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⑩ 백제초기 3루왕의 비밀 백제왕가의 계보에 나타나는 다양한 수수께끼의 다루, 마루와 고구려 오회분 4호묘금와왕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온조의 직계 선조3루왕은 고구려에 대한 반감이 표출된 백제왕명 백제초기, 시조 온조왕의 뒤를 이은 왕은 다루(多婁)왕(2대), 기루(己婁)왕(3대), 개루(盖婁)왕(4대) 등이다. 왕명에 ‘婁(별이름 루)’자가 공통으로 들어간다.‘루婁’는 무슨 의미일까?[백제서기]에 따르면, 백제 건국 3년째인 서기전16년 온조의 처 감아(甘兒-추모왕
일본신사는 우리의 당집에 해당우리의 한웅, 단군이 자리잡은 것신사 국가가 관리 기독교 발 못붙여우리는 당골네=당집, 지배세력이 파괴 사카모토 료마라는 NHK 대하드라마가 있어요. 막부의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약속을 받아낸 인물을 아주 잘 그리고 있어요.이 드라마를 보면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그 때 정치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어요. 천대받던 게이샤나 가정부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고 세상이 평등해지는 꿈을 꾸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나옵니다.거기도 대원군과 같은 천주교 박해가 있었어요.일본에는 일본의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글: 이시종(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중국 해남도 삼아시 천인갱,일제가 학살한 조선인 시신 가득중국공안 한국인 단체인원 추도식 거부개인 몇 명만이 쓸슬히 원혼들 추도함일본은 120만 일본군 유해발굴사업 꾸준우리는 무관심으로 일관, 방치해온 역사이제라도 조사발굴 및 고국으로 모셔야 중국 해남도 삼아시 천인갱시골인근 마을 구석진 곳에 잡초가 무성하고, 둘러쳐진 담벼락이 무너져 내린 이곳에 일제치하 강제동원되어 학살당한 1.300여명의 조선인이 묻혀있다.1945년 4월 해남도가 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조선인들을 학살한 일본군
3.1독립만세투쟁은 천도교 수백만 명의 조직으로 성사된 것북조선은 3.1운동 깎아 내리고 김씨 일가 중심으로 풀어내김구로 상징되는 임시정부는 지나치게 과대포장 된 면 많아해방정국 북조선은 이미 소련이 낙점한 김일성이 주도함남한은 탈북한 부왜매국세력 및 독립투사들의 권력투쟁 마당6.25 한국전쟁은 미국이 유인하고 스탈린이 이용한 민족사 참극 “가능하다면 다시 이곳을 떠나 일본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일본군 항공대에 자원입대하여 폭탄을 싣고 와 이 임시정부 청사를 폭파하고 싶습니다.”이게 무슨 말인가. 누가 일본전투기를 몰고 와 임시정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 ⑨ 백제 국호의 변천과정에 담긴 숨겨진 역사 흔히 백제를 단일 국호로 이해한다. 이유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기록이 모두 백제로 통일해서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의 국호는 시대상황에 따라 적잖이 변화한다.백제 국호의 변천과정이다.첫째는 십제(十濟)이다. ‘十(열 십)’자의 백제이다. 건국초기 만들어진 최초의 국호이다. [삼국사기] 건국(시조)신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시조 온조가 10명 신하의 도움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1[삼국사기]) 온조는 형 비류와 함께 고구려를 출
고대판 일제식민지 임나일본부 아직도 살아있어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일본 야마토왜가점령하여 2백여년간 식민지배했다는 황당무개한 주장임나=가야 등식은 북한 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극복설사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하더라도 그것은 일본 열도안에서 일어난 일로, 북한학자들이 증명해 놓은지 오래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임나 일본부설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임나 일본부설과 관련하여 고통을 겪어 왔지요. 