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장고형무덤(전방후원분)의 원조는 어디인가?

 

임나일본부설의 ‘임나’가 우리나라 남부지방이라고 하는 권오영 교수...

권오영 교수, ‘고대일본역사’가 우리민족의 일본열도 이주역사라고 인정하면서,

장고형무덤은 일본이 원조라고 하여 앞뒤 모순된 주장 펼쳐...

 

한국고대사학회 주도로 서기2016년 3월부터 한성백제박물관(이인숙 관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대사시민강좌가 종반을 치닫고 있다. 상당히 전문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평소에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에게 갈증을 풀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민강좌가 일본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베끼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고대시민강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백제와 우리와의 고대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나일본부설에서는 임나의 위치를 어디로 볼 것이냐가 핵심인데, 시민강좌에 나선 관련학자들이 하나같이 임나를 우리나라 남부로 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제7회 강사로 나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권 교수는 임나를 크게 볼 때는 우리나라 남부이고 좁게 볼 때는 경남 고령이나 김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재 일본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신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전방후원분(장고형무덤)’의 원조가 일본이라고 하여 일본 극우학자들과 견해를 같이하였다. 권 교수는 가장 오래된 장고형무덤이 일본 나라 현의 하시하카 고분이라고 하였다. 출현 시기는 3세기 중후반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무덤의 주인은 히미코(비미호)라고 하며 일본의 여자무당이라고 하였다.

▲ 전남 영산강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는 장고형무덤(전방후원분)의 전형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이러한 무덤 양식이 일본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 남부로 퍼졌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부장품은 왜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무덤군은 원형이 우리나라 충청남도, 전라남북도에서 여러개 발견되었고, 일본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어 권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평이다.

권 교수는 이들 무덤에서 출토되는 이른바 ‘하니와’ 토기에 주목하면서 이것이 일본 고유의 왜계유물로 보았다. 영산강 유역이나 충청도 지역에서도 하니와형 토기가 출토되는 데 이것을 왜계유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장고형무덤은 6세기 까지 진행되었으며 무덤의 주인은 그 지역의 지배층의 것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반드시 장고형무덤이 아니더라도 전남 지역 뿐만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 왜색을 풍기는 무덤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충남 공주, 부여의 횡혈식묘제도 일본 것으로 보고 충북 청주의 신봉동 목곽묘에서 나온 유물도 일본산 유물(스에키)라고 주장하였다.

권 교수는 일본에서 내세우는 ‘신 임나일본부설’의 또 다른 근거도 소개하였다. 판갑이다. 판갑은 통으로 된 철갑옷이다. 윗도리에 해당한다. 일본 열도 전역에 걸쳐 출토되고 있고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권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 판갑을 가지고 야마토정권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증거라고 한다고 하였다. 권 교수는 이에 편승하여 전남 고흥의 야막고분과 신안 배널리고분이 왜계 무덤구조라며 여기에서 나온 판갑이 일본에서 제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판갑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파견된 무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일본인이 이 무덤들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대에 우리나라와 일본열도에는 수많은 정치제(소국들)가 있다고 전제하고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때로는 대립하고 연합하면서 성장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권 교수는 근대의 민족주의가 자리 잡을 공간은 없다고 하면서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한일관계사를 보자고 하였다.

▲일본열도내의 장고형무덤 분포지도다. 일본열도 거의 전역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있다. 권교수는 이 무덤들을 일본인학자들의 주장을 쫓아, '고분시대'라고 하며 서기3세기부터 서기6세기까지 이어진 문화라고 하였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큰 무덤은 인덕'천황' 장고형무덤인데, 그 안에서 백제무녕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똑 같은 이른바 '환두대도'와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권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일본열도는 6세기에 이르러서야 야마도 정권을 중심으로 하나의 정치체로 통합된다. 그 전에는 여러 개의 소국들이 서로 주도권을 쥐고자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야마토 정권은 오늘날 나라, 오사카 지방에 위치한 것으로 나온다. 구주지방에서는 야마토 정권과는 다른 정치체가 있었다. 그런데 권 교수는 그 전에 이미 통일된 정치체를 전제로 한 야마토 정권이 우리나라 남부를 지배했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상 옹호하고 있다. 철기생산 능력과 관련해서도 일본은 당시 5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철을 다루었다고 하면서 전남지역의 무덤에서 나오는 판갑을 일본에서 생산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4세경의 영산강유역의 무덤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무덤에서 나온 철제무기들일 수밖에 없는데도 5세기 중반이후에나 철기를 다룬 일본 것이라는 것이다. 앞뒤 모순되는 주장이다.

