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들이 꿈꾼 나라,일제 졸개들이 지배하는 나라 아니었을 것백인 위안부 가해 일본군만 처벌돼황인 위안부 가해 일본군은 떵떵거리고 살아프랑스, 독일은 나치 부역자 처벌에 시효 미적용대한민국은 반역자, 현재 친일찬양자도 미처벌윤봉길 의사가 홍구 공원서일제 시라가와 요시노리 폭살했는데,이 자를 존경하여 시라가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한백선엽을 ‘국군의 아버지’라고 하면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가 김원웅 광복회장이 올해 광복절에도 대한민국의 민낯을 고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백범 기념관에서 미리 찍은 동영상을 방영하는 것으로 오늘 76주년
제1차 동학혁명 농민 봉기는 무장투쟁을 통한 자주독립전쟁삼일혁명은 제2차 동학혁명으로 평화 비무장 투쟁으로 전개삼일혁명은 동학 천도교의 의암 손병희가 주도한 것으로,1차 봉기와는 다른 전 인민이 참여한 투쟁으로 확대 전개현재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삼일혁명 정신이 새겨져 있어 1차 동학혁명이 내세운 것은 두가지다.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이다. 먼저는 안으로는 제폭구민 除暴救民, 보국안민 輔國安民이다.대외적으로는 왜군을 위시한 외세 침략을 물리치자는 척왜양 斥倭洋이다. 당시 군사침략은 물론 경제침략도 심해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경제
단재 신채호,‘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어떤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야’‘사회의 흐름과 그 사실을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이 이른바 역사야’광복투쟁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헌신한단재 신채호는 석주 이상룡과 함께 1백 년간국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역 땅에서 떠돌아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순국일이다. 그는 경술국치 이전 이미 당대 최고의 천재이자 선비였다.그러나 시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단재 신 선생은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 하나 들고 중국 청도로 건너가 신민회 회원들과
글: 류돈하(역사연구가) 대일독립전쟁의 선구자, 석주 이상룡 선생의 임청각에 철길 놓은 일제지난 정권까지 방치하다, 올해 12.17. 걷어내 일제망령 또 하나 제거석주, 신흥무관학교 세워 독립전쟁기지 건설, 대일전쟁 간성 길러내신흥무관학교 함께 세워 퇴계학 후예 석주와 율곡학 후예 우당 화해 생각컨대 석주 이상룡 선생을 떠올리자면 매양 목이 매인다.우리 석주 이선생을 논하자면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요, 혁신으로 광복운동을 펼쳐 대통합으로서 항일운동의 의지를 한 곳으로 집결한 국가의 시귀(蓍龜)라 할 수 있다.석주
자주독립국가 뿌리, 인민위원회 미군정이 탄압1947. 삼일절 시위대 경찰 발포로 사상자 발생미군정, 발포자 처벌과 사과 무시 정당방위로 두둔3.10 제주도민 95%가 참여하는 총파업 단행, 저항일제정책 부활, 5분의 1가격에 강제공출 민심폭발분단고착, 동족상잔 예고하는 단독선거 반대투쟁미군정 지휘받는 경찰, 서청의 무자비한 고문, 살해1948.4.3.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 4.3항쟁 돌입 "1947년 하반기 (제주도에) 서청(서북청년단)은 7백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실업자인데 배후에 조병옥 경무부장이, 정치적 후원자로 이승
글: 은영지(소성리 미군사드퇴출 투쟁가) 소성리에 박힌 미군무기, 사드철거 투쟁에 뛰어든 소녀같은 아줌마 일상의 후원에서 외세가 지배하는 것 알고 외세 척결 투쟁에 뛰어 들어보수 교회에서 민중진보 교회로 옮긴 후 투쟁방향을 확실하게 잡아찌져기게 가난한 어린시절과 성인이 돼서도 끝나지 않는 궁핍에 단련돼죽을 듯한 역경에 굴하지 않고 뛰어든 대미독립투쟁은 은총선생의 사명 2월8일 성주소성리 진밭교 토요아침평화행동 (사드반대 평화운동가 은총샘)"가난한 사람
글: 류돈하(자유기고가) 신흥무관학교 교가1절은 우리 민족의 영광스런 과거, 옛 역사를 표현2절은 고토를 남 놀이터로 내주고 종설움을 받는 처지3절은 젊은이들이 빼앗긴 조국 찾는 희망임을 노래함 [대한민국 백년 大韓民國 百年 ][부제: 안동의 노래]작사: 동구 이준형(東邱 李濬衡: 1875~1942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자 고성이씨 참판공파 안동 임청각 종손 석주 이상룡의 아들)원곡: 미국군가 Marching Through Georgia (1절)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에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 기르고동해섬중 어린것들 품에
