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원왕조의 속국처럼 기록남당 박창화가 필사해 온 고구려 사료에는 반대로 돼 있어‘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시리즈의 저자인 정재수 작가『고구려사략』을 통해 광개토태왕릉비 결자탐구 및 새로운 해석「신묘년 기사」는 열도의 왜가 아닌 한반도 부여백제의 행위라는 새로운 해석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부여백제가 야마토 왜의 원류 『고구려사략』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왜정시기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왕실도서관(서릉부)에서 필사해 온 것이다.『삼국사기』의 약 8배 분량이다. 이러한 책이 환단고기와 마
글: 김상윤 (광주마당 고문) 백제 개국의 어머니, 소서노는 졸본의 연타발 자녀졸본은 현재 만주 요령성 조양이 유력하게 비정 돼졸본에서 우태와 소서노가 통정, 비류와 온조 낳아고구려 유리왕 때 비류와 온조와 고구려 삼분 통치비류백제 도읍은 미추홀, 온조백제 도읍은 우양우양은 현재 중국 요령성 요하 서쪽의 조양시로 비정 백제 건국신화 4-3-1남당(南堂) 박창화(1889-1962)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궁내성 도서료(圖書寮)에서 근무하면서, 일본 왕실도서관에 있는 고사 관련 책들을 필사해 왔다고 한다.김대문이 지었다는 도 그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1866 미국 상선이 공격하자 관찰사와 평양 관민이 격퇴1871 미국의 강화도 공격으로 패배했으나 끝까지 싸워이때 빼앗아간 군기는 회수돼 강화도 박물관에 다시 보관뒤이은 프랑스군의 공격도 막아내어 자신감 얻은 정부전국에 서양인을 서양인을 물리치겠다는 척화비를 세움 1. 1866년 침략자 미국 상선 격침1866년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가 민간인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그러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 휘하의 관민이
글: 오세훈(자유기고가) 리조선의 폭정을 제거하여 백성을 구하려 한 동학혁명폭정 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사즉생 봉기'우금치 전투'는 승패를 넘어서는 품격의 역사로 남아다나카 쇼조,“전봉준은 풍행 방정하고, 공명정대하며,종교를 통하여 근본적인 개혁하려 봉기”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궁극적 목표였다. 민비와 그 척족이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동안, 나라는 늘 풍전등화였고,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싸우던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그 존재 자체가 생존의 위협이었다.전봉준은
글: 이시종(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정치 경제 교육의 3 균주의 창시자 조소앙 선생 문집 재발간3 균주의 주장한 조소앙이 속한 한국독립당, 남한 총선에 불참남한만의 총선거는 남북분단으로 보고 남북연석회의 참석한독당 탈당한 인사들만 총선에 참여했어도 10명이 당선돼한국전쟁 중에 납북된 조소앙, 분단 40년이 넘어서 가치 인정 2021년 2월부터 시작된 의 출판작업을 마무리하고 오늘 출판기념식을 가졌다.1979년에 발간된 은 한국독립투쟁사와 해방공간을 공부하는 연구하는 분들이 많이 보아온 매우 중
동북지역과 화북지역의 4백만 한인, 광복군 배후한국광복군은 독립 국가를 대표하는 국군의 근간일본 사정에 정통하고 일본어 능통하여 역량 출중국내 진입 시 일제 교란 작전으로 전쟁 승리할 것미국군과 합세하면 일본군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이번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광복군의 활약상과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이제까지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국광복군의 구체적인 활약계획이 담겨있어 실제로 연합국과 함께 대일 참전이 이루어졌다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고 따라서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연합군으로 미군과 같이 여의도 비행장에 내린 광복군무장해제 않은 일본군의 방해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 가일왕의 패전방송 듣고 김구는 절망의 눈물로 미래 비관1945.11.23.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해방후 한반도에 급거 진입한 임정 광복군 대원, 그들은 하루만에 해방된 조국 땅을 떠야 했다> 1945년 8월 18일 오전 11시 장준하 등 광복군 정진대원 4명이 경성비행장(현 여의도공원)에 처음 닿을 때 사용했던 미군 수송기와 같은 모델이다.C-47 수송기는 아이젠하워가 2차대전 당시 연
