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세훈(‘씨ᄋᆞᆯ의 소리’ 편집위원) 1882년 임오군란, 민비 척족의 국정농단에서 발단민영휘를 선혜청에 앉혀놓고 나라 곳간 털게 해무당을 끌어들여 진령군에 봉하고 그의 통치 받아민비 임오군란 때 죽었더라면 동학혁명 없었을 것임오군란(1882년. 고종 19년)이 터졌다. 신식군대 별기군에 대한 구식군대의 불만이 원인인 것 같지만, 실은 나쁜 권력자에 대한 분노였다.병졸들이 궁궐(창덕궁)로 쳐들어간 것은 민비를 잡아 죽이려는 것이었다. 중전은 측근 장정에게 업혀 현장을 빠져나가서 멀리 충주까지 도망갔다.군인들은 1년 넘게 월급을
글: 민인홍(대종교 전리)박정희 군사정권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친일사학자왜구치하 총독부 부역자 이병도, 신석호 역사학계 장악이병도, 신석호 소속 조선사편수회 ‘조선사’ 왜곡 날조국사편찬위원회, 신석호 활동 기간 총독부시절부터 기록 1948년 정부가 수립된 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은 단 2명이었다.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 뿐이었다. 이승만이 쫒겨나고 5.16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인 1962년, 군사정권은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선정과 표창에 나섰다.공적조사위원회에 참석한 김승학, 김학규, 김홍일, 오광선 등
글: 신용운(시사비평가, 노동자) "아작난다, 골로 간다" 란 말 뜻을 아는가?1946년 미제의 살인적 양곡공출에 저항해 들불처럼 일어났던 10.1 대구인민항쟁 참여인민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곳이 경북 '아작'골이이다.미제 폭정과 남한 단독정부수립 저지하려 일어난 1948년 4.3 제주 인민항쟁때 미제, 친일경찰, 서북, 대동청년단이 무고한 양민들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기 위해 끌고 간 곳이 한라산 골짜기라서, '골로 간다'란 말이 지금까지 '사람 죽인다'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우린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우린 제주도란 섬이 필요할 뿐
글: 안국진(시사평론가)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진달래중국 북부와 연해주에도 진달래는 당연히 자생 중진달래를 천지꽃, 천지와, 한자로 두견화,중국어는 영홍두견 일본어는 가라무라사키즈즈치최치원, 정두경 등 진달래의 진가를 이미 인식진달래를 국화로!화전을 만들 수 있는 꽃, 먹을 수 있는 참꽃. 우리 민족을 따라 참으로 온 꽃. 진달래(眞達來), 우리 국토라면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있는 꽃이다.우리는 중삼(重三, 음력 3월 3일)이면 진달래꽃을 박아 지진 견고(鵑糕)를 올리며 참례(參禮)했다.진달
제주 4.3학살은 삼일절 친일 경찰의 발포가 원인무장대와 미군정의 협상, 우익청년단의 방화로 깨져무장대의 힘으로 정부 수립 위한 5.10 총선거 무산미군정, 정부 수립 후 강경진압 학살작전으로 전환해안선서 5키로 이상 들어간 민간인 학살 작전귀순 선무공작을 해놓고 투항한 민간인 무장대 학살1954년 마무리된 제주 민간인 학살자는 3만여명 달해정성혜 양심수 후원회 사무국장은 4월 1일 자신의 얼굴책에 제주 4.3학살을 다룬 글을 올렸다. 날짜별로 학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밝혔다. 제주4.3은 기본적으로 미군정이 주도한 것으로 보았다.
