없는 점을 비판하였다. 근대역사학이론에 따르면 역사를 발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데 단재 신채호는 옛 역사는 영광으로 가득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이후 소중화 조선까지 내려오는 역사는 절망의 역사로 본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역사학의 발전론과 맞지 않고 일제식민주의 사관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다면서 타율성론 정체성론과 같은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식민주의 사학자, 하야시의 <조선사>를 토대로 역사를 서술한 안확과 같은 사학자를 적극 두둔하였다.

이날 윤교수의 강의에 대하여는 많은 비판이 일었다.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과 정치적 성향이 반드시 개입될 수밖에 없으니 그대로 믿지 말고 의심하면서 보라고 했다. 그리고 의심의 한 예로 단군과 독도가 우리나라 땅인지를 예로 들었다. 무조건 믿지 말고 공부해서 스스로 터득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군과 독도는 역사학을 내세우기 이전의 우리의 뿌리와 생존에 관한 것이고 의심보다는 당연한 사실로 각인될 만큼 증거들이 무수하게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도 주체적인 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윤 교수의 강의의도와는 완전히 빗나간 사례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샀다. 더구나 단재 신채호가 주장한 본질적인 의도를 외면하고 형식논리적인 면만 부각시켜 단재 신채호를 일제식민주의 사관과 같다고 한다는 것은 이 고대사강좌를 개최하는 주최 측의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하야시는 일제식민주의 사관의 태두, 원조라고 할 만큼 이후의 일제 관학자들의 교본이 될 만큼 영향력이 지대한 인물이다. 임나일본부설이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탄생과 발전이 모두 하야시가 쓴 <조선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우리역사 왜곡의 원흉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윤 교수는 하야시의 사관을 그대로 끌어와서 우리나라 근대역사학 성립에 하야시의 공이 대단히 크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하야시가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한 것을 우리민족의 자주성의 발현이라고 평가한 것은 당시 청나라에 종속되어 있던 소중화 조선을 분리시켜 일제가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기 위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자주성을 말하자면 고구려만큼 자주성을 드날린 나라도 없다. 더구나 대륙에서 드러냈다. 반면에 신라는 반도에서 나타냈다. 하야시가 의도한 근본의도가 이것인데 이 하야시의 이론을 적극 동조했다는 비판이다.

이날 강좌에서도 지난주 강의에 대한 비평문을 방청객에게 나눠주었다. 반응이 예전처럼 좋았다. 지난주에 못 받은 예전의 비평문을 받으러 왔다는 방청객, 지난주에 받으러 온다고 해놓고 못 와서 이제 왔다면 미안해하는 방청객, 몇 장 더 받을 수 있느냐며 부탁하는 방청객 등 반응들이 다양했다. 민족사학계에서는 이런 시민강좌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방청객도 있었다. 매주 수요일 같은 시간에 서울교육대학교에서 바른역사 시민강좌가 열린다고 알려 주었다.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올해 고대사시민강좌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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