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든 중국동북공정 추종하는 역사지도집과 같은 식민사관, 버젓이 퍼뜨려...

기사수정: 서기2016.10.06. 19:27

 

 

한성백제박물관 김기섭과장, 중국동북공정주장...

김과장, '백제가 요성, 진평을 차지했다는 역사는 믿을 수 없다' 고 주장...

'백제는 다문화 국가,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고 하는 김과장...

 

한국고대사학회가 주관하는 고대사 시민강좌 하반기 4번째 강좌가 서기2016.10.5.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 강좌는 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기획과장이 맡았다. 김과장은 ‘백제는 해외식민지를 경영하였을까?’를 주제로 강연하였다. 김과장은 먼저 역사의 기능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수학이나 기타 학문은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역사는 공동체의 이익을 촉구하는 면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논두렁 비유를 들어 좌로 물꼬를 틀면 이순신 같은 인물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틀면 이완용 같은 인물이 나온다고 하였다. 또한 역사는 과거에는 왕이나 지배자만 배우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역사를 통해서 정치를 배우고 다스림의 교훈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피지배자인 백성이나 노예, 종 들은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굳이 역사를 배우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여기 역사를 들으러 온 시민들은 이런 측면에서 왕이라고 하였다.

▲ 한성백제박물관 김기섭 전시기획과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지도를 기정 사실화 하면서, 백제의 요서 경략 역사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중국 전연이 서기4세기까지 현재 압록강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 중국동북공정지도. 고구려는 이에 끼여 들 틈이 없다. 고구려는 이때 까지 압록강 주변도 차지하지 못한 초라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논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이어 김과장은 본 강의주제와 관련하여 ‘식민지’라는 용어의 유래를 설명하였다. 식민지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기원하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일부 국민이 본국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 이주해서 만든 도시를 '콜로니아colonia' 라고 했는데 이 후 서양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이 용어가 통용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은 이것을 자신의 정복지에 대한 용어로 적용하였고 한자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식민지植民地’로 번역을 했다. 그러나 동양의 역사는 서양의 이러한 식민지 개념이 적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중화주의 세계관에 따라 중국을 중심으로 책봉, 조공관계로 하는 국제질서로 이어진 역사라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 따라 선진기술문화를 바탕으로 동아시아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국제질서였다는 것이다. 서양처럼 수탈이나 이주를 전제로 한 식민지와는 크게 다른 개념이라고 하였다.

▲ 김기섭 과장은 중국 한나라가 조선을 멸망하고 설치한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일제가 만들어낸 식민주의 사관이며, 중국이 이것을 이어 받아 장차 북한을 복속하기 위하여 동북공정핵심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부'는 이미 날조된  것임이 증명된바 있다.

이어 본격적으로 이 날의 강의 주제로 들어갔다. 요서를 차지한 왕으로 알려진 근초고왕이 등장하는 <삼국사기>는 백제 멸망 후 5백여 년이 지난 뒤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빠뜨린 것이 많고 잘못 적은 부분이 있어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국 측의 사료를 제시하였다. 먼저 중국 <송서>의 ‘이만전’과 <양서>에 나오는 백제의 요서, 진평 점령기사를 소개하였다.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 이라고 한다. 백제는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였다.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당시 요서에는 중국의 강국들이 존재해서 백제 요서경략설은 신빙성 없어...' 

그러나 김과장은 이 기록에 대하여 다른 중국의 사료와 비교하면서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들어 부정적으로 보았다.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고 군을 설치할 시기에 요서에는 중국의 강력한 나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연, 전진, 후연, 북연, 북위 등의 강력한 군사력를 보유한 나라들이 요서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백제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군을 설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전연의 인구는 990만이었고 군사는 30만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백제의 인구는 70~80만, 병력은 3~4만정도였다고 하였다. 이어 김과장은 중국 사서에 백제가 요서를 차지하였다고 써져 있는 것은 중국 남조국가들이 오해를 하여 잘못 기록한 것으로 몰아갔다. 당시 중국 북조계통의 역사서에는 백제가 요서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 것도 하나의 근거라고 하였다. 김과장은 한사군 재평양설을 전제로 낙랑군과 연결시켜 백제의 요서점령기록을 부정하였다.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어다'고 하는  김과장...

