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를 빼닮은 돈황석굴벽화의 정체는?

 

우리고유문화를 밖에서 왔다고 보는 박아림 교수...

그러나 세상의 모든 벽화기법이 나오고,

다양성, 화려함, 세밀함, 역동성 등 모든 면에서 고구려벽화가 탁월...

백라관, 삼족빙궤, 주미를 한 고구려 복색이 요서와 중원에도 보이는 이유는?...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고대사시민강좌 다섯 번째 강의가 서기2016.10.12.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강의는 숙명여대 회화과.미술사학과 박아림 교수가 맡았다. 박교수는 고구려고분 벽화를 통해서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고구려벽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박교수는 벽화의 기법과 기원을 소개하였다. 벽화를 그리는 기술적인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벽 바탕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이른바 선사시대 동굴벽화가 대표적이다. 이것을 조벽지법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는 모래, 점토, 섬유질을 소석회에 섞어서 반죽한, 회반죽을 벽에 칠하고 마르기전에 그리는 습지벽화법과, 마른 뒤에 그리는 건지벽화법이다. 이것을 화장지법이라고 한다. 박교수는 이어 죽은 사람을 위해 묘안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벽화의 기원을 찾았다. 고대이집트 고분,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고분, 그리고 중국 전국시대의 호남성 장사지역고분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전한시대의 하남성 영성 망탕산 벽화묘가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벽화 중에 초기와 중기에 나오는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그림은 후한에서 찾았다.

▲ 숙명여대 박아림 교수는 이날 고대사시민강좌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이미 왜구난동기에 왜구가 선점하여 모사해 갔음을 밝혔다. 광개토태왕비문을 변조하였다는 혐의까지 받는 왜구가 고구려 벽화조차도 변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왜구는 일제식민사관을 완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수집하였다.

 

조선(단군)시대 부터 이어져 오는 시루음식문화, 고구려 벽화에도 보여...

고구려 벽화는 그림으로 나타낸 역사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문화사적 측면에서 주목을 끈다. 음식문화, 주거문화, 복식문화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는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문헌사료가 통상적으로 정치사를 보여 준다면, 벽화 등 실물자료는 당시의 문물수준을 직접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박교수는 고구려 벽화에 불교문화 중앙아시아문화, 북방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 박교수는 고구려 고분의 구조와 형태 그리고 벽에 그려진 벽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주식이 곡물이라고 하였다. 조와 콩, 밀, 보리, 수수, 기장 등을 먹었다고 하였다. 집안지역에서는 콩,보리, 조, 기장이 발견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여인이 길쌈하거나 부엌일 등 집안일을 하는 벽화에서는 고구려의 농경국가적 면모를 찾았다. 안악3호분에는 부엌그림에 초점을 맞추어 어슬렁거리는 개의 모습, 고깃간에는 갈고리에 돼지 등이 걸려 있는 것을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서 고구려는 육식으로 소, 돼지, 개, 멧돼지,노루, 꿩 등을 먹었다고 하였다. 특히 안악3호분의 부엌 그림에 시루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박교수는 무용총에 나오는 검은 옷에 삭발한 사람을 불교의 승려로 풀이하였다. 이날 박교수는 안악3호분의 주인공의 복색이 북한지역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 요령성 요양의 상왕가촌의 벽화분, 요령성의 조양 원대자벽화분, 하북성 안평의 녹가장변화분에서도 발견된다고 하였다. 박교수는 요령성의 벽화분은 중국의 위나라와 진나라 것으로 보았다. 하북성 안평의 벽화분은 동한의 것으로 보았다. 이 벽화들의 주인공들의 복색은 공통적으로 백라관을 쓰고 삼족빙궤와 주미를 하고 있다.

한편 박교수는 고구려 중기까지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였으나 후대로 갈수록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상의 정신세계를 주제로 하는 벽화가 주를 이룬다고 하였다.

▲ 고구려 벽화와 너무나 닮은 벽화가 중국 서쪽 끝자락 돈황석굴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위 사진은 돈황 석굴에 그려진 벽화다. 고구려 복색을 한 사람, 고구려의 배사장면과 같은 그림, 신단수 아래서 활을 쏘려는 사람 등 고구려 자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고구려 색으로 가득하다.  천정구조 조차도 고구려 것과 동일하게 그려 놓았다. 박아림 교수는 이것을 교류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에 고구려가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찰갑으로 무장한 군사가 그림으로 무수히 남아 역사로 전해오고 있음을 볼 때, 중국 서역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날 박교수는 고구려 벽화와 중국 서쪽에 위치한 감숙성의 둔황 석굴 벽화가 빼 닮아 있는 것도 소개하였다. 말을 타고 뒤돌아 활을 쏘는 배사법, 신단수에 새가 올라있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삼각형의 불꽃무늬 등 고구려 벽화와 둔황 석굴 벽화가 같은 것이 많았다. 박교수는 이것을 교류의 산물이라고 풀이하였다. 배사법의 기원에 관해서는 ‘파르티안 샷’이라고도 하며 이는 이란지방을 말하는데 배사법을 연구한 한 전문가에 의하면 스키타이족이라고 하나 더 기원을 올라가면 킴메르족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유목민족이라고 하였다.

 

배사법의 기원은 어디인가...

이날 박교수의 강의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고구려 벽화의 공간적 범위가 일제가 주장하는 반도사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일대와 만주 집안과 환인지역에 머물렀다. 요동지역과 요서 그리고 그 서쪽은 고구려의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전제로 강의를 하였다. 따라서 그 지역에서 나오는 벽화가 한땅과 만주 지역에서 나오는 벽화와 동일해도 문화교류의 산물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벽화기법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밝혀진 모든 기법이 다 적용되고 있다 더구나 벽화의 다양함과 정교함 그리고 화려함 등에서도 중국 한나라나 기타 어느 나라보다 탁월하고 우수하다. 그런데도 단지 고대 이집트나, 이탈리아 그리고 한나라 등 보다 늦게 나온다고 하여 벽화의 기원을 외래기원설로 정리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날 질문 시간에는 의자생활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벽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청객이 있었다. 우리문화는 바닥에 앉은 것이 전통인데, 고구려 벽화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니 그 주인공이 중국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박교수는 고구려식 복색을 하고 있어 고구려인이라고 하여 확실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비평문 읽은 재미로 강좌온다..

이번에도 앞주 강의를 평가한 비평문에 대한 방청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비평문이 너무 재미있어 비평문을 보는 재미로 시민강좌에 나온다고 하는 여성시민도 있었다. 어떤 방청객은 비평문에 대하여 건설적인 대안도 제시하였다. 감정적인 비난성 문구를 안 써도 시민들이 다 이해하니까, 좀 더 객관적으로 써주었으면 하였다. 방청객중에서는 시민강좌 주최측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감정적인 용어를 쓰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번에 결석하여 못 받았는데 다음 주에 갖다 줄 수 있느냐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강좌는 날씨 탓인지 지난번 보다 방청객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다음 강의는 ‘임나일본부의 허상과 가야제국’으로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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