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수탈기지로 강제 개항시킨 목포할퀴고 간 흔적 곳곳에 남아 참상증언남아있는 적산가옥, 방공호 등비극 근대사 교훈으로 삼을 필요성 대두 단군기원 4352년 3월 23일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가 함께하는 국내 역사 탐방에 나섰다. 목포와 군산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목포와 군산 두 도시는 왜정치하에서 국내 대표적인 미곡 수탈 기지였다. 강제징용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여행단 일정은 1박 2일이었는데 첫째 날에는 해남 옥매광산, 목포 근대역사관 및 목포 중앙교회를 둘러봤다
글: 류돈하(역사연구가)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일왕신민 되라는 순종임금나라 팔아먹었지만 고종임금도 인정한 단군조선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제국 황실을 우대하겠다고 임시헌장에 명기국권회복 뒤 국회소집 계획도 임시헌장에 밝힘 1910년 경술년 8월 동방의 나라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일본왕 목인(睦仁:명치왕)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같은 해 8월 29일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 융희황제는 다음과 같은 조약문을 공표한다."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
“조선사람들이 두손 묶이운 채큰 나무에 매달려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일본병사가 앞과 뒤에서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습니다.목을 자르고는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곤 했습니다.” 서기2005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라는 기록영화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이 제작한 것이다. 약40분 분량이다. 일제침략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다.그 중에 조선인 강제연행 로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한 일제만행 장면이 나온다. 부려먹을 데로 다 부려먹고 비밀유지 명목으로 모두 죽였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장계황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독도 수비대장 홍순칠 잘 알 것이다.이 분 어떻게 죽은지 아는가.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뭐라구요? 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고요.왜 죽었다구요? 독도지켰다고 맞아 죽었다구요.국정원(중앙정보부)인가 거기가서 맞아 죽었다.정부에서 맞아 죽었다.지금 홍순칠씨 사모는 인천에 살아계시다.독도를 지켰다고 자국민을 고문해서 죽이는 국가가 어디 있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 26일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독도는 일본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으며, ‘일본정부는 항의를
서기1918년 제1차 세계대전종료미국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풍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몽양 여운형과 신한청년단의 활약3.1혁명 대폭풍, 기폭제 역할 조명 “3.1운동이라는 대폭풍을 만들어 내는데 사실은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게 상해에 있던 몽양 여운형과 신한청년단이다. 파라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실제로 유일하게 대표를 파견한 조직이 여운형의 신한청년단이다.”정병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조선개국4352.03.16.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이 같이 말했다.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
기사수정: 조선개국 4352.03.14. 15:45글: 최재영(재미 목사, 자유기고가) 임기윤목사,전두환의 5.18광주학살 항거하다 보안사 분실로 끌려가둔기로 머리가격당해 희생돼조철현 신부,전두환의 헬리기총소사 만행을 고발, 평생 진상규명위해 투쟁서기2019.03.11. 고인 명예훼손혐의로전두환 다시 법정에 세움 잊지 말아야할 두 분의 성직자 먼저 부산제일교회 임기윤 목사다.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 설교시간에 전두환의 5.18만행을 증언하고 신군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보안사 분실(삼일공사)로 끌려가 수사관들에게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천도교중앙대교당,의암 손병희가 3.1혁명자금으로 세움수운회관,독립투사이자 천도교인 최동오의 아들최덕신과 박정희에 힘입어 세워진 건물천도교 영광과 질곡 역사를 안은 채의식있는 시민들의 방문을 말없이맞이하고 있다 천도교중앙대교당의 건축과정은 천도교인들의 일사불란한 총력전이었다. 동학혁명에 접주로 참여하고 동학한축을 담당하고 있던 이용구 등 일진회 세력이 동학을 배반하고 부왜매국집단으로 변절했다.의암 손병희는 이용구 등 배반자를 축출시키면서 서기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했다.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서기1918년부터 건립에 들어갔다.의암
