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① 고구려 최초 도읍지의 불편한 족쇄기존 강단사학과 민족사학은 여러 부문에서 쟁점을 일으키며 대치하고 있다. 이는 시각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료가 적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또한 일제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아 우리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가능한 한 작게 서술한 것도 한몫한다. 이 논란의 중심에 「삼국사기」가 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유교사관에 따라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서술하지 않거나 또는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감으로써 우리 역사를 감추는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을 철학 사상사로 접근삼일혁명 거사자금출처와우당이회영 독립사상도 함께 조명 조선개국4352.06.01. 서울 종로국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 ‘광화문아침’에서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바른역사 학술원에서 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미사협은 조선개국4352(서기2016). 6월에 창설되어 식민사학청산과 바른역사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학술분과도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는데 바른역사 학술원(원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다.올해들어 정기 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에는 강단식민사학이 외면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3일 차) 방영 이후 유명해진 공양탑진실이 알려지자 무서워 폐쇄책임 공방도 서로 떠넘겨 3일차 일정은 오전 8시 40분에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을 태운 배가 다카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둘째 날과 같이 다카시마 석탄박물관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이었다.다카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러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느 삼거리로 답사팀은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깊숙이 숲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며 나아가자, 다카시마 공양탑이 답사팀을 마주하였다. 아마
서경덕 교수와 함께하는 해외 강제징용 문화유산 탐방(2일 차) 군함도에는 일제 ‘자랑스런’ 역사만 가득1939년~1946년 사이의 역사는 사라져군함도에서 헤엄쳐 탈출하던 조선인 강제징용4명 익사체해안가에 비석하나로 기념하고 있는 중 2일차 일정은 군함도 자료관 관람, “난고지묘 해난자 무연불지비”, 다카시마 석탄박물관, 군함도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사실상 본 탐방의 핵심 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답사팀은 둘째 날 첫 일정으로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이동 후 군함도 자료관을 찾았다.이 역사관은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세
광복직후 발간된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에는단군조선 건국은 역사로 기록해이후 3차 교과과정 부터 개악되어단군은 신화로 치부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에서는 오는 5월 26일(일) 오후 2시 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3층 세미나실에서 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36년에 걸진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나고 광복이 이루어지자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일제가 남겨놓은 식민지배의 잔재를 없애고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역사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복 직
글: 은영지(사회운동가) 80년대 청춘시절엔 독재정권과 가열차게 싸워결혼한 뒤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 자주 못가518광주학살이 기획된 것 새로 드러나 경악소성리 사드배치저지 투쟁도 518연장선상 1991년 신혼여행지로 광주 망월동에 참배하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첫날밤을 보낼 정도로 광주는 내게 특별했다.혁명의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산 80년대 청춘시절엔 늘 5.18 그날이 되면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작전을 하듯 광주에 진입하는 일이 흔한 풍경이었다. 그땐 군부독
서경덕 교수와 일제강제징용흔적 답사(1일차)강제징용 유적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둔갑되어 전시 중유네스코에 강제징용 표기 약속도 지키지 않아윤동주 순국지는 아무 표시도 없이 놀이터로 만들어 단군기원 4352년 4월 12일부터 14일가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가 함께 일본 역사 유적지를 답사하였다.이번 일정은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로 이어졌다. 이 두 도시는 왜국 내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석탄 채굴량이 많아 강제징용이 많이 있었던 지역이다.이 지역 강제노동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주도에서 대기업이 주도하
부산대 신경철 명예교수고대판 조선총독부 근원, 임나(김해)=가라라고 우김반면에 단군은 허구고 신화라며 조선총독부 대변인 노릇함우리나라가 서기 4세기가 되어서야국가가 시작되었고 청동기 이전 역사는 모두 거짓이라고 함일본인 학자 연구는 식민사학 아니라 선구자 연구라고 두둔 단군기원 4352년 5월 2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 강연이 있었다.쓰쿠바 대학에서 박사를 하고 현재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신경철 교수가 진행했다. 신 명예교수는 김해 대성동고분과 부산
승전 뒤 우리민족에게 돌아온 동국사많은 영화가 촬영된 히로쓰 가옥등왜정의 자취를 잘 이용할 필요 있어 둘째 날 일정은 군산행으로 시작되었다. 답사팀의 둘째 날 첫 여정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본대 측에서 섭외한 군산 지역 해설사와 함께하였다.해설의 시작은 근대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커다란 사진 앞에서였는데, 이 사진은 1945년 승전 직후 미군이 공군기를 띄워서 찍은 군산 시가지 사진이라고 한다.사진에서는 목포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거주지와 왜인 거주지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었는데, 왜인들의 거주지는 네모반듯한 사거리가 현재까지 유지
유럽에 수탉을 섬기는 조형물 즐비프랑스 노틀담 대성당 꼭대기 수탉토속종교와 외래종교의 융합 보여줌한웅천왕 솟대문화가 전파되었을 것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다.첨탑이 떨어지며 꼭대기의 수탉 상이 건재해 외신을 탔다.독일의 마인츠 성당이나 헝가리의 마차시 성당에만 수탉 상이 있는 지 알았더니 유럽에 크고 오래된 성당은 거의 수탉 첨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룩한 십자가 위에 하찮은 수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왜 한국의 솟대가 유럽 성당에 있을까?가만히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한국인은 이주를 할 때 종교 중심지 소도를 가지