글: 김슬기(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과) 윤봉길,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의 장제스 총통,“중국의 백만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 오는 4월 29일은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과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기념식이 거행된다.사드배치 문제로 모든 한국행사에 불참했던 중국이 윤봉길 상하이 의거 기념식만큼은 한중 공동으로 개최한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윤봉길 의사는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도시락 폭탄
서기1920년대 들어 대일독립전쟁을 두고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으로 양분분단체제하 남한은 민족주의 독립투쟁사 방점사회주의 계열 대일독립투쟁사는 금기시 소홀 일제에게 나라를 강탈당한 뒤 우리나라는 크게 세 길로 되찾자는 소리가 나온다. 하나는 즉각적인 무장독립투쟁이다. 다른 하나는 외교론, 문화론, 자치론, 준비론, 또는 실력양성론 등이다.즉각적인 무장독립투쟁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일광복투쟁이다. 그 정점에 상해임시정부로 대변되는 세력이 있다. 무장투쟁의 다른 한 축은 사회주의(공산주의)세력이다.외교론, 준비론, 자치론 등
글: 박용규(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언어 보존이 민족 보존말과 글은 민족과 운명을 같이함민족 말과 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애국 먼저 일제시기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로서의 그의 삶을 살펴보자. 이윤재는 마산의 창신학교와 영변의 숭덕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고, 3차의 옥고를 치렀다.3·1운동 참여로 1년 6개월간 평양 감옥 생활했고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1년간 서대문형무소 생활을 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끝내 함흥형무소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였다.그의 반일 의식은 3년간 북경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
글: 박용규(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회 연구교수) 김두봉,국어학자, 대종교인, 공산주의자로 국어독립투쟁,무장독립전쟁에 뛰어들다해방 후에는 북조선 건국 중심인물로 떠오르다김일성 1인 숭배 우상화에 반대하다 숙청되다 김두봉은 우리 말을 어떻게 보았나주시경의 한글운동에 대한 반제국주의 인식은 김두봉에게 영향을 주었다. 김두봉의 민족운동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김두봉은 1909년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안희제·남형우·신백우·이경희 등 동지와 함께 조직하였다.그는 주시경의 수석제자였다. 1911년 주시경이 운영한 조선언
신흥무관학교 창설일을육군사관학교 개교기념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경학사'耕學社'를 아십니까...일하면서 배우고 싸웠다... 허성관의 2015년 중국 우리 역사 현장 답사 ⑤7월23일(목) 통화⟶삼원포⟶고산자⟶합니하⟶집안 ━ 신흥무관학교, 이곳이 그곳이구나!중국의 행정단위는 성(省), 시(市), 현(縣), 진(鎭), 향(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이 우리나라의 면에 해당하고, 향은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은 통화시에서 북쪽으로 삼원포진(三源浦鎭)에 있는 추가가(추
“내 목숨은 끊을 수 있지만, 무릎을 꿇어서 종이 될 수는 없다.” 우리 힘으로 독립 쟁취 못해,친일파 대한민국, 남북 분단되다...조선최대 갑부, 독립전쟁에 재산 다 쏟아 붓고,먹을 것 없어 굶어 죽다... 북한이 다시 서기2017.07.28. 늦은 밤을 기해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았다. 지난 4일에 이어 두 번째 실험이다. 이번에는 3천 길로 미터가 더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대략적으로 1만 킬로미터까지 날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미국 본토를 직접 핵탄두를 실어 타격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투사후손 재산 찾아주기 운동 다방면으로 진행시킬 것...재단설립으로 친일매국세력에 체계적 대응, 역사바로세우기 매진하자...해방 후 독립투사와 후손들 생존권까지 박탈한 이승만 정권...다른 독립투사도 암살 시도 할 것 분명해 지방에서 숨어살아... 서기2017.07.26. 저녁7시, 서울 홍대앞 전철역 근처 카톨릭청소년회관 바실리 관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가 주최한 독립투사후손 재산찾아주기 후원금 모집성공 강연회다. 그동안 연구소 측에서는 종합누리망 다음(daum)이 개설한 ‘이야기후원
