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집현(자유 기고가) 한국전쟁을 좌우한 일본군, 연합군 16개국 참전 명단에 없어식민지배로 축적한 한반도 정보 미군에 넘겨 전쟁역전 계기상륙작전 불가능한 인천상륙 가능케 한 건 일본군 작전 때문식민지배로 인천 지형지물 꿰뚫고 있던 일본군 정보로 가능원산만에서도 일본군이 북이 설치한 기뢰 등 제거 덕에 상륙전쟁 전반에 걸쳐 첩보활동, 지도제작, 미 화학전 세균전 도와일본 후쿠오카에 혈액은행, 열도 병참기지로 전쟁 역전시켜1. 6.25전쟁에 참전하고도 참전국 명단에 없
글: 전집현(자유기고가)제주43학살 47년전 이미 대규모 민중 참사 벌어져제주도 천주교도들 고종 권세 믿고 살인, 강간, 약탈온갖 폐악질 일삼아도 교당으로 숨어버리면 처벌불가교당 지으면서 신당, 신목 등 토속문화 파괴 말살해관노였던 무술 출중한 이재수를 중심으로 뭉쳐 반격상무사조직, 포수 등 수천명 무장봉기 제주성 장악패악질 일삼은 천주교도 300여명 참살 후 내다 버려이재수, 강우백, 오대현 삼의사 비에는“여기 세우는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붕괴시작한지 단 5분만에 완전붕괴 사상자 1천명 넘어붕괴신호 계속돼도 영업 피해 우려로 붕괴 위험 무시기둥두께 줄이고 철근 축소 투입 부실공사로 붕괴예고붕괴 2개월전부터 식당 금가고 콘크리트 떨어져 내려백화점 이준회장 고객대피 건의한 이사들에 오히려 화내붕괴자리에 윤석열 대통령 거주지인 아크로바스타 지어 1.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은 1989년 개점하여 한때 매출액 기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의사) '시해'란 용어는 책임소재가 일제가 아닌 우리내부에 있다는 의미'시'에는 신하가 임금을 죽였다는 뜻, 내부인이 죽였다는 뜻 포함'명성황후 시해'란 말은 명성황후를 조선 사람들이 죽였다는 뜻순종의 증언을 조작, 우범선이 명성황후를 죽였다고 왜곡해 선전조선 내부의 권력 투쟁에 의해 명성황후가 죽었다는 오해 일으켜 ■ '명성황후 시해'란 용어는 바로 잡아야 한다1895년 10월 8일 일본은 미우라 공사의 주도하에 경복궁에 난입,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우리는 통상 '을미사변'이라고 칭하고 있으
민주노총 성명서 발표,이태원 할로윈 참사 윤 정권 책임회피시 정권몰락 경고윤 정권의 책임회피, 총리의 조롱, 경찰 사찰 정황 지적있는 그대로 진상규명과 법과 제도로 재발 방지 촉구민주노총이 2022.11.02. 성명서를 내고 이번 이태원 할로윈 참사가 인재라며 대통령에서부터 현장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였다.민주노총은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의 인식에 반의반도 미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권력 집단의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국가의 부재를 확인하는 불안한 사회에서 살
글: 전집현(역사연구가)아버지 박성빈조선왕조 군관으로 부패상에 환멸 동학혁명참여역적으로 처형위기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셋째 아들은대일항전에 뛰어들어 신간회, 조선건국동맹활동,해방 후 10.1 대구 투쟁 등 하다가 체포돼 사형당해막내아들 박정희만주군관학교 나와 특설대 활동, 해방 후 광복군 잠입, 남로당 가입 군사총책, 여순봉기, 4.3학살 등 과정에서 발각, 처형위기서 백선엽이 구출1. 아버지 박성빈 : 동학농민운동중 구사일생경북 성주군 출신 박성빈(1871~193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태권도는 가라테를 변형, 발전시켜 대박난 현대무술태권도라는 명칭은 1954년 탄생, 이전 여러이름 난립태권도 최홍희, 태권도 태 발을 의미하고 태껸과 연결태권도 국기로 확립 이론화 체계화 이후 세계화 박차1.가라테를 변형, 발전시켜 대박난 현대무술태권도(跆拳道)는 한국 고유의 전통무술이나 민속놀이인 태껸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태권도는 일본 가라테(からて, 空手道)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이를 변형, 발전시켜 1950년대 창시된 현대무술이다.