국가보훈처,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군사작전 제안한 한국 광복군 자료 찾아제안 문건에는 한국 독립이 필요한 이유, 한국광복군의 임무한국광복군이 태평양전쟁에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앞으로 미국과 협상이 필요한 사항 등한국광복군의 참모장 이범석(1900~1972)이미국 연방정부에 전달하기 위해1942년 6월 3일에 작성한 10쪽 분량의 보고서 형식 문서 보훈처, ‘한국광복군의 대미(對美) 군사연대 제안 공식문건’ 최초 발굴·공개- 1942년 한국광복군 참모장 이범석이 작성한 보고서 문건으로 미(美)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의 조지 맥아피 맥
글: 류돈하(역사 연구가) 신기선의 손에서 단재 신채호, 왕산 허위 등 배출왕산 허위, 석주 이상룡 등 관중과 제갈량 버금가을사늑약 후 왕산 허위 등 의병 전쟁에 투신 활약왕산 허위 경기 연천서 13도 창의군 봉기 서울 진격왕산 허위 체포, 서기 1907.09.18. 사형선고 뒤 집행이완용, 왕산이 나라 체모를 욕보였다고 사형 독촉 한말에 이조판서, 군부대신, 법부대신을 지낸 양원 신기선(陽園 申箕善:1851~1909. 을사늑약 후 일본의 협박 때문에 친일파로 변절함)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산신씨로 영의정을 지낸 상촌 신흠의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문안식은 인명인 소서노를 집단이름으로 바꿔소서노를 소노부라고 하고 계루부와 경쟁 관계백제건국 서기전 18년을 서기 1세기로 깎아내려백제가 부여 씨라는 것은 국내는 물론중국 사료에도 보여, 부여 계승한 백제 증명 백제 건국신화 4-2백제 건국에 대한 문안식의 주장을 들어보자.- 소서노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압록강 중류 지역 집단인 나(那) 또는 노(奴)의 명칭일 가능성이 높다.졸본지역은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와 고구려를 세우기 이전부터 이미 비류수 주변의 여러 골짜기에 '나국'(那國)으로 불리는 소국들이 존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백제가 대륙 부여의 후예인 이유북부여 출신 고주몽에게서 온조와 비류 출생 설온조와 비류가 북부여 후손 우태에게서 나왔다는 설중국 사서에는 구태가 부여의 후손으로 백제 시조로 백제 건국신화 4-1백제는 왜 자신들이 부여를 잇고 있다고 했을까?는 비록 설화의 형태이기는 하나 백제 건국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백제 시조 온조왕은 그의 아버지가 추모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북부여로부터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더니 부여왕이 (중략) 둘째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다.그후 얼마 되지 않아서
국립중앙박물관,12월 3일부터 가야사 전시장 새롭게 개관 전시가야가 ‘낙랑’과 교류하였다고 하였는데 ‘낙랑’은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을 말하고 재평양 설의 식민사관바람개비, 통형 청동기 원산지를 왜의 것으로 둔갑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가운데 가야가 일본 야마토 왜의 식민지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일제는 ‘정한론’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정한론’의 근거가 소위 ‘임나일본부설’이다.이는 고대에 야마토 왜가 우리나라 남부 특히 가야지역을 서기 4세기 후반부터 2백년이 넘게 식민지배했다는 식민사관이다. 임나일본부설의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북방 초원에 대제국 건설한 흉노의 뿌리는 단군조선단군조선을 이은 부여의 시조, 동명은 북방제국의 뿌리흉노의 탱그리는 하늘의 아들로 무당 통치를 상징북방 선비족의 카한은 하늘 의미 뒤에 군주 칭호로 바뀜주몽은 활 잘 쏜다는 뜻으로 몽골 등 북방제국들이 계승백제는 부여를 이은 제국, 부여의 시조 동명과 맞닿아 백제 건국신화 3-2흉노의 군주는 선우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흉노전'에는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라는 군주 칭호가 나온다.흉노는 하늘을 탱리 즉 텡게리(Tenggeri)라고 했는데, 텡게리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치우는 중국의 시조 황제헌원과 탁록대전을 벌인 동이족치우 후예 묘족 귀주성에 정착, 치마에 3개 강을 건넌 표시중국 신화에 가장 용맹스럽게 나와 끈질기게 반란, 저항명 왕조 시기에도 반란, 이를 막고자 명은 장성을 세워중국 당국은 치우도 중국 조상이라고 중화삼조당에 모셔 중국 소수민족 신화 1-1(묘족신화)그동안 위앤커의 저술을 기본으로 중국신화를 살펴보았고, 유향의 과 갈홍의 을 중심으로 중국 신선들을 대충 알아본 셈이다.그러나 중국은 소수민족이 55개나 되니, 한족 중심의 신화만으로