3.1독립혁명선언을 모독한 설민석씨,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박근혜 정권의 음모... 얼마 전에 박근혜 정권 들어 국사유명강사로 이름을 날리는 설민석씨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방송에도 출연하여 유명 연예인들의 앞에서 강의하는 등 국사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설씨는 3.1독립선언 민족지도자들이 태화관이라는 룸살롱에 모여서 (기생을 끼고) 낮술을 먹고 독립선언을 했다고 했다. 이에 관련 단체와 학자들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들고 일어났다. 조선일보에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진씨가 글을 기고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기사수정: 서기2017.3.21. 14:37 김일성이 천도교를 모시는 까닭은...남태평양 티니안(Tinian) 섬의 주인이 한국인이다?버려진 채,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누구인가...천도교가 세운 무관학교, 화성의숙에서 배운 김일성... 현재 북한이 인정하는 유일한 종교가 있다고 하는데, 그 종교는 무엇일까? 동학을 전신으로 하는 천도교다. 그럼 왜 천도교는 북한이 인정하는 종교가 된 것일까? 김일성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편 남태평양의 티니안이라는 섬에는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한국에서 이민 간 사람들이 아니
김명옥 전문기자 바른역사 생민강좌 제2강,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강연-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일제, 대동아전쟁으로 궁핍해도 식민사관예산은 안깎아...일본우익 공작금 한국내 인문사회과학연구자금 명목으로 들어와 암약...‘일제식민사관 극복과 민족정체성 재정립’을 위한 바른역사아카데미 두 번째 시민강좌가 10월 5일(수) 서울교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이덕일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근현대사와 고대사가 하나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점령하면서 우리 고대사를 그들의 틀로 만들어 놓은 것에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은 교육으로 생민계몽운동 및 국채보상운동과 더불어 무력투쟁도 전개한 드문 인물... 지금부터 71년 전 우리 민족은 찢기는 가슴으로 살아왔던 일제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북쪽은 러시아가 남쪽은 미국이 38선을 경계로 나누어 군정에 들어갔고 해방과 동시에 분단의 역사 속에 또 시간이 흘렀다.남북의 분단은 1950년 6월 25일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고 오늘날까지 총부리를 서로 겨누며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물론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현실을 보듬고 온
대종교를 아시나요?오늘 우리가 있는 것은 그냥 된게 아닙니다...하늘아, 땅아, 산이여, 냇물이여,역사를 잃어버린 생민들아, 서울 홍은동 언덕위에쓸쓸하게 잊혀져 가는 대종교, 그 제단앞에 피눈물을 뿌려라... ②서기2015년 7월21일(화)-2 용정(龍井)→화룡(和龍)→청산리전투 유적지⟶이도백하(二道白河)- 대종교(大倧敎)를 아십니까?전설의 대략자를 지나 조금 달려 용정 시내에 도착했다. 용정은 ‘선구자’라는 노래로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곳이다. 일송정, 용두레 우물, 해란강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미
“전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우리 조선 불교를 망친 사람이다...지금 무간아비지옥에 떨어져서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고 모여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모여사는 공간은 국가가 대표적이다. 국가단위로 오늘날 세계일류의 삶이 돌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전형적인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71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삶의 기초인 국가가 없었다. 망국민으로서 왜구의 침략전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