글: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행정학박사) 장계황의 독도이야기 8샌프란시스코 조약,패전국 일본이 돌려주어야 할 영토 규정독도 대한민국에 돌려주어야 땅으로 기재독도분쟁 생기면 이 규정을 기준으로 해결 일반적인 재판을 할 시 우선 재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준비서면을 제출한다. 국제 조약도 마찬가지이다. 조약을 맺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합의문을 만들어 그 범위 내에서 조약을 맺는데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 할 시도 합의서를 우선 채택하였다.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패전국 일본에 대하여 그간 식민지로 삼고 있었던 각 국가에게
의암 손병희,동학농민전쟁, 3.1혁명 주도경세가로 새로 건설될 국가 기틀 설계고문으로 죽는 순간까지 독립투쟁격려백범 김구,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가 아닌,그것이 바른 길이냐 그른 길이냐가 기준백범 민족주의 침략배제, 끝없는 민족문화발전 “나는 이 나라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간다. 너희들은 실망하지 말고 노려하라. 일본인들의 도량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먹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못 보아도 너희들은 보게 되리라. 신념을 잃지 말고 힘차고 줄기차게만 나가라.”의암 손병희가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임종을 앞두고 한 말
천도교 의암 손병희가 3.1혁명 구상 진행 성사3.1혁명 민족대표 33인중 15명이 동학 천도교인3.1혁명으로 민주공화제 대한민국 임시정부탄생대일독립투쟁의 중심, 정의부, 화성의숙도 천도교 곧 3.1절이다. 올해는 3.1혁명 1백주년이 되는 해라 정부에서부터 각종 관련단체들이 1백주년기념 잔치를 하겠다고 바쁘다. 3.1혁명은 우리나라 근대사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한국현대사를 결정한다.3.1혁명이 우리 역사에 끼친 힘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우리 근현대사 거대한 물줄기가 3.1혁명이다. 이를 주도한 세력이 있을 것이다. 우
손병희 인재양성교육 오늘날도 소중한 귀감근대사는 잘난 양반이 아닌, 차별 천대받던서얼, 상놈들이 변혁하고 발전시킨 역사이이제이전술에 당하는 역사 이제 끝내야 서기2019.01.05. 서울 종로구 3호선 안국역 건너편에 위치한 의백학교에서 의암 손병희, 백범 김구 정신을 잇는 심화학습 수업이 있었다. 이날 강의 두편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조병현 의백학교 지도교수가 맡았다. 두번째 시간에는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이끌었다.손 이사장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령, 김일성이 만주 길림성 화전현에 있었던 화성의숙이라는 곳에
대한민국정부 간도영유권 있음에도 대응 부실중화인민국화국의 동북공정 공세로 간도상실위기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제국 때도 간도는 우리 땅동북아역사재단의 반역행위, 간도 중국대변인 노릇 우리 머릿속에 우리 영토는 어디까지로 각인되어 있을까. 헌법에 나오는 데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되어 있을 것이다.학교 수업시간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소위 '한반도(이하 대한강토)' 지도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머릿속에 새겨준다.만주 광활한 대륙은 고구려, 대진국 발해 때나 우리 땅이었고 이후 이민족에게 빼앗겼고,
글: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행정학 박사) 장계황의 독도이야기 7국제법 관점에서도 독도는 대한민국 땅‘결정적 기일’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국제법에서 인정우리는 이 기일에 쇠기를 박아 독도 한국령 확고히 다져대한제국이 발효한 칙령41호와 리승만의 평화선 수호가 증거 독도문제를 말할 때 국제법에 맞는 논증이 가장 중요하다. 영유권 문제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우긴다고 하여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입증하는데 있어서 국제법에맞게 정리해 나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국제법 용어 중에 Cr