글: 전집현(자유 기고가) 청나라 외교관이 만든 조선책략에 미국은 ‘대인배’미국에 대한 기대감으로 1882년 5월 조미수교 이뤄미국의 조선 사절단 환영에 고종 즉시 보빙사 파견조선 보빙사 미국 대통령 접견에 엎드려 큰절로 인사청, 영약 3단 만들어 압박, 조선 보빙사 속국 취급영약 3단 어긴 박정양, 청 압력으로 10개월 만에 소환 1) 1882년 5월 22일 :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2) 1883년 5월 22일 : 주한 미 공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한국 일부 문화계 고종과 덕혜옹주 왜곡해 돈벌이고종 늦둥이 1912년생 14세 때 강제로 일본 유학정신병 걸린 채 대마도주와 정략결혼 고통 인생 시작조현병 앓다 이혼, 해방 후 귀국 고통받다 77세 마감 일부 문화계가 돈벌이를 위해 부끄러운 우리 역사까지 抗日이라는 이름으로 왜곡하고 있다.시대를 잘못 타고난 개혁 군주 ,조선을 지키려다가 억울하게 살해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에게 독립의식을 키워 준
글: 신종근 (역사연구가, 의사) '시해'는 신하가 반역을 품고 임금 죽였다는 뜻일제의 을미년 만행을 은폐하기 위한 의도담겨실제로 일제는 조선국모를 죽이고도 이를 부인세가지 이유 들어 조선사람이 죽인 것으로 조작'명성황후 시해'란 용어는 바로 잡아야 한다1895년 10월 8일 일본은 미우라 공사의 주도하에 경복궁에 난입,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우리는 통상 '을미사변'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고 기술하고 있다(국사 교과서, 각종학술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그러나 '시해'란 용어는 '일본인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격동의 서기 1970년대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된 역사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으로 10.26 사건 구도 완성돼월남전 자유 진영 패망으로 한국은 학원 병영화 구축76년 8.18 도끼 만행, 군사분계선 시멘트 선 만들어 1. 1974년 8월 15일 문세광,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29회 광복절 경축사를 하던 도중 다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한발은 영부인(육영수)이 맞고 한발은 여고생 목을 관통하였
글: 지승룡(민들레 영토 대표) 남북한 현대사의 비극은 미 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 때문전범국 일본인보다 더 피해국 한국민을 더 증오한 하지“사나운 고양이 같은 종자, 세계서 가장 멍텅구리 인종”여운형에게는 일본에서 돈 얼마나 받아먹었냐고 위협상해임시정부인사들 인천에 모아 중국 상해로 추방시도하지 중장, 한국의 역사, 사람, 행정 등 아무것도 몰라 여론조사에서 국정 동력이 상실하는 것을 넘어 대통령 하야 분기점은 부정평가가 70% 긍정평가가 20% 아래로 진입하는 것이다. 부정평가는 이미 진입을 했고 긍정평가는 아직
글: 전집현(역사연구가) 이광수 민족개조론, 조선인을 버리고 일본인 되자는 것윤치호, 동양과 세계 정원, 축복받은 일본에서 살고 파김동인, 반도 민중의 황민화-징병제에 적극 동참 권유최남선, 역사 말살 조선사편수회 부역, 학병지원 연설배정자, 이등박문 수양딸로 밀정활약 매국에 적극 나서 1. 이광수(李光洙 : 1892~1950)이광수는 1922년 5월호 월간 잡지 에"민족개조론"을 기고하였다.이 글에서 그는 우리 민족의 열등감이 민족의 패배감으로 나타나서 일본의 지배를 받고
