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서기 2019.08.27. 15:25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⑫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여왕의 실체 박혁거세 출생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문헌기록, 중화사대사관에 입각 고구려국본기, 파소는 부여황실 딸,파소가 박혁거세를 지아비 없이 잉태한 것으로파소는 북부여 고두막한 딸, 폐신 혁서서와 인연박혁거세 출생, 13세 되던 서기전 57년 신라 세움 김부식이 송(宋)에 사신으로 갔다가 우신관(객관)에 걸려있는 여성의 화상(畵像)을 보고 관반학사 왕보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
초기신라위치에 대하여 이병도, 천관우, 김성호 등 견해신라도읍지 한강이북 경기북부지역 가능성 배제 못해마한과 전쟁으로 신라남하차질, 파사왕 때 경주로 진입경주신라는 여러 문화 융합의 다민족 공동체 성격 농후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⑪ 신라 천년수도 경주의 오해와 진실경주는 신라 천년역사의 중심지이다. 고구려는 홀승골성→위나암성→환도성→평앙성→국내성→평양으로, 백제는 위례성→웅진성→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기며 역사의 부침을 겪는다.그러나 신라는 오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⑩ 백제초기 3루왕의 비밀 백제왕가의 계보에 나타나는 다양한 수수께끼의 다루, 마루와 고구려 오회분 4호묘금와왕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온조의 직계 선조3루왕은 고구려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백제왕명 백제초기, 시조 온조왕의 뒤를 이은 왕은 다루(多婁)왕(2대), 기루(己婁)왕(3대), 개루(盖婁)왕(4대) 등이다. 왕명에 ‘婁(별이름 루)’자가 공통으로 들어간다.‘루婁’는 무슨 의미일까?[백제서기]에 따르면, 백제 건국 3년째인 서기전16년 온조의 처 감아(甘兒-추모왕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 ⑨ 백제 국호의 변천과정에 담긴 숨겨진 역사 흔히 백제를 단일 국호로 이해한다. 이유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기록이 모두 백제로 통일해서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국호는 시대상황에 따라 적잖이 변화한다.백제 국호의 변천과정이다.첫째는 십제(十濟)이다. ‘十(열 십)’자의 백제이다. 건국초기 만들어진 최초의 국호이다. [삼국사기] 건국(시조)신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시조 온조가 10명 신하의 도움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1[삼국사기]) 온조는 형 비류와 함께 고구려를 출
고대판 일제식민지 임나일본부 아직도 살아있어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일본 야마토왜가점령하여 2백여년간 식민지배했다는 황당무개한 주장임나=가야 등식은 북한 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극복설사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하더라도 그것은 일본 열도안에서 일어난 일로, 북한학자들이 증명해 놓은지 오래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임나 일본부설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임나 일본부설과 관련하여 고통을 겪어 왔지요. 해방 정국에서 남한 학자 김석형은 자신의 일본 열도 안의 삼한 삼국 분국설이 이병도가 장악한 남한에서 먹히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⑧ 백제 시조신화 사실성의 속사정 백제시조 온조왕은 고구려 계통설, 비류는 부여계통온조와 비류 생부, 구태왕은 중국사료에서 전해와구태백제는 하북성 노룡현의 대방군으로 나타남이 세력이 요서백제군, 진평백제군을 나중에 설치함대방백제세력이 만세일계 일본 천왕가의 본류로 나타나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시조신화는 신성성(神聖性)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시조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북방계통의 천손신화와 알에서 태어나는 난방계통의 난생신화로 나눈다. 특히 소수의 북방유목민이 다수의 남방농경민을 지배
