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원 사료가 말하는 조선(단군)은 대륙을 말한다.

 

조선의 강역을 일러주는 중국의 가장 이른 사료인,

<사기> '흉노열전'에서 연나라가 동호를 쳐서 1천리를 빼앗았다고 한다.

그리고 5개군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모두 북경주변이다.

동호를 조선이라고 할 때,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조선의 땅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2) 연장성의 동단은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이다.

앞에서 살펴본 사료 A-1의 『사기』「흉노열전」에 의하면 연나라 장성은 조양에서 양평까지 이어졌다. 이 연나라 장성에 대하여 주석한 것이 아래의 사료 B-1이다. 연장성의 서단인 조양은 『사기집해』에서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인 위소(? ~ 273)의 말을 인용하여 “(조양은) 지명으로 상곡에 있다.”고 하였다. 또 연장성의 동단인 양평은 『사기색은』에서 위소의 말을 인용하여 “(양평은) 지금 요동군의 치소이다.”라고 하였다.

B-1
『사기집해』: 위소는 말하기를 “(조양은) 지명으로 상곡에 있다.” 하였다. 『사기색은』: 위소는 말하기를 “(양평은) 지금 요동군의 치소이다.” 하였다. 集解韋昭曰:「(造陽)地名,在上谷.」. 索隠韋昭云:「(襄平)今遼東所理也.」 『史記』卷一百十, 匈奴列傳第五十

B-2
상곡군 : 진나라가 설치했다. 낙양 동북쪽 3,200리이다. 요서군 : 진나라가 설치했다. 낙양 동북쪽 3,300리이다. 요동군 : 진나라가 설치했다. 낙양 동북쪽 3,600리이다. 上谷郡(秦置. 雒陽東北三千二百里.) 遼西郡(秦置. 雒陽東北三千三百里.) 遼東郡(秦置. 雒陽東北三千六百里.) 『後漢書』志第二十三, 郡國五, 右幽州

B-3 처음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평정하고, 소공 석을 연나라에 봉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자, 그 땅을 어양‧상곡‧우북평‧요서‧요동 5군으로 삼았다. 初武王定殷, 封召公奭於燕, 及秦滅燕, 以其地為漁陽上谷右北平遼西遼東五郡. 『通典』卷一百七十八, 州郡八, 古冀州上


연장성의 서단인 조양의 위치는 현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일대로 학계의 이론이 없다. 연장성의 동단인 양평의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연장성의 동단은 한민족 상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요동군의 치소였으므로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양평의 위치를 찾기 위하여 사료 A-1 의 『사기』「흉노열전」 기록을 다시 보자.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를 1천여 리 물리치고 그 자리에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 연5군을 설치하였다. 상곡군과 요동군이 1천여 리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곡군은 현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일대이므로 이곳에서 동쪽으로 1천여 리는 하북성과 요령성의 경계인 칠로도산七老圖山까지이다. 그러므로 연나라 요동군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위치하였다(아래 <그림 1> 참조) .

▲ <그림 1> 연장성과 만번한의 위치.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호와 조선을 구분하여 쓰고 있다. 이들은 과연 다른 족속인가, 아니면 같은 족속인가, 지나인들은 고구려도 동호라고 하고 있다.

 

또 사료 B-2에서 보는바와 같이 『후한서』「군국지」에 의하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상곡군 치소까지의 거리가 3,200리 이고,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요동군 치소까지의 거리는 3,600리로 나온다. 그러므로 상곡군 치소인 저양현에서 요동군 치소인 양평까지는 400여리의 거리이다. 저양현은 현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회래현이므로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400여리는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이다. 따라서 연장성의 동단인 양평은 천진시 계현 일대로 비정된다. 그리고 당시의 요하는 조백하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장성은 조양에서 양평까지 이어졌는데, 현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일대에서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까지 이르는 장성이다. 이 장성은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연장성은 연5군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성이므로 연5군은 모두 연장성의 안쪽에 위치하였다.

서기 1177년 중국 남송시대 제작된 고지도인 『기주협우갈석도』에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위치했던 연5군의 위치가 잘 나타나 있다. 연5군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최초의 지도이다. 이를 토대로 연장성과 연5군의 위치를 현대지도에 해석해보았다. 『기주협우갈석도』는 왼쪽으로 90도 회전하여 북쪽이 위로 가도록 한 후 보아야 필자가 현대지도에 옮긴 것과 방향이 같아진다.