글: 지승룡(민들레영토 대표) 미군정청 1946.7. ‘미래 한국 통치구조’ 여론조사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 자본주의 13%가장 유능하고 양심적인 지도자는 여운형이 압도미군정, 전범국 일본에 가장 민중 친화적인 개혁추진피해자 한국에는 민중 억압적인 극우체제로 몰아가미군이 뒤틀어 놓은 비정상 체제로가장 진보적 대구가 오늘날 가장 수구적으로 추락 미군 ‘점령군’ 논란을 보며 생각난 자료다. 미 군정청 여론조사국이 1946년 7월에 실시한 ‘미래 한국 통치구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다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외교권 박탈 을사늑약은 덕수궁 중명전서 체결2009년 중명전 복원돼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 중총독관저는 남산 입구 명동역 인근에 자리 잡아1910년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 장소는 총독관저박정희 군산반란으로 철거된 뒤 표지석 세워 교훈서울시 국치의 거리로 조성해 총독관저 터도 포함 < 을사늑약 체결은 덕수궁 중명전에서.그럼 경술국치조약 체결장소는?>1. 을사늑약(을사조약)은 덕수궁 중명전에서 체결1905년 11월 18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는 덕수궁 중명전이다.이곳에서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
글: 전집현(자유기고가)625 전쟁은 남북 함께 민간인 학살로 점철돼 중공군 인해전술은 미군에 공포의 대상 각인 제공권 장악한 미군, 폭격으로 북한 초토화군대 폐습 '원산 폭격', 미군 원산 폭격에 기원1. 민간인 사망자가 휠씬 많았다.남한군인중 사망자가 15만명인데 민간인은 77만명이나 희생되었다. 전쟁중 민간인이 민간인을 대량 죽였기 때문이다. 몇십년간 이웃이던 사람들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옆집 사람들을 죽이다가 전세가 바뀌자 보복으로 죽임을 당했다.2. 중공군의
글: 전집현(자유기고가) 현충일은 서기1956년 제정 되었으나 왜 6월 6일로 정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아군사정권하 충성과 복종 수단으로 이용문민정권들어 개인권리 강조로 쇠퇴반공으로 악용되나 희생정신 기억해야 현충일(顯忠日) 단상>1. 현충일의 유래오늘은 67회 맞이하는 현충일이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날이다.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한국도 6.25전쟁이 끝나고 3년뒤 1956년
김 상 윤(광민회 고문) 오늘 당신을 보냈습니다.동년이 형님, 안녕히 가십시오.‘광주 내란 수괴’ 사형수 정동년을 보내며. 당신은 결국 항상 오월을 벗어나지 못하시는군요.동년이 형님, 오월의 품에서 고이 잠드십시오.“어이, 상윤이. 이번에 정동년도 같이 복학시키소.”“정동년이 누군데요?”“하기사, 자네들이 정동년을 알 턱이 없지.”1980년 3월이었습니다. 박석무 형님이 나를 불러 1965년 한일회담반대 시위 때 제적당한 정동년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1964년 6·3 시위 때 시위를 함께 주도하던 정동년은 다음 해에 총학생회장이
이은탁 (시민운동가) [ 광주항쟁 42년, 기록하고 기억한다⑧ ] 계엄군 임신부 조준사격“우리 딸이 임신을 해갖고 총에 맞았는디, 죽은 사람은 있는디 왜 죽인 사람은 없는 것이오? 세상에 나와 보도 못하고 죽은 내 손자는 어쩔 것이냔 말이오?세상에 임신한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총을 쏘는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 어딨냔 말이오? 뭔 죄가 있어서, 뭔 죄를 지었다고 총을 쏴서….”(1988년 광주청문회 증언)1980년 5월 21일 전남대 부근에서 계엄군이 총에 맞은 학생의 양쪽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걸 목격한 시민들이 놓아 달
이혜옥이 쓴 외세에 찢기고 밟힌 우리 겨레 쓰라린 유량의 역사 고증조선인, 일본군의 보급품, 장비 운반 짐꾼으로 강제 징집짚신 신은 일본군은 조선인이 일본군으로 참전한 것 증명유랑의 뿌리에 일제의 우리 역사 왜곡 날조가 자리 잡아 우리 민족은 단군조선이 해체된 이후 열국으로 나누어지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민족 유랑은 당나라의 침공과 내분으로 망한 고구려 유민이라고 볼 수 있다.한민족 유랑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서기 2010년 12월에 출간된 김인희 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