해방 정국에서 남한 학자 김석형은 자신의 일본 열도 안의 삼한 삼국 분국설이 이병도가 장악한 남한에서 먹히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⑧ 백제 시조신화 사실성의 속사정 백제시조 온조왕은 고구려 계통설, 비류는 부여계통온조와 비류 생부, 구태왕은 중국사료에서 전해와구태백제는 하북성 노룡현의 대방군으로 나타남이 세력이 요서백제군, 진평백제군을 나중에 설치함대방백제세력이 만세일계 일본 천왕가의 본류로 나타나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시조신화는 신성성(神聖性)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시조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북방계통의 천손신화와 알에서 태어나는 난방계통의 난생신화로 나눈다. 특히 소수의 북방유목민이 다수의 남방농경민을 지배
수정: 서기2019.07.18. 21:56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⑦ 백제 초도 미추홀의 두 얼굴 비류백제가 시작한 곳, 미추홀의 위치비정미추홀이 인천이냐, 아산이냐 다툼 대두백제는 온조 백제와 더불어 초기 두개로 시작 2018년 7월, 인천시는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하고 정식 출범한다. 백제 초도(初都)인 미추홀을 인천시가 행정명칭을 통해 공식적으로 품에 안는다. 우리는 미추홀을 인천으로 알고 있다. 또한 그렇게 믿는다.정말로 인천이 미추홀(彌鄒忽)일까?미추홀 지명의 시작은 백제 건국시조 비류와
우리철학에 무지한 위서론자들가 위서취급받는 것은철학자, 사상가가 검정하지 않았기 때문 철학사상은 한국사상 기원담아양촌 권근의 입학도설,고조선 천인일체 사상 담겨 있어의 삼일신고와 다르지 않아 라는 책이 있다. 라고 하지만 이는 통상 붙이는 이름일 뿐이고 여러책을 합본한 것이다. 합본해 놓고 표지를 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이 합본에는 안함로 , 원동중, , , 로 되어 있다.도 이름만 그렇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⑥ 백제의 초기 도읍지 위례성을 찾아서는 백제 온조의 위례성을 현재 천안으로천안=직산 위례성이 먼저 생기고 하남위례성 나중에 생김소서노,분열한 온조와 비류 재결합 시도하다 희생된 설화도 전해옴 [삼국사기] 시조 온조왕 편에 ‘하남위례성’이 나온다. 온조가 도읍으로 삼은 백제의 건국지이다. 하남(河南)은 ‘강의 남쪽’을 가리켜, 지금의 한강 이남의 남한산성이 소재한 경기 광주(하남)일대가 유력하다. 특히 남한산성내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온조의 궁궐이 있으며,
기사수정: 서기2019.07.06. 20:13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중도를 비롯한 강원도 대외교류 학술대회간판걸고중국 식민기관 낙랑군 영향력 증명에 총력 기울여발표자들 하나같이 중국 식민통치기관,낙랑군은 평양에 있었고 망한 뒤에도 오히려이후 우리역사에 영향력 행사했다고 주장 조조 위나라는 대방군을 접수하여낙랑군 보다 오히려 넓은 하삼도 지배했다고 주장방청객 현혜진씨,‘외국인 학자들도 다 인정하는 살아있는 중도역사는 놔두고탁상공론만 하고 있다‘ “곧이어 魏위 조정에서 낙랑과 대방의 태수를 임명하고 두 군을 접수하였음
고명은 왕이 임종 직전에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남기는 말유명(遺命), 유훈(遺訓)이라고도 함 , 유리왕 기록 달라유리가 고구려 왕에 오르자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대리고남하하여 백제를 세움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⑤ 고명세자가 된 고구려 유리왕유리왕(2대)의 대표 상품은 ‘황조가(黃鳥歌)’이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인
글: 이시종(인문학박사, 자유기고가) 일제식민통치 순응정책에 앞장선 일본제국대학 유학파해방 후 친미파로 둔갑, 강고한 그들만의 철옹성 구축식민통치 부역자들, 대를 이어 대한민국 지배세력군림 이들의 유학과 꿈과 현실은 무엇이었을까?동경과 교토제국대학 출신자만 분석했지만 그들중대다수는 식민지 조선의 관료가 되어, 민중들을 탄압하고강제동원에 앞장섰다.이들중 자신의 식민지 조선 관료 생활을 공개적으로 참회하고 반성한 사람은 아산사람 이항령 전 홍익대 총장으로 기억된다.박영출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사람이 민족해방과 광복에 앞장섰을 뿐이다.대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④ 추모왕의 고구려, 북부여 열국(列國)을 병합하다. 