 ▲  <그림 2> 『기주협우갈석도』를 현대지도에 해석한 지도

그런데 오늘날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연장성의 동단인 양평의 위치를 현 중국 요령성 요양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곳은 상곡군(하북성 장가구시 일대)으로부터 2천여 리나 멀리 떨어진 곳이다. 『사기』「흉노열전」(사료 A-1)의 1천여 리 기록이나 『후한서』「군국지」의 거리 기록과 전혀 맞지 않다. 강단사학계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요동의 위치를 현 요동반도로 고정시켜 놓고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동은 한민족과 지나족의 부침에 따라 여러 번 그 위치의 변동이 있었다. 연‧진시대의 요동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었다.

3. 고조선의 진번․조선지역과 연5군은 동일한 지역이다.

앞에서 진개의 침략 관련 기록이 모두 동일한 사건임을 살펴보았다. 『사기』「흉노열전」(사료 A-1)에서는 ‘진개가 동호를 1천여 리 물리치고 그곳에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의 연5군을 설치했다’고 하였다. 또 『사기』「조선열전」(사료 A-2)에서는 ‘(진개가) 고조선의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고 하였다. 이들이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므로 연나라가 고조선을 공격하여 진번과 조선지역을 차지하고 그곳에 연5군을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지역에 상곡‧어양‧우북평‧요서군이 설치되었고, 진번지역에는 요동군이 설치되었다.

고조선의 진번과 조선지역이 연5군과 동일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전성기 때 연나라는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일대를 모두 차지하였으나, 연나라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연 소왕 사후에는 조나라와 진나라 등에게 산서성 지역을 모두 빼앗기고 강역이 하북성 일대로 줄어들었다. 『통전』(사료 B-3)의 기록에 의하면 BC 222년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그 지역에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 5군을 설치하였다. 멸망하기 직전의 연나라 땅은 BC 300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으로부터 빼앗은 진번‧조선지역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고조선의 진번‧조선지역은 멸망 직전의 연나라 강역과 동일한 지역이었다.

여기서 진번과 조선지역의 변천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사기』「조선열전」과 『통전』등의 기록에 의하면 BC 300년경 연나라가 전성기 때 고조선을 침략하여 진번․조선지역을 차지하였고, BC 222년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그 지역에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 5군을 설치하였으며, BC 194년경 위만조선이 팽창하면서 진번․조선지역을 모두 회복하였다. 그리고 BC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평정한 후 조선지역에는 낙랑군을 설치하고, 진번지역에는 진번군을 설치하였다.

이를 통하여 고조선의 진번․조선지역이 연5군으로 되었다가 위만조선이 다시 수복하였고, 훗날 한나라 낙랑군과 진번군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나라 낙랑군과 진번군은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 연5군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연5군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위치하였으므로 고조선의 진번․조선지역이나 한사군도 모두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

지금까지 강단과 재야를 막론하고 한나라 낙랑군 등 한사군을 요동군의 동쪽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는 『사기』「조선열전」에서 한나라 군사들이 요동군을 나와서 동쪽으로 위만조선을 공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한나라 요동군은 연‧진 시대의 요동군이 아니라 산서성 지역으로 이치된 요동군이었다(필자의 저서 『고조선으로 가는 길』 ‘제3장 고대의 요동은 하북성 지역이다’ 참조). 요동군의 지명은 여러 번 옮겨졌는데, 항상 같은 곳으로 보고 역사를 해석하면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사기』「흉노열전」과 『사기』「조선열전」및『위략』등의 기록을 통하여 BC 300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진번‧조선지역을 차지하고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 등 연5군을 설치하였으며, 그곳을 지키기 위하여 연장성을 쌓은 사실을 살펴보았다. 연장성의 서단은 조양으로 현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일대이며, 연장성의 동단은 양평으로 현 중국 하북성 천진시 계현 일대였다.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빼앗긴 진번‧조선지역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으로, 연5군과 동일한 지역이며, 멸망 직전의 연나라 강역과 동일한 지역이었다. 진말‧한초에 고조선이 진번‧조선지역을 다시 회복하였으며, BC 195년경 위만조선이 들어서면서 진번‧조선지역을 계승하였다. 이때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은 태행산맥에 위치한 요동고새였다. 그리고 BC 108년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평정하고 조선지역에는 낙랑군을 설치하고 진번지역에는 진번군을 설치하였다.

태행산맥과 칠로도산 사이에 위치한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은 고조선의 중심지인 진번‧조선지역으로 BC 300년경에서 BC 108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조선과 중국왕조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혈전을 벌인 대륙 경영의 요충지였다.  <다음회 계속>

 

글: 김봉렬 <고조선으로 가는 길>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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