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고려 천리장성은 각 지역에 축성하고 연결한 관성천리관성은 당시 압록강, 압록강은 하북성 호타하산서성 대동시 인근에 부여, 그 서쪽에 선비족 위치-기고문 27-[고려 천리장성 위치 확인]- 고려 천리장성은 장성이 아니라 관성 내지는 관방이다.-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는 한반도 서해안 압록강과 동해안 함흥만 사이가 아니다.- 그 위치는 한반도 압록강 인근이 아니라 하북성 압록강인 호타하 인근이다.고려 영역과 국경을 말해주는 고려 천리장성은 길게 이어진 장성이 아니다. 일정한 각 지역에 성을 축성한 후 이
글: 지방분권포럼 대표 유종성만주를 경영한 고려, 여진인들 통제해고려 태조 시 이미 압록강 넘어 진출후에 거란과의 국경갈등 생겨윤관이 개척한 정주는 길림성 안도현 송강진거란의 2차 침입시 기록 소실돼조선초 를 편찬한 학자들은 고려 당대의 영토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고려의 강토를 평하고 있다."...서북쪽은 고구려 경계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 때보다 확장되었다“ 지리지그러나 현행 한국사 교과서와 개설서에 그려진 압록강 하구에서 함경도 정평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은 위와 같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고려 서희가 찾은 강동 6주는 ‘8성’이 맞아위치는 하북성과 산동성 경계 지역으로 나와흑수말갈은 산서성 대동시 천진현에 존재해-기고문 26-[고려 서희 강동 6주 실체 확인]- 서희의 강동6주는 “서희 강동 6주”가 아니라 “서희 8성”이다.- 그 위치는 한반도 압록강 인근이 아니라 하북성 압록강인 호타하 인근이다.고려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 서희의 강동6주에 대하여 그동안 한반도 압록강 서쪽의 남쪽 인근에 설정되어 왔다.명칭은 강동 6주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전적으로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식민사학자들, 고려 동북9성 함경도로 날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는 두만강 넘어 공험진명나라 초기에도, 공험진은 조선의 국경선으로 -기고문 28-[고려 윤관 동북 9성 실체 확인]-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단순한 정벌 사실이 아니다.-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의 동북 국경이다.- 그 위치는 한반도 두만강 북쪽 7백리 거리이다.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 역사 중 가장 왜곡이 밝혀진 사안이다.그것은 명확한 동북 9성 위치인 공험진, 선춘령 위치 『세종실록』 기록 덕분이다.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고려가
(사)한배달 등 역사단체 한국방송에 역사왜곡 중단 촉구고려거란전쟁 사극 방영 앞두고 고려국경 식민사관 논란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고려 동계 두만강 위 6백리 공험진 (사)한배달, 역사의병대 등 역사시민사회단체는 2023.11.09.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사옥 정문에서 집회를 열고 한국방송(kbs)은 고려 국경선 역사왜곡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였다.이들은 이날 한국방송 사옥 정문 앞에서 현수막을 펼쳐놓고 '왜곡된 고려 국경선'과, '바로잡은 국경선 고려 지도'를 펼쳐 보이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역사진실을 알렸다.역사시민단체에 따르면 한국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이용중, ‘전라도천년사’ 고려영토 날조에 사료로 철퇴현 압록강-원산만 고려 북계는 일제식민사학의 결과물현행 학교 국사교과서도 압록강-원산만으로 그려놓아‘전라도천년사’ 제7권 281쪽도 압록강-원산만 유지‘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요사’, ‘선화봉사 고려도경’‘명일통지’ 모두 고려북계는 요하에서 만주 선춘령,무슨 문제가 있을까요?(7)이제 제주도 주민인 이용중이 제출한 공람의견서를 살펴 보겠습니다.이용중은 제7권 281쪽에 '고려 강역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이케우치 히로시
글: 허성관(전 행정자치부 장관) 북만주 하얼빈 아성, 독립투사 부인들의 대일항전기지대금국 옛 성터에 천제단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북만주 삼강평원은 12세기 요와 금이 바뀌는 격동지금 태조 아골타, 요나라 황제가 춤추라고 했으나 거절의란현 박물관, 금 포로된 북송 흠종, 휘종 영정 전시의란현 박물관 건너에 소남산 산 옥기는 신석기 것 삼강평원 답사 이틀 째 여행기입니다.② 5월 20일(토요일)하얼빈 → 아성(阿城) → 금(金)나라 上京박물관 → 의란(依蘭)박물관 → 왜긍합달(倭肯哈達)유적 → 쌍압산(双鴨山)시* 대일항전기 우리 민
글: 공관(북동중아시아연대 중앙위 의장) 고려의 선각자 진화, 시를 지어 고려 부흥 주장그 후 1백 년 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일어나칭제건원과 북방 진출, 금 정벌 후 고토회복 외쳐단재 신채호, 묘청 봉기 민족사 1천래 대 사건 평가혼몽한 금나라 정복했다면 몽골제국 대체 했을 것지금 세력 변동기, 윤 정권의 행태 국가 존망 위기 10~13세기 동유라시아의 세력변동과 한민족.-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들어가다. (奉使入金) -“송나라는 이미 시들었고, 西華已蕭索금나라도 또한 혼몽하구나. 北寨尙昏夢앉자서 문명의 아침을 기다리노니, 坐
윤한택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고려강역은 총독부 식민사학자 쓰다소키치가 만들었다’‘쓰다소키치는 중화사대주의 조선정권과 유학자들이 만든 것 끌어왔다’‘고려국경은 요령성 요양까지 육박했다’ 사람은 과거를 먹고 산다. 과거의 집적이 인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래는 상상인데 이는 과거에 터 잡고 있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꿈을 이룬다고 할 때 그 꿈도 지나간 일이 바탕이 된다.우리 정신세계, 세계관, 가치관이 모두 과거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 과거는 역사다. 오늘 우리를 있게 한 역사 중에 고려역사가 있다
