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만 들이대는 일제식민주의의 사이비 실증주의...

김명옥 전문기자

 

바른역사아카데미 시민강좌 9

‘한국 실증주의 사학이란 무엇인가’ 임종권 숭실대학교 초빙교수

 

대한민국 역사학이 죽은 이유는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에 매몰되어 있기때문...

역사학에서 민족을 제외하면 성립이 불가능하다...

 

오늘 11월 23일(수) 바른역사아카데미 시민강좌 제 2주제인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강좌가 열렸다. 11월 30일부터는 제 3주제 강좌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 실증주의 사학이란 무엇인가’로 열린 이번 강연은 랑케의 실증주의가 일제에 의해서 어떻게 왜곡되었고, 한국에 이식되어 현재까지 사료를 읽어내는 틀로 작용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파 해쳤다. 임종권 교수는 강연 내내 보편성을 강조했다. 그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이 식민사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임종권 교수는 서양사학자로 현재 한국국제학연구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오늘날의 문제는 역사의식 결여의 결과다”로 말문을 연 임종권 교수는 “역사의식이 결여된 이유는 민족주의 역사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역사연구의 중심인 대학에서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역사를 해석하는 틀, 사관으로 인식된다. 네모난 틀에는 어떤 재료를 넣어도 네모난 모양을 찍어내듯, 사관은 어떤 역사 자료를 가지고 연구해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관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실증주의는 식민사관을 만들어 내는 틀이라는 것이다.

랑케의 사관은 민족주의 사관에 지나지 않아...

본래 랑케의 실증주의는 “사실 있는 그대로, 문헌비판을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내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한다. 랑케는 『강대국』이란 저서에서 “민족의 주체적인 독립성은 민족정신에 의해서 확립”되는데 민족의 정신은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즉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은 곧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실증주의 사학은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보편성을 주장한다고 한다. 보편성이란 말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듯하지만, 그 말 속에는 “함정과 무시무시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랑케에 의해서 창시된 실증주의는 방법론에서 실증을, 사관에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데, 그가 실증과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데에는 독일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 독일은 유럽의 역사에서 약소국으로 러시아·영국·프랑스 등 강대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19세기 프리드리히 빌 헬름은 독일 민족의 결속과 국가 통합을 추진하고자 랑케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랑케는 “국가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다 그런데 독일의 역사는 너무 많이 왜곡 되어 왔다. 문화적으로 열등한 민족으로 기록되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우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이 단결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 실증사학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랑케(Leopold von Ranke, 1795년 12월 21일 ~ 1886년 5월 23)는 라히프치히 전투를 목격하고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실증주의 역사학을 개발한다.

임종권 교수는 제국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제국은 보편성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국은 여러 민족국가가 하나로 통합되어 만든 나라다. 제국은 통합된 언어가 필요하고 이 언어를 보편어라고 한다. 제국을 만든 민족의 언어가 보편어가 되면 다른 민족의 언어는 없어진다. 역사도 마찬가지가 된다. 제국을 만든 민족이 역사를 쓰게 되면 그 민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의 역사들은 모두 열등한 것이 된다. 타민족의 역사는 왜곡되고 볼품없고 미개한 것으로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랑케는 왜곡된 역사로는 민족의 단결과 민족정신을 고취할 수 없으므로 “사료에 근거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복원해서 국민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즉 강대국들이 왜곡하여 서술한 역사 자료와 남겨진 많은 문헌 중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철저하게 가려내어 이것을 바탕으로 민족의 역사를 서술한 것을 실증주의 역사학이라고 한다. 랑케의 실증주의는 방법론에서 실증사학이고, 사관은 민족주의가 된다.

 

임종권 교수는 우리 역사학계가 올바른 실증주의 사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유를 알려면 랑케의 역사학이 일본에서 어떻게 변형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변형한 역사학을 우리가 그대로 배우고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랑케의 제자 리스에 의해서 실증주의를 수용했다. “일본이 랑케의 실증주의를 수용한 이유는 서양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자 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 랑케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실증주의를 배우게 된 일본 역사학자 시게노 야스쓰구와 구메 구니타게는 천왕도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신도 중앙회는 이들을 도쿄제국대학에서 축출하고 일본의 역사학계를 장악했다. 임종권 교수는 “한마디로 일본의 근대 역사학은 객관성이 결여된 실증주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천황제 중심의 제국주의 정치적 이념에 의해 지배를 받은 역사학, 이것이 곧 식민사학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식민사관이 조선사편수회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식민사학은 실증주의로 위장한 제국주의 황국사관...

임종권 교수는 식민사학을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면 “랑케 실증주의 방법론과 제국주의 정치적 이념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식민사학의 선구자들은 도쿄제국대학 시라토리 구라기치(白鳥庫吉) 교토제국대학 나이토 고난(內藤湖南)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등 동양사학자들이다. 이들은 만철조사부, 조선사편수회가 조선과 만주, 중국 등 동양사학 연구에 집중하는데, 연구 목적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고 강자이며 문화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우수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정당화 시키는데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동양사 연구를 통해 조선 식민통치와 중국 등 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 한다. 일본의 동양사학자들은 랑케의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앞세워 제국 정책에 동조하도록 가교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의 동양사 연구가 곧 조선 식민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한 역사적 기초가 되었다. 결국 “일제의 리스 제자들은 랑케 실증주의 역사학을 이해 못하고 실증적인 방법만을 수용한 것”이다.