글: Ahnmatae Matthew Ahn(퇴직신부, 미국거주) 이승만 친일경찰의 무자비한 발포로피 흘려 쓰러지는 동료학생을 목격함수백 명이 현장에서 죽었고 수천 명이 부상아직도 당시 목격한 학살 장면이 떠올라발작 등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419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적인 경험 - 트라우마1960년 4월 19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학생들의 이승만 독제 정권에 항의한 사건을 419라 부른다.이날 학생들은 85세나 된 이승만(1875년생)이 정권 연장을 위해 저지른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났다.부정선거를 항의하는 마산의 학생시위에서
부경대학교 이근우 교수,왕인 실제인물 아닐 가능성 커통해 백제 성왕 활동상 파악 가능김현구 교수를 학자 양심 져버린 인물로 기억김 전 교수가 일제식민사학자, 쓰에마스 견해그대로 따른 것은 지혜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아 단군 기원 4352년 4월 18일 부산대학교 후문사거리에 있는 문화공간 봄(Bomm)에서 ‘일본서기와 한국 고대사’ 강연이 있었다.이 강연은 부경대학교 사학과 이근우 교수가 진행하였다. 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우리 사학계가 를 어
일제가 수탈기지로 강제 개항시킨 목포할퀴고 간 흔적 곳곳에 남아 참상증언남아있는 적산가옥, 방공호 등비극 근대사 교훈으로 삼을 필요성 대두 단군기원 4352년 3월 23일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가 함께하는 국내 역사 탐방에 나섰다. 목포와 군산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목포와 군산 두 도시는 왜정치하에서 국내 대표적인 미곡 수탈 기지였다. 강제징용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여행단 일정은 1박 2일이었는데 첫째 날에는 해남 옥매광산, 목포 근대역사관 및 목포 중앙교회를 둘러봤다
글: 류돈하(역사연구가)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일왕신민 되라는 순종임금나라 팔아먹었지만 고종임금도 인정한 단군조선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제국 황실을 우대하겠다고 임시헌장에 명기국권회복 뒤 국회소집 계획도 임시헌장에 밝힘 1910년 경술년 8월 동방의 나라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일본왕 목인(睦仁:명치왕)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같은 해 8월 29일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 융희황제는 다음과 같은 조약문을 공표한다."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
글: 김슬기(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과) 윤봉길,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의 장제스 총통,“중국의 백만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 오는 4월 29일은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맞아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과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기념식이 거행된다.사드배치 문제로 모든 한국행사에 불참했던 중국이 윤봉길 상하이 의거 기념식만큼은 한중 공동으로 개최한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윤봉길 의사는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도시락 폭탄
글: 김달수(재일동포 고대사연구가)일본 속의 한국1일제는 허위로 가득찬 속신화인물 신공황후를 역사사실로 교육신라, 백제, 가야가 정복되었다고 날조일본 유물, 유적, 성씨를 보면 이 땅에서모두 이주한 사람들이 개척한 나라 증명 우리가 일본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그대로 마주하고자 함이다. 때문에 역사연구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일제치하 소학교시절의 내가 배운 소학교 국사는 다음과 같다.맨 처음에 일본 시조신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오카미(天照大神)을 배웠다. 둘째는 신무천황, 세 번째가 일본무존, 네번째가 신
“조선사람들이 두손 묶이운 채큰 나무에 매달려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일본병사가 앞과 뒤에서서 몽둥이로 때리고 있었습니다.목을 자르고는 머리를 벗겨 길옆에 나란히 놓아두곤 했습니다.” 서기2005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라는 기록영화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이 제작한 것이다. 약40분 분량이다. 일제침략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다.그 중에 조선인 강제연행 로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한 일제만행 장면이 나온다. 부려먹을 데로 다 부려먹고 비밀유지 명목으로 모두 죽였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지금도
장계황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독도 수비대장 홍순칠 잘 알 것이다.이 분 어떻게 죽은지 아는가.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뭐라구요? 독도지킨다고 맞아 죽었다고요.왜 죽었다구요? 독도지켰다고 맞아 죽었다구요.국정원(중앙정보부)인가 거기가서 맞아 죽었다.정부에서 맞아 죽었다.지금 홍순칠씨 사모는 인천에 살아계시다.독도를 지켰다고 자국민을 고문해서 죽이는 국가가 어디 있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3월 26일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독도는 일본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으며, ‘일본정부는 항의를
글: 이성환(한의사) 몽골은 발해가 망하고 고구려 후손이 만든 나라불가리아에서 풍기는 부여, 고구려 계보 흔적신라경주 ‘황금보검’과 불가리아보검 개념이 동일크로아티아사람 이름 끝자와 만주이름이 같아 이번 불가리아 유적답사 여행에서 가장 큰 성과는 불가리아 초대 왕인 구부라트 왕의 유물을 접한 것이다. 구부라트 왕은 610년부터 613년까지 2개의 주요 불가르아 씨족인 쿠트릴구르(Kutrigur) 와 우티구르(Utigur)를 통일하여 온오구르를 만든 왕이다.지명에 구리 구르 그르는 골(짜기)의 다른 발음이고 그것이 마을 이름일 때는
서기1918년 제1차 세계대전종료미국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풍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몽양 여운형과 신한청년단의 활약3.1혁명 대폭풍, 기폭제 역할 조명 “3.1운동이라는 대폭풍을 만들어 내는데 사실은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게 상해에 있던 몽양 여운형과 신한청년단이다. 파라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실제로 유일하게 대표를 파견한 조직이 여운형의 신한청년단이다.”정병준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조선개국4352.03.16.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서울시의회 제2대회의실에서 이 같이 말했다. 몽양 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