수정: 서기2019.07.18. 21:56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⑦ 백제 초도 미추홀의 두 얼굴 비류백제가 시작한 곳, 미추홀의 위치비정미추홀이 인천이냐, 아산이냐 다툼 대두백제는 온조 백제와 더불어 초기 두개로 시작 2018년 7월, 인천시는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하고 정식 출범한다. 백제 초도(初都)인 미추홀을 인천시가 행정명칭을 통해 공식적으로 품에 안는다. 우리는 미추홀을 인천으로 알고 있다. 또한 그렇게 믿는다.정말로 인천이 미추홀(彌鄒忽)일까?미추홀 지명의 시작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⑥ 백제의 초기 도읍지 위례성을 찾아서는 백제 온조의 위례성을 현재 천안으로천안=직산 위례성이 먼저 생기고 하남위례성 나중에 생김소서노,분열한 온조와 비류 재결합 시도하다 희생된 설화도 전해옴 [삼국사기] 시조 온조왕 편에 ‘하남위례성’이 나온다. 온조가 도읍으로 삼은 백제의 건국지이다. 하남(河南)은 ‘강의 남쪽’을 가리켜, 지금의 한강 이남의 남한산성이 소재한 경기 광주(하남)일대가 유력하다. 특히 남한산성내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온조의 궁궐이 있으며,
기사수정: 서기2019.07.06. 20:13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중도를 비롯한 강원도 대외교류 학술대회간판걸고중국 식민기관 낙랑군 영향력 증명에 총력 기울여발표자들 하나같이 중국 식민통치기관,낙랑군은 평양에 있었고 망한 뒤에도 오히려이후 우리역사에 영향력 행사했다고 주장 조조 위나라는 대방군을 접수하여낙랑군 보다 오히려 넓은 하삼도 지배했다고 주장방청객 현혜진씨,‘외국인 학자들도 다 인정하는 살아있는 중도역사는 놔두고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곧이어 魏위 조정에서 낙랑과 대방의 태수를 임명하고 두 군을 접수하였음
고명은 왕이 임종 직전에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유명(遺命), 유훈(遺訓)이라고도 함 , 유리왕 기록 달라유리가 고구려 왕에 오르자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남하하여 백제를 세움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⑤ 고명세자가 된 고구려 유리왕유리왕(2대)의 대표 상품은 ‘황조가(黃鳥歌)’이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인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④ 추모왕의 고구려, 북부여 열국(列國)을 병합하다. 고대에 혈통 아닌 능력으로 공동체 수장되는 방법은 활쏘기추모왕과 송양왕 서로 활쏘기로 나라 통합여부 가려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赤峰)을 비롯한 노로아호산(奴魯兒虎山)은‘어리석은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산’의 뜻현재 요녕성 요양은 단군의 왕검성, 최리 낙랑국, 고구려 평양성 초기고구려 영토 확장, 시조 추모왕의 혈통이 배경서기전37년, 추모왕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성사시키며 홀본국을 모체로 고구려를 건국한다. 당시 대륙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③ 추모신화가 동명신화를 차용한 이유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의 정통성(Legitimacy)과정체성(Identity)을 담은 건국신화의 비밀 고구려 시조는 주몽(*본명 상해)이다. [삼국사기]는 ‘동명성왕(東明聖王)’, 는 ‘추모왕(鄒牟王)’으로 쓴다. 동명성왕이 추모왕이다.참고로 추모는 고구려 시조에게만 붙여진 특별 왕호이다. 추모는 훈족(흉노)의 왕호 선우(單于)와 같으며, 둘 다 ‘천자(天子)’의 뜻이다.차이점이 있다면 추모는 신(神)으
글: 공관(동북중앙아시아연대의장)동몽골 유목하기에 적합한 환경기마군사가 될 환경으로 역동성 유지서로는 초원 곧 바로 동유럽으로 질주가능대흥안령 산맥 초원지대 선비족 반농반목동몽골 유목제국 3경체제 유지 ■동몽골 지역의 개관‘동몽골’이라는 지역/공간의 범위와 의미/정의는 역사적 시대마다 달랐다. 흉노의 5경(五京) 때는 좌곡려왕, 몽골제국 3경 때는 좌현왕左賢王의 영역이었다.중앙유라시아에 터 잡은 민족은 지역과 국가의 틀을 넘는 다多부족/다민족/다중심의 초민족 공동체metaethnic community이다. 그렇게 될 수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②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름에 얽힌 비밀 고구려 시조는 주몽(朱蒙)이다. 「삼국사기」 설명에 따르면,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 말이다. 