랑케의 실증주의를 식민사관으로 만든 것은 유럽 유학파 역사가들( 교토제국대학 학파)라고 한다.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는 일본의 역사가 조선, 인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유럽의 보편적 세계사 질서(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법칙)를 수용하였다. 사카구치 다카시(坂口昻)는 유럽에서 유학 독일의 속령인 폴란드 국사 교육을 모방하여 랑케 사학을 조선통치에 적용하면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랑케 사학을 식민통치 수단으로 활용한다. 즉 독일이 폴란드에서 독일어 교육을 통한 독일 국민화를 추진한 것을 조선에서 일본어 교육을 통한 한반도 내선일체의 정책에 적용한 것이다.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하여 ‘다문화적 세계상’을 통해 내선일체 정책에 연결시키고 나아가 대동아공영 같은 동양의 통일을 합리화했다는 것이 임종권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일제 역사가들은 랑케 실증주의를 앞세워 역사의 진보개념에 초점을 두고 일본의 패권과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이념을 결합시켜 일본식 실증주의 역사학을 만들었다.”고 한다. 랑케의 실증주의와 일제의 식민주의를 비교해 보면 어떻게 일제가 랑케의 실증주의를 변형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날 임종권교수는 일제가 말하는 실증주의사관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침략사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랑케의 방법론은 문헌비평과 고증, 사관은 민족주의, 역사관점은 민족역사의 개별성과 특수성. 세계사적 역사관은 민족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통한 세계사적 보편성 이해에 초점을 둔다. 즉 개별 역사를 알아야 세계역사를 알 수 있으며 그래야 인류 공통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면 민족 국가의 개별성과 특수성이 역사기록에서 제외되거나 혹은 열등한 문화를 지닌 민족으로 왜곡된다.

랑케는 개별적 민족국가들은 상호 연합하고 결속하여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이루어 세계사적 보편성을 확립해야 하며, 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족역사와 문화의 우열을 배척하고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을 강조한다. 랑케는 민족의 개별과 특수성을 강조하고 민족의 역사를 문헌비평과 고증을 통해 “있는 그대로” 의 역사 서술을 본질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제의 실증주의 방법론은 다르다. 방법론은 고증과 문헌비평, 사관은 국수주의적 제국주의, 역사관점은 민족의 보편성과 진보, 세계사적 역사관은 보편성을 통한 민족역사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이해하고 이를 계속 재생산해 나갔다는 것이다. 즉 랑케의 주장과 거꾸로 세계사의 역사를 알아야 개별국가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 보편적 역사관이다. 일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은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인식하고 역사와 문화의 우열을 중시했으며 보편적 세계사를 지향하여 민족의 통합, 내선일체, 대동아공영 정책을 꾀했다는 것이다.

시라토리(白鳥庫吉), 제국주의 침략사관에 기초한 식민사학의 거두...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을 이와 같이 변형한 사람은 와세다 대학의 스즈키 시게타(鈴 木成高)라고 한다. 그는 랑케에게서 민족주의와 민족의 개별성 및 특수성을 제거하고 세계의 보편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틀에서 시라토리(白鳥庫吉)의 동양사는 보편주의적 역사관을 통해 일제의 패권을 정당화시켜 나가게 되었고 이 산물이 바로 식민주의 사학이고 한다. 이러한 관점이 식민사학의 출발이고 우리 역사학에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역사는 사회적 변화를 보편적 기준에 맞춰, 질서 정연한 설명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에 역사학자들은 문화주의 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으로 역사 전체를 정리하였다. 문화는 교류되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 식민사학자들은 문화의 보편성에 주목한다. 즉 문화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식민주의 본래 의미를 감출 수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게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증사학 밑에 문화주의라고 하는 보편적 개념을 넣는 이유다. 그래서 실증은 방법론일 뿐이고 사관으로 말하자면 문화주의 사학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병도, 이상백, 김상기 등은 문화주의 사학의 범주에 든다고 한다. “일제시기에 유학한 한국 역사학자들은 문화주의 사학에 대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이 문화주의 사학은 사회와 경제를 총체적 문화범주에 포함시키고 문물제도로 설명하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 패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식민사관의 이론으로 활용한 세계사의 보편성은 한국 실증주의 사학자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실증주의 역사가는 각 민족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보편적인 세계사 속에 포함시켜 우리 역사를 객관화시켰다. 보편적 세계사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면 열등하고 발전하지 못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실증주의 역사는 곧 일제가 변형한 일본식 실증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임종권 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말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쳤다. “하버마스는 ‘실증주의는 객관성의 주장 뒤에 숨은 채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는 과학적 역사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객관주의는 규칙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자기만족 속의 세계를 과학으로 포장한다.’라고 한 말은 오늘 우리 한국 실증주의 사학의 실체를 잘 지적해주고 있다.”

질의 시간에 “랑케는 민족의 통합을 위해서 역사를 사용했다는데, 우리 민족을 통합시킬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임종권 교수는 “민족의 통합은 민족정신에 있다. 민족정신은 곧 역사다. 올바른 역사가 우리 민족을 결속시킬 것“이라고 했다.

11월 30일(수)부터 바른역사아카데미는 ‘분단을 넘어서 통일로’란 주제로 강연이 시작된다. 첫 강연은 ‘분단을 말하다-남북한 정권 수립과정’이란 제목으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강연할 예정이다.

11월 30일 강좌부터는 장소가 서울교육대학교 에듀웰센터 2층 컨벤션홀로 바뀐다. 12월 21일까지 강연이 이곳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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