권 교수는 백제, 신라, 가야 사람들이 열도로 건너가서 야마토 정권이 있던 지역은 물론 열도 전역에 걸쳐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 세력들이 살았던 지역에서는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시루다. 일본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계체‘천황’이라고 한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온통 백제세력이고 ‘시루’ 가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 교수는 백제인 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주장대로 일본‘천황’으로 남기를 바랐다.

▲ 일본은 결코 임나일본부설을 포기 하지 않았다. 일본의 공식견해를 담고 있는 일본의 교과서에는 위와 같이 6세기 전반까지 우리나라 남부를 일본이 식민기관,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식민지배를 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은 임나의 위치인데, 권 교수는 일본 극우파 식민사학자들과 같이 임나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이고, 고령과 김해라고 하였다. 일본은 장고형무덤과 판으로 된 갑옷을 근거로 야마토 왜 정권이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 교수는 강의 시작 전에 ‘악질적인’, ‘고약한’ 말을 써 가며 일제식민사관을 비판하였다. 우리나라 북부는 위만조선과 이어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있었고,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하는 식민주의 사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 강의에 들어가서는 사실상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질문시간에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다고 보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였다. 임나일본부설에서 말하는 임나는 어디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 남부이며 구체적으로는 고령과 김해라고 하였다. 또한 일본의 대형 장고형무덤의 처음 주인공이 히미코인데 여왕인 무당이라고 하였다. 1차사료와 모든 정황을 보더라도 백제 또는 가야의 무당일 수밖에 없는데 일본무당이라고 단정한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야마토 왜 지역 등 핵심지역을 사실상 다 덮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 것을 단순히 현재의 ‘차이나타운’ 정도로 보아 ‘코리아타운’ 수준으로 평가하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야마토 정권자체가 백제의 지방정권일 수밖에 없는데도 권 교수는 백제와 야마토왜정권을 국가와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 권오영 교수는 이 날 강연에서 일제식민사학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면서도 반도역사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륙으로, 해양으로 나갈 수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탈리아나 그리스도 반도국가인데 크게 뻗어 나갔다고 하였다. 그리스는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정복역사가 있고,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권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런 역사 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 대륙의 역사는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이날도 비평문을 방청객에게 나눠 주었다. 한 방청객은 시민강좌가 어떻냐는 질문에 ‘깝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도에서만 피동적으로 진행된 역사를 말하니 답답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평문은 어떻냐고 하니까, 시민강좌와 비평문 둘 다 헷갈린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은 동양사학을 전공했는데 비평문에 대하여 물어보면 ‘그런 게 어디 있냐, 단군조선이 역사냐, 근거 있냐 하나도 없는데 인정할 수 있냐’고 한다는 것이다. 또 한 방청객은 권 교수의 강의를 다른 곳에서도 들었는데 같은 내용인데도 그 전과 정반대의 강의를 하는 것 같다며 이상하게 여겼다. 권 교수가 이날은 식민사관에 기울어져 강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 시민강좌를 주최하는 주최 측의 요구에 맞게 강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 날도 많은 방청객이 비평문을 받으면서 ‘고맙다’, ‘이 재미로 온다’, ‘지난번 것 못 받았는데 있냐’,‘바른 역사 강좌는 내년에도 하냐’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 날은 주최 측의 실무대표인 경희대 조인성 교수에게도 비평문을 건넸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기쁘게 받았다. 다음 강좌는 홍익대학의 김태식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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