서기 1927.01.18. 매일신보,황해도 구월 산중서 4천 년 된 단군상 발견 보도4천 년 된 단군상에 주목, 단군조선 실제 역사 증명송호수 박사 개천 대학에 단군 석상 모셔져 있어일제에 의해 2차례 수난을 겪으면서 얼굴 쪽 훼손돼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단군이 조선을 개국하였다고 중국 사서 위서와 우리의 고기를 인용하여 일연선사가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는 자기 생각을 주석으로 달고 위서와 고기를 그대로 끌어와 소개하였다.단군이 있기 전 환인과 환웅 시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록 신화 형태로 서술하였으나 신화 형태로 쓴 역
80년대까지 대법원장, 국사편찬 위원장, 지식인 단군 인정분단장벽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민족정통성 마지막 보루국조 단군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하는 정신운동 선행돼야단군성전 건립에 찬성, 조상숭배는 종교이전의 인간 본심 #동아일보_1985년_7월_12일檀君(단군)과 崇祖思想(숭조사상) _이영섭(전 대법원장)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져 왔다. 「예의」라는 것은 崇祖(숭조)관념을 큰 줄거리로 하여 어른을 공경하고 동족간에 친목하는 것을 그 근간으로 삼는다.이러한 사상은 결코 불교 유교 기독교등 특정 종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
글: 김정락(미학자, 서울대 미학과) ‘서당’ 풍속화를 김홍도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실내는 없지만 인물들을 통해 실내를 연상하게 해훈장은 가장 멀리있음에도 가장 크게 그려 비논리가장 앞에 있는 왜소한 학동을 가장 작게 그려왜소한 이 학동이 시선을 끌고 공간을 왜곡해 놔 아래의 그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조 때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그렸다는 풍속화첩의 하나인 이다.A4에 해당하는 이 작은 그림은 당시 일반 백성의 삶을 묘사한 것이고, 풍속화로 분류하고 있다. 장르의 분류나 그림의 용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 열도 기비지역 거대 전방후원분 후대에 만들어전방후원분 비롯 고분떼 북규슈에서 기비로 전파묘 규모 확대하고 주변에 연못 이중, 삼중 축조야마토 지방에 백제궁, 백제천, 묘에 조선식 유물주류 강단사학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추종,무슨 문제가 있을까요?(17)황국사관에 입각한 일본 학자들은 모든 고분이 긴기(近畿) 지방에서 출발했다는 전제 아래, 북규슈나 기비(吉備) 지방에 있는 거대한 전방후원분들이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야마토왜의 세력 범위가 확대되면서 다른 지역에도 거대한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고려 천리장성은 각 지역에 축성하고 연결한 관성천리관성은 당시 압록강, 압록강은 하북성 호타하산서성 대동시 인근에 부여, 그 서쪽에 선비족 위치-기고문 27-[고려 천리장성 위치 확인]- 고려 천리장성은 장성이 아니라 관성 내지는 관방이다.-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는 한반도 서해안 압록강과 동해안 함흥만 사이가 아니다.- 그 위치는 한반도 압록강 인근이 아니라 하북성 압록강인 호타하 인근이다.고려 영역과 국경을 말해주는 고려 천리장성은 길게 이어진 장성이 아니다. 일정한 각 지역에 성을 축성한 후 이
글:김정락(미학자, 서울대 서양화) 퇴계 학풍 계승한 근본주의 성리학자, 김상헌왕이 아닌 조선에 충성한 것, 삶 곳곳에 보여청 태종에게 보낼 왕 친서 찢어버리는 결기도삼전도 치욕에 목매달아 자결 시도했으나 실패청의 회유, 협박에도 의지 꿋꿋, 청 관료도 탄복‘맑은 그늘’이란 뜻의 호를 썼던 김상헌은 선조 때 태어나 효종 때 사망한 조선의 (고위)관료였다. 퇴계의 학풍을 계승한 그는 근본주의 성리학자였다.오늘날 그는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핵심인물이고, 철저한 사대주의자였고, 조선후기 대표적인 세도가문인 안동 김씨의 시조
글: 지방분권포럼 대표 유종성만주를 경영한 고려, 여진인들 통제해고려 태조 시 이미 압록강 넘어 진출후에 거란과의 국경갈등 생겨윤관이 개척한 정주는 길림성 안도현 송강진거란의 2차 침입시 기록 소실돼조선초 를 편찬한 학자들은 고려 당대의 영토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고려의 강토를 평하고 있다."...서북쪽은 고구려 경계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 때보다 확장되었다“ 지리지그러나 현행 한국사 교과서와 개설서에 그려진 압록강 하구에서 함경도 정평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은 위와 같
광복회도 윤석열의 삼일절 반민족 매국 행사에 분노민족대표 33인 태극기 윤석열 올 때까지 마냥 대기독립기념관 박이택 이사, 한국 발전이 식민 통치 덕광복회도 윤석열 대통령(이하 윤석열)이 삼일절에 벌인 반민족 매국적 행위에 분노하였다. 광복회는 지난 3일 광복회 공식 블로그를 통해서 “기미독립선언은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경고” 라는 제하의 논설을 내고 윤석열의 삼일절 기념사를 삼일절 정신을 파괴하고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논설은 삼일혁명 기념일을 맞아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삼일절 행사 내내 불편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면서 민족