어버이로 섬기던 명나라에 뇌물 주고 얻은 왕, 인조임금청나라를 오랑캐라 무시, 청 황제 즉위식에 인사도 안 해청 침공하자 36개 도주, 인조 총 4번에 걸쳐 도성 버려전쟁 패배 표시 삼전도비의 수난, 세우고 매장하길 되풀이국가가 저질러 놓고 피해자인 백성을 오랑캐 자식이라 비난 < 조선 인조 : 사대 명분에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식마저 죽여>1. 명분 핑계로 등장한 인조잠시 권력을 잃었던 서인 세력은 광해에게 반기를 들어 재집권에 성공했다. 무리한 궁궐공사, 동생 영창 살해, 인목대비 폐위, 명에 대한 배신 등이 명분이었다.인조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백제, 가야인들이 세운 일본,부모의 나라를 정복했다고 거꾸로 왜곡하여 가르침3백년간 백제, 가야 역사를 일본 역사로 둔갑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 신공황후에 복속됐다고 날조임진왜란과 일제의 정한론에 따른 조선 침략은허구의 를 사실로 믿고 실행했기 때문 신생국 일본의 탄생과 라는 새로운 역사의 편찬새로운 역사의 편찬697년 새로운 일본(日本)이라는 국가 수립에 따라 역사편찬도 이루어졌다. 720년경 가 만들어졌는데, 300년간 일본열도에서 있었던 백제와 가야
이범주(자유기고가) 간도특설대 창설,조선인이 먼저 건의했다고 하나 사실은 배후에 일제가 기획조선인은 철저한 신원조회와 보증인 2명 세우는 등 거쳐 뽑아부대 노래 속에 ‘야마토 혼이 우리를 고무, 천왕의 뜻 받들자’조선인에 매우 잔혹하고 악랄하게 대하고 구타와 욕설이 일상대한민국은박정희,정일권, 최규하 등 독립군 학살 간도특설대 출신이 장악 [간도 특설대]를 읽다.- 1930년대 초반부터 만주에서 일제에 대한 조선인들의 무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중국 당국이 공인한 옌볜의 항일열사 3,125명 가운데 조선인의 비율이 98%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부여의 개국신화, 하늘에서 계란 같은 기를 받고 시조 임신고구려 시조도 알에서 시작, 부여 이은 징표로 동명성왕부여 시조 동명, 활 잘 쏘는 자, 고구려 시조 주몽도 같아 백제 건국신화 3-1부여의 건국신화를 들여다보자. 탁리국(槖離國) 왕의 몸종이 임신했으므로 왕은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그런데 몸종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크기가 달걀만한 기가 하늘에서 나에게로 내려왔기 때문에 임신하게 되었다고 했다.(중략)왕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그를 거두어 기르도록 하고 그의 이름을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평택 역사 탐방 2수취체제 폐단이 부른 조선 백성의 참담한 생활상대동법으로 세금 부담 더하게 된 지주세력의 저항16세기 나왔으나 전면 실시는 2백년 뒤에 겨우 가능대동법 실시로 대기근에서 백성 굶어 죽는 것 막아새로운 직업과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상인의 번성 김육과 대동법대동법(大同法)은 동양 유교사회의 기본 세법인 조용조(租庸調) 중 농지세인 전세(田稅) 조(租), 즉 공납(貢納)을 쌀로 대신해서 납부하게 하자는 방안이었다.조(租), 즉 전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1결당 최하세율인 4두를
글: 박일문(종합격투기 체육관 관장) 625 전쟁 시 유엔군 서울탈환 오래 걸린 것 시가전 때문1960년대부터 지은 아파트에 군사 장비 장착하도록 설계북한이 쳐들어와도 이런 조건 때문에 이길 승산 거의 불가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나 교류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북한도 극단적 일인 독재 포기하고 집단 지도체제로 나가야 남북정상회담과 불면의 밤현대전은 도시 시가전이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같은 사막, 산악전이 한반도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71년 전, 조미 전쟁 시기 미제와 이남의 완패로 끝났지만, 건물이 없었던 대전 공방전에서도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