고려 말, 고려와 명나라와의 국경은 '요동' 철령위화도 회군 세력에 의해 와 조작광복 후, 일제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 왜곡된 주장을 답습하여'강원도 철령위'로 고착 고려말 신생국 중국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일방 통보해 왔다. 철령위의 ‘위衛’라는 것은 명나라 행정, 군사구역을 나타낸다. 곧 철령까지 명나라 국경선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영토라는 말도 된다.철령위 설치는 명나라가 고려 영토인 철령을 자기네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통
기사수정: 2018.04.02. 01:07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강단주류사학의 역사학은일제치하 쯔다소키치가 만든 類에 터잡고 있다고려와 명나라의 국경분쟁 씨앗, ‘철령위’는 만주 봉집현이었다고수전쟁의 절정, 살수대첩 살수는 만주 요동 혼하다고려시대 압록강은 지금의 요령성 요하다 우리는 국사시간에 을지문덕 장군이 중국 수나라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살수대첩의 살수가 현재 북한 청천강이라고 배웠다. 또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거란으로부터 얻은 강동 6주가 있는 압록강도 현재 북한 압록강이었다고 알고 있다. 또 고려가 명나라
우리역사지리는 일제 관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만든 것...'맑은' 압록강이냐, '푸른' 압록강이냐...요동지역은 고려시대까지 우리의 역사 강역이었다. 서기2017.5.26.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고려국경선 문제를 다루는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이 학술발표회는 단순히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정당을 대표해서 각 당의 국회의원들이 함께 했다. 특히 이날 학술발표회를 개최한 주체가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단순한 학술회의가 아니라 국가
바른 정당 김세연 의원,“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준 국사교과서 반드시 바로잡아야...”“역사 바로 잡자는 국회차원의 노력을 (식민)역사학계가 전문성 운운 하며 비판하는데,우리 역사는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냐, 우리 국민 모두의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정세균 국회의장,“일제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를 통해서 우리 영토를 한반도로 축소했다. 이것이 식민사관이다. 이제 식민사관의 심각성을 공론화 할 때가 되었다. 국회가 올바른 역사를 미래세대에 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서기2017.5.26.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고려국경
일제식민주의 사관이 71년 적폐라면,소중화 조선의 중화사대주의 사관은 6백년이 넘는 적폐...이제, 고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어야 할 때...소중화 조선의 고지도에서 말하는 강동6주 위치와 식민사관이 같다. 국제연합(UN) 평화유지군이 세계 주요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제연합소속의 일원으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다. 주로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의 공수특전여단들이 맡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여전히 미군의 손아귀에 있는 일반부대와는 달리 공수특전여단들은 전시작전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평화유지군 파견부대로 활용할 수
기사최종수정: 서기2016.05.30. 13:25 은 대륙고려를 말한다.“고려는 남쪽으로 요해(遼海)에 막혀있고 서쪽은 요수(遼水)에 이르고 북쪽은 거란의 옛 땅과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금(金)나라에 이른다.”고려의 강역을 기술한 이 대목은 권3 봉경(封境)편에 기술된 내용이다. 흔히 이라 불리는 은 송나라의 문신이었던 서긍(徐兢, 1091~1153)이 고려 인종 1년(1123년)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송나라에 돌아가 고려의 인문과 지리 등을
소중화, 사대주의에 물든 유학자들, 소동파를 찬양하다...“얼마 후 동산에 달이 떠서 북두성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는데,흰 이슬이 강을 비껴 떠 있어서 물빛이 하늘에 이어졌다.한 조각 작은 배 가는대로 맡겨 아득한 만경창파를 타고 가는데,넓고 넓어 허공에서 바람타고 가는 듯 멈출 곳이 어딘지 모르겠고,가볍게 나부끼니 나 홀로 속세를 떠나 날개 달린 신선이 된 듯하다”(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위 시는 소동파 소식(蘇東坡,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여진 금(金)나라...소중화를 자처한 조선시대의 사대주의 선비들은 소위 중화와 오랑캐라는 화이관(華夷觀)의 이분법적 세계관 틀 속에서 모든 사물과 역사를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중화주의에 몰입된 비자주적이며 편협한 역사관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으며 우리의 역사와 얼의 싹을 잘라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광복 70 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중국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자기들이 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