김과장은 '북한 평양에 있던 한나라의 식민기관 낙랑군이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요서지방으로 옮겨갔다', ' 백제의 근초고 왕이 황해도를 영역화하고 이어 평양도 차지하면서 평양 지역의 낙랑군 사람들과 요서로 옮겨간 낙랑군 사람들이 교류를 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이 중국 남쪽에 위치한 남조의 역사가들에게는 마치 백제가 요서지방을 점령하고 군을 설치한 것처럼 보였고 이것을 오해하여 사서에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백제의 요서진출을 설명하는 지도를 회의적으로 설명하였다. 아직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 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기획과장은 '우리나라 땅이 넓다고 하여 위대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늘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버젓이 이끌어온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김과장은 강의 내내 중국의 동북공정의 핵심을 담고 있는 중국 담기양이라는 사람이 만든 중국역사지도집을 활용하였다. 중국 측에서 자신들이 유리하게 만든 지도가 맞다는 것을 전제로 그 바탕위에서 관련 역사 사실을 적용하였다. 그리고 백제에 대하여는 아주 작은 나라이면서도 수많은 종족이 뒤 섞여 사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만들었다. 백제는 북쪽에서 내려온 예맥족과 한강유역에 먼저 터잡은 한족, 동해안의 옥저, 동예에서 온 귀순자들, 대동강 유역의 낙랑, 대방에서 온 중국계 백제인, 열도에서 온 왜인들로 구성된 다문화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출신의 인재들을 등용해서 기술과 문예를 발전시켰다고 하였다. 그리고 왜국은 백제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견하는 맹방이라고 하였다.

일본의 한국 재 병합과 영구분단을 사실상 옹호하는 김과장...

이 당시 동아시아는 백제가 동진-가야-신라-왜국의 남방국가연합을 구성하여 북쪽의 고구려-전연의 북방국가연합에 대응하는 체제였다고 하였다. 이는 식민사관을 비판했다고 하여 민족사학자를 고소한 고려대 전 교수, 김현구씨가 주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현구씨는 동아시아 체제를 일본과 중국으로 나누고 일본은 한국과 같이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 즉, 일본과 한국으로 한 축과 중국과 북한으로 한 축을 상정한 것이다. 이는 일본의 한국 재복속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는 한반도 영구분단과도 관련된다.

▲ 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과장은 백제가 대륙경영을 한 것으로 그린, 국사교과서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백제가 대륙을 경영한 것이라고 나오는 중국 정사는 자신의 이론으로 볼 때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강좌에도 질문을 받았다. ‘어째서 중국 동북공정지도를 띄워놓고 강의를 하느냐, 중국 동북공정의 중국역사지도집이 사실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과장은 일부 문제가 있기는 하나 이 지도집을 만든 중국의 담기양이라는 학자는 유명한 사람으로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김과장은 요서지방에 당시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가 요서지방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백제가 북위 수십만의 기마군단을 대파했다는 기록은 무엇이냐’고 따졌다. 또한 북한평양에 있었다는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중국 요서지방으로 이사 갔다고 하는 교치론을 주장하는데, <통전>에는 분명히 “(중국 하북성)갈석산에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 수성현이 있고, 장성이 일어나는 기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 이 날 한성백제박물관 이인숙 관장(사진 왼족에서 두번 째)은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기획과장 김기섭씨가 강의하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전국에 있는 국립박물관에는 수 많은 직원들이 있다. 보통 학예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식민사학이라고 비판 받는 강단주류사학계와 관련이 있고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박물관에서 경력을 쌓아 대학교수로 추천받아 나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날 강좌에서도 약 180장의 지난 강의 비평문을 돌렸다. 호응이 역시 좋았다. 1회, 2회 강좌비평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요청한 것을 이번에 나누어 주었다. 몇 장 더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번 강좌에서는 비평문을 받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평문을 읽으면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교양으로 들으려고 왔는데 그 교양내용이 비평문을 읽으면 다 거짓으로 되기 때문이라고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러니 끝나고 나갈 때 나누어주라고 하였다. 또 어떤 분은 견해는 다양하다면서 명백히 동북공정을 강의하고 있는데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강의는 10월 12일 수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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