현대 우리 속어에 ‘제비’가 있다. 여성을 잘 꼬시는 얍삽한 남성을 빗대어 이르는 비칭이다. 마찬가지로 주몽은 당시 부여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모두 주몽이다. 주몽의 실제 이름은 무엇일까?「삼국사기」는 주몽의 또 다른 이름을 소개한다. ‘추모(鄒牟)’ 또는 ‘상해(象解)’이다. 둘 중의 하나가 실제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① 고구려 최초 도읍지의 불편한 족쇄기존 강단사학과 민족사학은 여러 부문에서 쟁점을 일으키며 대치하고 있다. 이는 시각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료가 적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또한 일제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아 우리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가능한 한 작게 서술한 것도 한몫한다. 이 논란의 중심에 「삼국사기」가 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유교사관에 따라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서술하지 않거나 또는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감으로써 우리 역사를 감추는
부산대 신경철 명예교수고대판 조선총독부 근원, 임나(김해)=가라라고 우김반면에 단군은 허구고 신화라며 조선총독부 대변인 노릇함우리나라가 서기 4세기가 되어서야국가가 시작되었고 청동기 이전 역사는 모두 거짓이라고 함일본인 학자 연구는 식민사학 아니라 선구자 연구라고 두둔 단군기원 4352년 5월 2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 강연이 있었다.쓰쿠바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현재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신경철 교수가 진행했다. 신 명예교수는 김해 대성동고분과 부산
부경대학교 이근우 교수,왕인 실제인물 아닐 가능성 커통해 백제 성왕 활동상 파악 가능김현구 교수를 학자 양심 져버린 인물로 기억김 전 교수가 일제식민사학자, 쓰에마스 견해그대로 따른 것은 지혜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 단군 기원 4352년 4월 18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일본서기와 한국 고대사’ 강연이 있었다.이 강연은 부경대학교 사학과 이근우 교수가 진행하였다. 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우리 사학계가 를 어
글: 김달수(재일동포 고대사연구가)일본 속의 한국1일제는 허위로 가득찬 속신화인물 신공황후를 역사사실로 교육신라, 백제, 가야가 정복되었다고 날조일본 유물, 유적, 성씨를 보면 이 땅에서모두 이주한 사람들이 개척한 나라 증명 우리가 일본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그대로 마주하고자 함이다. 때문에 역사연구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일제치하 소학교시절의 내가 배운 소학교 국사는 다음과 같다.맨 처음에 일본 시조신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오카미(天照大神)을 배웠다. 둘째는 신무천황, 세 번째가 일본무존, 네번째가 신
글: 이성환(한의사) 몽골은 발해가 망하고 고구려 후손이 만든 나라불가리아에서 풍기는 부여, 고구려 계보 흔적신라경주 ‘황금보검’과 불가리아보검 개념이 동일크로아티아사람 이름 끝자와 만주이름이 같아 이번 불가리아 유적답사 여행에서 가장 큰 성과는 불가리아 초대 왕인 구부라트 왕의 유물을 접한 것이다. 구부라트 왕은 610년부터 613년까지 2개의 주요 불가르아 씨족인 쿠트릴구르(Kutrigur) 와 우티구르(Utigur)를 통일하여 온오구르를 만든 왕이다.지명에 구리 구르 그르는 골(짜기)의 다른 발음이고 그것이 마을 이름일 때는
글: 이성환(한의사, 자유기고가)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 실제가능성 농후류쿠국 역사에 소년왕이 등장 태평치세홍길동 생몰년대와 비슷 나이도 72세고려기와 출토 고려 삼별초 정착지 추정상씨왕조가 왜, 조선 삼한 후예라고 하나 “하이세이!” 오키나와 말인데 우리 말 “안녕하세요!” 이다. 내가 아는 언어 중에 인사말이 이렇게 닮은 것이 없다. 언어가 이민을 가면 게으른 혀 현상으로 얼버무려지는데 “안녕하세요”를 얼버무리면 하이세이가 될 수 있다.올해 설 연휴에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언제인가 신문에서 오키나와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