세계 유수의 기관과 학회, 훈민정음은 가장 우수한 문자구강 구조와 혀 놀림을 분석하여 만든 글자로 과학성 우수유네스코, 훈민정음은 문맹 퇴치 사업에 가장 적합한 글자북한은 지난달 21일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연구사 박사 부교수 리금일 입을 통하여 훈민정음의 가치를 밝혔다.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문자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글은 국제기구와 세계적인 잡지 및 세계언어학회에서 평가한 것을 소개하고 북한에서 평가한 훈민정음의 의미를 설명하였다.그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면에서 세계 1위고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글: 민인홍(대종교 전리) 독립투사 신규식의 호, 예관에 대일 항전 의지 담겨을사늑약 후 자결 시도하였으나 한쪽 눈만 실명 실패상해임시정부 승인 이끌었으나, 내분으로 지리멸렬종교초월 단군으로 뭉쳐 대동단결 독립선언서 도출 "우리의 마음은 대한의 혼이다. 망국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 그래서 마음이 죽어버린 것 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3.1 독립투쟁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초를 민족적·국제적으로 통합한 예관 신규식(대종교 첫번째 시교사) 도형이 그의 저서 '한국혼'에 남긴 처연한 외침이다.그는 을사늑약을 보고 순국도 적극적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고려 서희가 찾은 강동 6주는 ‘8성’이 맞아위치는 하북성과 산동성 경계 지역으로 나와흑수말갈은 산서성 대동시 천진현에 존재해-기고문 26-[고려 서희 강동 6주 실체 확인]- 서희의 강동6주는 “서희 강동 6주”가 아니라 “서희 8성”이다.- 그 위치는 한반도 압록강 인근이 아니라 하북성 압록강인 호타하 인근이다.고려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인 서희의 강동6주에 대하여 그동안 한반도 압록강 서쪽의 남쪽 인근에 설정되어 왔다.명칭은 강동 6주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전적으로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글: 지승룡(목사, 전 민들레영토 대표) 광희문에 흐르는 개천, 무녀들의 세월이 녹은 무당천일제 침략자, 신당동 공동묘지 없애고 길음동으로 바꿔시신 수습하여 49제를 도맡은 것은 승려가 아닌 무당천주교를 믿는다는 핑계로 남인의 씨를 말린 노론 세력1907 군대해산시 126명 조선군 시신도 광희문 앞에 방치무당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가 심어 준 것1. 일본은 죽은 자의 땅도 빼앗았다.남산과 약수동에서 개울이 만나 광희문으로 흐르는 개천 이름이 무당천이다. 초등학교 때 놀던 곳이다.어릴 때 무당천이란 이름이 궁금했다. 무당벌
글: 전우성(역사저술가, 관세사) 식민사학자들, 고려 동북9성 함경도로 날조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는 두만강 넘어 공험진명나라 초기에도, 공험진은 조선의 국경선으로 -기고문 28-[고려 윤관 동북 9성 실체 확인]-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단순한 정벌 사실이 아니다.- 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의 동북 국경이다.- 그 위치는 한반도 두만강 북쪽 7백리 거리이다.고려 윤관 동북 9성은 고려 역사 중 가장 왜곡이 밝혀진 사안이다.그것은 명확한 동북 9성 위치인 공험진, 선춘령 위치 『세종실록』 기록 덕분이다.하지만 이마저도 당시 고려가
글: 신종근(역사연구가, 안과 의사) 노량해전, 퇴각하는 왜군 1만 이상 척살소서행장, 사위 덕에 무사히 일본으로 도주풍신수길 문장, 자민당 극우 세력과 동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 현재 일본 정권은 대한민국의 우방국가가 될 수 없다.-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봤다. 배우 백윤식이 맡은 역할이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인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의 왜장(倭將)이라고 하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가 많이 알려져 있다.그러나 실제 동원된 군대수를 보면 조슈(현재
글: 유종성(지방분권포럼대표) 고대사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으로 도배한 부산시사단군을 부정하고 우리 역사를 서기전 13세기로 폄하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중심으로 부산시 역사서술서기 4세기까지 국가 없고 연맹 정치체 난립으로 기술시민 역사단체의 공람의견 제출에도 시민 의견 무시최근 호남 3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발간하려던 '전라도천년사'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논리를 그대로 추종한다는 역사시민단체의 지적을 받았다.발간 주체인 전북, 전남, 광주광역시는 역사시민단체들과 도민의 비판 여론을 반영하여 ‘전라도천년사’ 배포를 무기한 연기하고