고대에 혈통 아닌 능력으로 공동체 수장되는 방법은 활쏘기추모왕과 송양왕 서로 활쏘기로 나라 통합여부 가려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赤峰)을 비롯한 노로아호산(奴魯兒虎山)은‘어리석은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산’의 뜻현재 요녕성 요양은 단군의 왕검성, 최리 낙랑국, 고구려 평양성 초기고구려 영토 확장, 시조 추모왕의 혈통이 배경서기전37년, 추모왕은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성사시키며 홀본국을 모체로 고구려를 건국한다. 당시 대륙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③ 추모신화가 동명신화를 차용한 이유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의 정통성(Legitimacy)과정체성(Identity)을 담은 건국신화의 비밀 고구려 시조는 주몽(*본명 상해)이다. [삼국사기]는 ‘동명성왕(東明聖王)’, 는 ‘추모왕(鄒牟王)’으로 쓴다. 동명성왕이 추모왕이다.참고로 추모는 고구려 시조에게만 붙여진 특별 왕호이다. 추모는 훈족(흉노)의 왕호 선우(單于)와 같으며, 둘 다 ‘천자(天子)’의 뜻이다.차이점이 있다면 추모는 신(神)으
글: 공관(동북중앙아시아연대의장)동몽골 유목하기에 적합한 환경기마군사가 될 환경으로 역동성 유지서로는 초원 곧 바로 동유럽으로 질주가능대흥안령 산맥 초원지대 선비족 반농반목동몽골 유목제국 3경체제 유지 ■동몽골 지역의 개관‘동몽골’이라는 지역/공간의 범위와 의미/정의는 역사적 시대마다 달랐다. 흉노의 5경(五京) 때는 좌곡려왕, 몽골제국 3경 때는 좌현왕左賢王의 영역이었다.중앙유라시아에 터 잡은 민족은 지역과 국가의 틀을 넘는 다多부족/다민족/다중심의 초민족 공동체metaethnic community이다. 그렇게 될 수
3.1기미독립선언서에 동학혁명사상 스며 있는 것 확인제국주의 식민지하 비폭력 평화투쟁은 3.1혁명이 효시중국5.4운동에 결정 역할 확실, 인도 독립투쟁에도 영향 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이 있은지 1백주년이 된다. 서기1919.03.01.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에게 나라를 강탈 당한지 9년만의 민족해방투쟁이다.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 우리민족이 있는 곳이라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국내에서는 당시 1천7백만의 조선인구 중 2백2십만여명이 봉기했다.이 전민족 해방투쟁이 서기19세기 후반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밀접
【정재수 작가의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역사시평】② 고구려 시조 주몽의 이름에 얽힌 비밀 고구려 시조는 주몽(朱蒙)이다. 「삼국사기」 설명에 따르면,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 말이다. 현대 우리 속어에 ‘제비’가 있다. 여성을 잘 꼬시는 얍삽한 남성을 빗대어 이르는 비칭이다. 마찬가지로 주몽은 당시 부여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모두 주몽이다. 주몽의 실제 이름은 무엇일까?「삼국사기」는 주몽의 또 다른 이름을 소개한다. ‘추모(鄒牟)’ 또는 ‘상해(象解)’이다. 둘 중의 하나가 실제
글: 공관(동북중앙아시아연대의장) 동몽골에 사는 많은 족속들은 우리와 친연성 깊어유대인 독립국가건설에 사료가 큰 힘지나인도 역사를 가지고 오늘날 국경을 만들고 있어역사를 잃어버린 민족 장래 없고, 굴종 오욕만이 남아부여 뿌리는 알타이·사얀산맥과 바이칼호수 주변 추정7백년 역사 부여의 광활한 땅 예맥 선비도 부여족속고려말 북원과 함께 명나라 멸망시키고 고토회복기회이성계 위화도 회군반란으로 물거품 천추의 한으로 남아 ■동몽골의 고대 우리역사-동몽골 호룬보이르 초원에 서면 2만리 갈녘 헝가리 평원이 눈앞이다 - 空廬■
지난 5월 11일 정부는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지정했다. 5월 11일은 황토현에서 동학군이 관군을 이긴 날이다.이날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하여 국가기념일로 정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는 것은 동학혁명기념사업에 정부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하여 지원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그래서인지 동학혁명이 일어난 곳 마다 기념사업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 정읍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거행되고 있다.올해는 전라북도 전주시 차원에서 큰 행사를 하나 벌였다. 전주시에 녹두공원을 조성하고 녹두관을 만들어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