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를 '통합,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살려줘선 안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치관의 혼란과,

끝없는 갈등과 분열은 탐욕스런 정치인들의 권력욕에서 나온것...

전두환, 노태우를 처단 했다면,

지금 끝없이 소모전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이런 나라는 아니었을 것...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심, 5.18광주항쟁이 갖는 헌법적, 세계사적인 의미는?

<5.18>은 전두환 일당의 국민집단학살에 대한 ‘초법적’ 자연권인 ‘저항권(抵抗權)’의 행사였다.

나는 ‘3.1 운동’과 함께 ‘5.18’을 ‘운동’으로 격하하는 표현 앞에 분연히 반대한다. <5․18>은 천부적 권리인 <저항권 행사>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그 숭고한 여정에서 헌신하신 분들과 희생자 및 가족들 앞에 고개 숙여 드리는 깊은 감사는 아무리 해가 거듭되고 세월이 강같이 멀리멀리 흐르더라도 결코 퇴색될 수도 퇴색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36주년 기념일을 맞아 후세를 사는 우리들은 “다시는 국민을 위한 군대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더더욱 국민을 집단학살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은 영원히 종식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야 할 날이다.

이 교훈 앞에서 ‘여야’, ‘보수·진보’, ‘영·호남’, ‘노·사’는 물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대할 이유를 찾을 수는 없어야 한다. <5.18 저항권 기념일>에 대한 ‘역사의식’ 또는 ‘역사관’이 이러한 방향으로 정립되어 왔더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현재와 같은 국론분열은 시작 자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함께 식사나 한번 하자”라는 말에 동의하여 모인 친구나 지인들이 밥상에 오르는 식단을 가지고 ‘다투는’ 일은 거의 없다. 모인 자리의 본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취향이 아니거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먹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모처럼 만난 뜻 깊은 자리에서 ‘식단’를 두고 갑론을박하다 모임이나 잔치를 망치는 행위는 무익하기 그지없는 일이지 않은가.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5.18>을 국가 법정 기념일로 제정하여 김대중 정부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 온 세월이 어언 10년이 넘었다면, 이미 국가의 관행적 의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굳이 ‘합창’으로 전환시켜 국론 분열을 유발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그 어떤 행사도 아닌 <5․18>기념식장에서 ‘임’의 정체성을 문제시하며 곡의 제창 여부를 두고 행사의 본의까지 훼손시키는 파행이 거듭되는 게 과연 역사 앞에 온당한가?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나 기념곡 지정을 반대한다면 모르겠다.

그 아픈 자리에 모여 바치는 ‘헌시’를 곡으로 읊조리는 이들의 가슴마다에 오롯이 피어나는 ‘임’을 왜 정부가 나서서 단정 지음으로 인해, 왜 하필 기념식을 앞두고 논란이 재점화 되어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는지 알 수 없다. 국민의 생명을 경홀히 여긴 것에 대한 천인공노할 범죄에 대해선 섣불리 ‘용서’의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되었다. 살인을 행한 일개 범죄자에게 베풀 수 있는 법의 아량에도 도가 있건만, 국민집단학살범을 너무 쉽게 방면한 것은 두고두고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긴 것이다.

▲ 5.18 광주민주화 항쟁은 현대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생민이 주인되는 민주화 투쟁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 5.18기념재단).


그 엄청난 범죄에 대해 끝까지 정죄하여 제대로 본이 되도록 하였다면 2016년에 이른 이 시점에까지 <5․18>기념행사의 역사적 의미와 기념식의 숭고함을 희석시킬 수도 있는 불필요한 논쟁거리가 번번이 똬리를 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선진대국 대열에 서있다는 대한민국이 ‘전임자 흔적 지우기’ 또는 ‘전임자와 반대로 하기’식의 행태가 중앙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여전해, 정치적 미성숙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불과 20여분 만에 끝나는 국가 법정기념일 행사. 질적 성숙이나 과정의 소중함을 도외시한 군사문화와 양적 성장 제일주의가 낳은 ‘빨리빨리’ 타성에 젖은 나라라 해도 이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그 저변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 싼 소모적인 국론 분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이기에 지도층이 사분오열되어 몇 년 째 이 난리인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위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 님이 1980년 12월에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 작가가 썼다 한다. 곡은 김종률이 1981년 5월 광주에 있는 황석영의 자택에서 만들어 국민 저변으로 확산된 뒤, 지금도 시위 현장의 ‘18번’ 같은 대표곡이 되어 있다.

이 노래 한곡에 지도층이 총체적으로 매달리며 국론분열을 획책할 만큼 대한민국은 한가한 나라인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맞으면 가정이든 국가든 온전하게 존립할 수 없다. 많은 국민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허울 좋은 경제 지표의 우산 아래서 OECD 국가들 중 행복지수 최저와 자살률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은 마약, 알콜, 인터넷, 도박 등 중첩적 중독 문화마저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호’의 항해 상황은 녹녹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총체적 위기’ 그 자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래 한 곡’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양산시키는 행위는 벌어진 환부에 치료약 대신 오염된 폐수를 퍼붓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위기를 뚫고 더 거대한 도약을 위한 발판마련에 전심전력해야 될 때에 소모적인 남남갈등이나 유발하는 지도층들과 이들에게 동조하는 일부 국민들이 눈여겨 볼 기사 하나가 있다.

<5.18> 저항권 행사 상황에서 ‘미국이 전두환 일당의 대국민집단학살작전을 방조’한 물증(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공식 외교 문서)을 공개한 기사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5&aid=0000899435

2016년 <5.18국가법정기념일> 행사의 중심에 선 ‘임을 위한 행진곡’!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 온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를 포함한 참석자들 대다수가 ‘함께’ 불렀다. 끝내 ‘합창’ 형식을 고집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제창’을 한 것이다.

이 정도면 국민주권론의 이론적 아버지인 장자크 루소(J.J. Rousseau)가 말한 일반의지(一般意志, general will)는 확인되었다. 주권자인 국민이 고용한 대변인들인 지도층은 지배적 다수의 국민생각(一般意思)을 겸허하게 받들어야 한다.

현 시점 대한민국과 헌법적 효력 범위인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극복하고 한반도가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심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장기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화 여정에서 희생되고 헌신하신 분들의 피와 눈물이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글: 홍원식 ( 통일헌법, 사단법인 피스코리아 상임대표),  출처: 수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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