글: 조정미(보은북접동학혁명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혼을 신으로 격상시켜 3번 절을 한 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몸속에서 올라오는 통곡소리가, 떨림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휘몰아친다" 6월 2일 오후 현령과 제물준비를 위한 시장을 보았다. 이미 예약한 시루떡과 머리누름고기를 확인하였다. 과일은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번거로움을 생각해서 즉석에서 씻어서 포장하였다.수퍼에서는 술, 청수, 야채를 샀다. 이병골은 마을의 애장터이기도 하여 아이들을 위한 과자도 샀다. 동학공원에서 ‘보은취회와 촛불집회의 공공성’이
청나라 석학, 양계초가 말하는 대한제국 망국풍경,서기1910년 8월 22일 추밀원회의 열어 22일 ‘합방’ 발표 결의이 날은 순종즉위 4주년이니 축하연을 연 뒤에 발표하자이에 일인들이 허락하여 29일로 ‘합방’공포날짜 정해져 “합병조약은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이완용의 논의 단계를 거쳤고, 17일 데라우치가 일본정부에 전보로 통지했다. 18일 일본정부는 임시 내각회의를 열었고, 22일에는 임시추밀원 회의를 열어 25일 공포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그런데 조선정부가 갑자기 그날이 조선황제의 순종즉위 만 4주년 기념회를 열어 축하한 뒤 발표
글: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행정학박사) 장계황의 독도이야기 5일본, 미국과 영국의 협조하에 독도에 대러 감시용 초소 세움일본내무대신 카쓰라 다로 독도일본편입 내각회의요청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사실은 독도 강제 편입사실을일제가 관보에 못 싣고 현보에 실은 것에서도 확인 일본이 독도를 본격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만들기 위한 것은 영토에 대한 역사적 사실 때문이 아니다. 러일전쟁을 수행하고자 강탈했다. 러일 전쟁을 위해 독도를 무단으로 수용한 것이다.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러시아 함대가 동해로 남하 하는 것을 감시하
해방공간 미국군정부 식민통치하리승만의 독립촉성중앙회와 친일지주 한국민주당만 남아한국독립당 등 광복군 민족주의 정치결사체 제거됨분단은 소련군에 항복한 일본 관동군이 제공한 측면 강함해방공간 동아일보 신탁통치 정 반대 보도는 의도된 것 “리승만정권수립은 맥아더, 하지, 리승만 동경 3인비밀회담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날짜가 중요하다. 리승만 귀국일은 서기1945.10.16.이다. 상해임시정부 백범 김구는 11월 23일 개인자격으로 들어왔다.”서기2018.12.08. 의백학교 수업강의에서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이 이 같이 일갈했다. 지난
불의 역사 물줄기 돌리려던 동학혁명 본산보은 속리산초등학교 마당서 고천제 거행의백학교 학생들 동학혁명 본고장, 보은서1박 2일 의백정신 풀무질 활발하게 펼쳐‘개같은 왜적놈’ 거센 화력앞에 쓰러져 간동학혁명 원혼들 아직도 피맺힌 한 진동해 "진달래 되어 조선산하 굽이굽이 꽃불밝히리라"서기1894.12. 관군과 일본군에 패하여 보은으로 몰려든 동학농민군은 추격해 온 이들과 다시 맞닥들였다. 수백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12월 18일 눈까지 지독하게 내려 더욱 추웠다. 짚신바람, 헤어진 옷가지, 농민군들은 불을 지펴 몸을 녹였으나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조선,"남조선 당국은 일제 시기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강제 동원됐던 피해자 103만 2000여 명에 대해1인당 생존자는 200달러,사망자는 1650달러라는너무도 보잘 것 없는 금액을 요구했다" 4. 한일협정과 북일 수교한국 외교통상부가 2005년 1월 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겠다고 예고하자 일본 정부가 반발했다. 한국의 친일 보수신문들도 거들었다. 한일협정에 관한 일본의 협상 기술이나 전략 또는 치부가 드러날까봐 우려했을 것이다.외교문서가 공개되자 1990년대 초부터 논의되던
일제식민통치 흔적 고스란히 남아있는 군산금광동 동국사, 일제침략 선봉대로 포교활동 나서신흥동 일본인 히로시 일본가옥, 일본지주의 조선인 수탈 상징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펄펄 끓던 여름이 갔다. 세월은 어김없이 입추立秋를 넘어 벌써 완연한 가을을 알리는 백로白露를 지나고 있다. 나이 들면 세월이 더 빨리 간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아마도 삶의 주름이 늘어남에 따라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리라. 그 만큼 있는 그대로 삶은 멀어진다.올해도 4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 인생도 흘러간다. 인간 삶이라는 것이 죽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